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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초집중 시대③] '원 보이스' 정부, 브레이크가 없다


입력 2020.05.27 05:00 수정 2020.05.27 21:43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靑 주도 대북 구상…총선 압승 계기 '속도전'

각 부처 전문적 의사결정 왜곡될 가능성 있어

美 우려 속 국제 공조 이탈 가능성도 제기돼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아까 그 얘기는 '오프'로 하겠습니다."


통일부 관계자가 기자들과 나눈 이야기를 뒤늦게 주워 담았다. '윗선'에서 메시지 관리를 주문한 영향이었다. '오프'란 '오프 더 레코드'의 준말로 비보도를 전제로 해달라는 뜻이다.


문장 하나까지 걸고넘어진 현 집권 세력이 '5.24 조치 사문화' 발표는 통일부 대변인에게 맡겼다. '5.24 조치가 실효성을 다해 남북교류협력에 장애가 안 된다'는 정부 입장 역시 통일부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기보다 윗선 입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천안함 폭침에 대한 후속 조치 성격을 갖는 5.24 조치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발표됐다. 해당 조치가 대통령 행정명령 성격을 띠는 만큼 해당 조치의 무력화 역시 대통령이 언급해야 마땅하다. 하나 '대북 저자세' '일방 구애' 등의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메신저와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선택했다는 평가다.


정부 '원보이스', 각 부처 의사결정 왜곡시키나
軍 당국 훈련연기‧'북한 감싸기' 논란


문재인 대통령이 연초부터 남북협력 의지를 거듭 밝힌 상황에서 여당이 총선 압승까지 거둔 만큼, 향후 대북 정책은 속도감 있게 추진될 전망이다.


문제는 청와대가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대북 정책이 각 행정 부처의 전문적 의사결정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군 당국은 지난 19일 진행하려던 비공개 군사훈련을 다음 달로 연기했다. 표면상 기상 악화를 이유로 들었지만 연기 시점이 '청와대 회의'와 맞물려 의구심을 낳았다. 북한 당국 및 대외선전매체들이 우리 정부 군사훈련을 강도 높게 비판한 상황에서 청와대가 군 고위급 인사를 불러 회의를 진행한 사실이 드러나 훈련 연기 결정에 '청와대 입김'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군 당국은 북한군의 아군 감시초소(GP) 총격을 '우발적'이라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북한 감싸기' 지적을 받기도 했다.


군 당국은 남북 GP간 거리(1.5~1.9km)가 북한 고사총(14.5mm 기관총) 유효 사거리 밖이라는 점을 '우발적 총격'의 주요근거로 제시했었다. 하지만 군 당국이 고사총 유효 사거리를 3km로 적시한 자료를 국회에 제출한 사실이 공개돼 '북한을 의식해 유효사거리를 축소 발표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더욱이 유엔사가 GP 총격 사건에 대해 '북측의 우발적 총격 여부를 확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밝힌 만큼 군 당국의 북한군 감싸기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통화에서 "현 정권이 인사권‧예산권을 활용해 군의 정치적 중립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평화를 위해 전쟁에 대비해야 할 군대가 청와대 눈치를 보며 평화를 외치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김 전 원장은 "안보와 협력은 동시에 굴러가는 수레바퀴"라며 "분단국으로서 남북 화합과 협력을 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안보는 확고하게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대북 구상, 국제 공조 이탈로 이어질까
美, '제재 준수' 강조…대북 사업 '과속' 우려 표해


일각에선 청와대 주도 하에 각 부처가 사실상 '원 보이스'로 호응하고 있는 독자적 대북 구상이 국제 공조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중 '신냉전' 구도가 짙어지는 상황에서 중국‧러시아가 북한과 접촉면을 넓히며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가 제재 경계를 넘나드는 대북 사업을 추진할 경우 미국에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평가다.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하듯 미국 국무부는 우리 정부가 5.24 조치 사문화와 관련해 북한 선박의 제주 해역 항해 가능성을 언급하자마자 '모든 유엔 회원국의 제재 이행'을 강조하고 나섰다. 미 국무부는 그간 "남북협력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비핵화 진전과 남북협력이 보조를 맞춰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해 대북 사업 '과속'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명해왔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보는 한 인터뷰에서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를 수용하지 않는 한 미국은 의미있는 수준의 제재 완화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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