권위주의 속 억압된 욕망, 민주화 이후 사회갈등 폭발
"사회 질서·평화 유지는 타인의 존중에서 나온다"
권위주의 속 억압된 욕망, 민주화 이후 사회갈등 폭발
"사회 질서·평화 유지는 타인의 존중에서 나온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존중, 배려, 소통 등의 기본가치가 바로 선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간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이런 가치들을 중시하는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사회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통합가치포럼'을 운영해왔다. 포럼에서 논의된 내용을 엮어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한 일곱빛깔 무지개'를 펴냈고, 데일리안과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이러한 가치를 국민들과 공유하고 확산하기 위해 매주3회, 총 27회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주 >
'덕'이 아닌 '힘'이 지배하는 사회…사회불신 초래
유교의 이상은 덕치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덕이 아니라 힘이 다스려왔다. 그것도 정당한 힘이 아니라 부당한 힘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믿음이 확산되었다. 법과 힘은 공정하게 행사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믿는 사람이 80%나 된다. 이것이 사회적 불신과 갈등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힘 있는 자들을 위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니, 이런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시행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사회가 항상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게 된다. 공정의 기반이 무너진 사회, 공식적인 국가 권력이 공정성의 원리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작동하지 않고 특권층과 기득권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는 믿음이 널리 퍼진 상황에서 법과 제도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의 응집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설 자리를 잃어가기 마련이다.
가정이든 국가든 세대 갈등이 깊은 곳에는 기성 세대에 대한 도덕적 불신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갈등에는 도덕적 판단이 개입되어 있다. 계급 갈등, 이념 갈등, 지역 갈등에도 상대방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개입되어 있다. 부와 소득을 둘러싼 계급 갈등의 배후에도 가진 자들이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부와 높은 소득을 얻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의 부에 대해 도덕적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부가 자신들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면서 덜 가진 자들은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항상 다른 사람이 성취한 것을 국가를 통해 강탈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한쪽은 다른 한쪽을 항상 권력과 부를 향유하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여기고, 다른 한쪽은 상대방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위해 민중을 선동하는 세력으로 매도하는 등 서로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집단으로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권위주의 속 억압된 욕망, 민주화 이후 사회갈등 폭발
1970년대 말 권위주의 정권의 퇴각 이후 우리 사회에 극심한 혼란이 오고 강력한 국가 권력이 등장한 것도 이 같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민주화 이후 사회적 갈등이 폭발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기본 도덕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강력한 힘을 지닌 국가 권력이 퇴조하자 모든 사람과 집단이 각자 자신의 자유와 권익만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 심화되면 사람들은 법과 제도를 존중하고 그것에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힘에 의해 자신의 권익을 관철시키려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4대 갈등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다. 이전에 강력한 힘에 눌려 잠복되어 있던 개인과 집단의 욕망이 동시에 분출되면 법과 제도, 공권력은 무력하게 된다. 권위주의 국가의 힘에 눌려 억압되었던 욕망들이 '이념 갈등', '계급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갈등'으로 분출된 것이다. 동등한 힘을 가진 집단들이 충돌할 때 이것을 공정하게 중재하고 해결해줄 수 있는 법과 제도의 집행이 있으면 사회는 안정을 찾지만 그렇지 못하면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런 상태가 심화되면 홉스가 말하는 '만인은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된다.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지고 양육강식의 세상이 된다. 이런 상황은 강력한 권력자가 등장하여 힘을 행사할 때 종식된다. 갈등의 축들이 상대방을 도덕적으로 무시하거나 경멸하게 되면 갈등 해소를 위한 합리적인 논의는 어려워진다. 우리사회의 갈등에는 젊은 세대의 기성 세대에 대한 도덕적 불신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상호 존중의 태도가 없고 그 때문에 합리적 해결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모든 사회에 갈등은 상존했다. 그 갈등을 원만하게 해소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가 발전한다. 따라서 갈등에는 역기능뿐만 아니라 순기능도 존재한다. 그러니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갈등이 정해진 규칙이나 관행, 제도 안에서 해소되지 못하고 서로 힘을 행사하여 사회에 무질서와 혼란을 야기할 때 문제가 된다. 그런데 원리적으로 보면 갈등은 도덕적 우월의 문제가 아니다. 갈등은 어원에서 유래하듯이 서로 다름의 문제이다.
"사회 질서·평화 유지는 타인의 존중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갈등의 축으로 지적되는 지역 갈등, 세대 갈등, 계급 갈등, 성별 갈등, 이념 갈등과 공공 갈등은 주로 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다. 사회 구성원이 공동체의 규칙을 지키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지 않으면 공동체는 혼란에 빠진다. 사회적 상호 작용으로 나타나는 협동·경쟁·갈등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존중이다. 상대방을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을 때 차별이 발생하고 상대방을 적대시하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심이 없으면 그를 무례하게 대하고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한다. 존중에는 가정이나 학교, 직장과 같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규칙을 지키는 것이 포함된다. 규칙을 존중하고 지킴으로써 공동체가 질서를 유지하고 평화롭게 된다. 무엇을 존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해주기 바라는가를 생각해보고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나아가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의 의견이나 소유물, 사생활권, 존엄성을 침해하지 않기 바란다면 나도 다른 사람의 그것들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남을 먼저 존중해야 한다는 자율성의 윤리가 약한 상황에서 자유·평등·민주주의와 같은 이념이 정착되기 어렵다. 자유·평등·민주주의의 이념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내 권익과 동일하게 타인의 권익을 존중해야 하며, 나의 권리에 상응하는 의무도 자율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지 못하여 그것이 실제 생활에서 구현되지 못하는 것이다. 자율의 윤리의 기본은 자신을 존중하고 남을 존중하는 '존중의 윤리'이다. 자율에 기초한 존중의 윤리가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강자에 의한 권위주의적 통제가 없으면 '복종의 미덕'은 사라지고 자기 주장과 이익만 추구하는 상태로 전락한다. 자율적으로 타인을 존중하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 윤리가 없기 때문에 형식적인 법과 제도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존중하지도 않는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모든사라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한 존엄성과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서로 존중할 때 공존이 가능하다.
글/신중섭 강원대 교수
△주요 약력
·현직 : 강원대(교수)
·학력 : 고려대 철학과 박사
·경력 : '86.3~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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