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당의 세상읽기>대기업들이 기분파 솎아내고 목표파만 뽑는 이유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을 파악하는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로서 목표달성이나 결과를 중시하는 성향과 과정 자체를 중시하는 성향으로 나눌 수 있다.
나 호호당의 경우 어떤 일이나 작업을 할 때 흥미나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결과 또한 ‘반드시’라고 해도 될 만큼 좋지 않다. 잘 마무리만 하면 꽤 돈이 되거나 좋은 보상이 주어질 경우에도 도중에 흥미를 잃어버리면 누군가에게 넘겨주거나 아니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정승도 저 하기 싫으면 그만’이란 말이 있는데 바로 내 경우가 그렇다. 실제로 과거 곤궁한 시절 상상 이상의 거액을 받을 수 있는 일의 제의를 받았음에도 내키지 않아서 거절한 적도 있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선친께선 그런 나를 두고 ‘넌 기분파라서 탈이야’ 하는 말씀을 자주 하시곤 하셨다. 이제 나이가 들고 세파에 닦여서 제법 세련된 감이 없지 않지만 솔직히 말하면 여전히 기분파인 호호당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연히 사람의 성향을 이런 기준에서 나누는 심리학 이론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목표지향의 사람을 Telic 이라 부르고 과정을 중시하는 성향을 Paratelic 이라 부르는 이론이었다. (접두어 para-는 초월한다, 넘어선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이론을 접하기 오래 전부터 내 스스로 이미 목표지향의 사람을 ‘목표파’, 과정중시의 사람을 ‘기분파’라고 명칭을 만들어 부르고 있다. 따라서 그냥 목표파와 기분파로 구분하고자 한다.
기분파, 사실 이건 사회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장점이라기보다는 단점에 더 가깝다. 학교 다니던 시절, 흥미가 없는 과목이면 쳐다보지 않았으니 평균 성적이 좋았을 리가 없고, 어쩌다 법대를 갔지만 교수님들의 강의 내용이 따분해서 전혀 공부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니 기분파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또 스스로 목적이나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여러모로 문제가 많고 입신출세에도 많은 지장이 있다. 단점인 것이다. 흔히 ‘기본은 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기분파의 경우 여러 항목 중에서 기본에 미치지 못하는 항목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기에 그렇다.
기분파가 반항적인 성격은 아니다. 다만 흥미가 없으면 잘 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선생님이나 관리자들은 반항적인 성격으로 오해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앞에서 소개한 심리학 이론(정식명칭은 Reversal Theory)을 보니 목표파인 사람의 직업 유형과 성격으로서 공무원, 교사, 경영자, 행정이나 관리, 단계적, 체계적, 성과측정, 보상 등을 들고 있고, 기분파인 사람의 경우 匠人(장인)이나 예술가, 개척자, 설립자, 배우, 택시기사, 외과의사, 비행기 조종사, 영업사원, 시도, 느낌, 자부심, 자유, 자기결정 등을 꼽고 있었다.
나 호호당 역시 예술가적인 기질이 다분하다. 그림이나 사진을 취미로 하고 있다. 게다가 전혀 돈이 되지 않는 언어학이나 지리학, 역사학, 철학 그리고 전적으로 오로지 호기심 때문에 ‘자연순환운명학이’란 이론까지 개척할 수 있었으니 기분파인 것이 분명하다.
나 호호당의 경우 39세의 어느 날 다니던 은행을 무단히 그만 두었는데 그 이유는 딱 하나! 재미가 없어서였다. 계속 다니다가는 나중에 죽을 때 인생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은 공포심이 더 컸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서 떼돈을 벌어 재벌이 된 다음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를 즐기자는 생각을 했으니 그야말로 무계획적이고 무체계적인 기분파의 단점이 제대로 작동된 것이었다. 이에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늘 얘기하듯이 세상일은 10년의 인과(因果)가 있으니, 1993년에 사표를 내고 나오는 무모한 결정은 10년이 흘러 2003년이 되자 어느새 나를 빈털터리가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세상이 어디 만만한 곳인가? 10년 고생을 하면서 떼돈은 고사하고 끼니를 잇기도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해야 했던 10년이었다.
최근 대기업들이 사람을 채용할 때 ‘인성검사’란 것을 한다. 나 호호당과 같은 기분파 성향의 사람이라면 아무리 학벌이 좋고 성적이 좋다 해도 인성검사에서 탈락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그도 한국에선 탈락할 것이다.(최근 기업들은 현실성 있고 목적지향의 사람 즉 ‘목표파’만을 골라내기 위해 인성검사를 한다고 보면 된다.)
교육현장에선 창의성을 갖춘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떠들어대고 있지만 사실 창의성은 목표파 성향의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좀 엉뚱하거나 기분파적인 성격이 있어야 창의적일 수 있는 까닭이다.
그렇기에 아인슈타인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중국집 음식배달을 할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것이다. 뉴턴은 강남의 학원에서 수학 강사를 하고, 에디슨은 까다로운 규제 때문에 3류 발명가가 되어 보따리 장사를 전전한다고 하니 말이다.
기업들이 목표파 성향만을 뽑는 것에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리스크를 지기 싫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환경과 문화가 또 그런 점도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혁신적인 발명이나 기술 개발은 글로벌 리더 미국에서나 하는 것이고 우리야 비싼 로열티 내고 가져다가 응용해서 대량생산 플랜트나 깔면 되는 일이니 그렇다.
스스로 2류를 자처하는 것이고 스스로 알아서 밑으로 깔려주는 대한민국이라 하겠다. 아직 여러모로 우리 여건이 되지 않아서 생기는 비애라고나 할까.
물론 기분파 중에 크게 돈 번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 인물로서 게임 리니지를 만든 엔씨소프트 창업자로서 큰돈을 번 김택진 사장의 경우가 전형적인 기분파 성향의 기업가이다.
이제는 고인이 된 고 정주영 회장이나 삼성의 이병철 회장 등의 경우 철저하게 목표파 성향의 기업가들이었다. 그렇기에 대다수 대기업의 경우 직원관리가 철저하고 심지어는 무시무시하다. 철저하게 성과지향적인 까닭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독자의 자녀가 목표파가 아니라 기분파 성향이라면 비록 공부 잘 하고 좋은 대학 나와서 대기업에 어떻게 입사한다 해도 길게 보면 그 안에서 성공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싶다.
나 호호당의 경우처럼 예전 우리나라 경제가 팽창하던 시절이라면 학력 좀 되고 어느 정도 공부 좀 했다면 대기업에 무난히 들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인성검사에서 거의 정확하게 필터링해내고 있고, 또 그걸 통과한다 하더라도 10년 안에 버티지 못하고 그만 두게 될 공산이 크다는 생각을 한다.
기분파 성향의 사람의 장점은 창의적이란 점이다. 하지만 창의적이란 말은 기존의 루틴이나 시스템과 갈등이나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도 크다는 점이다.
더불어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긴 시간 동안 버텨내기도 힘들 것이며 결국은 나 호호당처럼 엉뚱한 공상을 한 결과 떼돈 벌겠다고 인생 중년에 캐리어 다 팽개치고 나와서 곤욕을 치를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오늘 이런 글을 쓰는 까닭이 있다.
최근 세월이 수상하기 때문이다. 청년백수가 득실거리고 일자리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동안 정부는 청년창업을 독려했지만 그 또한 겨울에 나가서 얼어 죽으라는 무책임한 얘기나 진배없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라고 해서 달라질 것이냐, 천만의 말씀이다.
그렇다고 기분파 성향의 젊은이더러 공부 좀 하고 학력 좀 된다고 해서 최대한 대기업에 들어가고 공무원 시험 붙어서 공무원 하라는 것 역시 어려운 얘기이다. 무던히 참고 인내하면서 스스로를 죽이고 살아야 할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뭘 해야 하는가 하는 얘기이다.
앞의 글 속에 히트가 있긴 하다. 장인(匠人)이나 예술가, 개척자, 설립자, 배우, 택시기사, 외과의사, 비행기 조종사, 영업사원, 시도, 느낌, 자부심, 자유, 자기결정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살펴보면 무난하고 쉬운 길은 하나도 없다. 장인의 길을 간다는 것은 가시밭길인 것이고, 예술가 또한 밥 굶기 딱 알맞다, 개척자야말로 길 없는 길을 내겠다는 것이고 설립자 역시 3년 안에 문 닫기 일쑤, 배우는 아무나 하는 일도 아니고 수입 또한 소위 뜰 때까진 영 아니다.
택시기사는 수입도 적고 조만간 알파고 택시가 기다리고 있다. 외과의사는 일단 엄청 공부 잘 해야 의대를 갈 수 있으니 정말 어렵다. 비행기 조종사 또한 일단 신체가 무진장 건강해야 하는 일이니 직업으로 보면 영업직이 남는데 아시다시피 처음부터 영업직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부모는 세상에 없지 않은가.
그러니 현실적으로 말하면 창의적인 기분파 형의 인재는 세계적으로도 어렵지만 우리 사회라면 더더욱 어렵다는 결론이다. 그렇기에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가령 말단 공무원 하면서 취미로 좋아하는 연구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최근 떠드는 말이 바로 제4차 산업혁명이다. 여기엔 창의적인 인재들이 당연히 필요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나라가 그런 변화에 잘 대응하리라 보지 않는다. 머리가 모자란 것이 아니라 문화와 체제가 그렇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칫 2류에서 2.5류로 전락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한편으로 끝내 극복해낼 것이란 낙관적인 생각도 든다. 수많은 기분파형의 창의적인 인재들이 코너에 내몰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창의적인 분야에 뛰어들게 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그 인재들이 일을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씁쓸한 대목은 여전히 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풍성한 수확을 본다고는 하지만 지금 상황은 대부분의 밀알이 겨울 언 땅에 떨어져 그냥 동사(凍死)할 것 같은 분위기인 까닭이다. 그러니 독자의 자녀가 창의적일 경우 그 자녀가 얼어 죽는 꼴을 봐서야 쓰겠는가 말이다.
현실의 얘기를 하면 늘 이처럼 입이 쓰다. 글이 인기를 끌려면 결국 판타지나 약을 팔아야 하는 법인데, 이런 쓴 얘기나 하고 있으니 나 호호당도 참 그렇다.
글/김태규 명리학자 www.hohod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