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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방 구애'에도 북한이 '삐라' 걸고넘어진 이유는?


입력 2020.06.04 14:57 수정 2020.06.04 15:52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김여정 "대북사업 '호응' 요구 전에 집안 청소부터"

'대북전단 금지법' 만들라며 '최악의 국면' 경고

韓에 공 넘기며 당분간 대화 의지 없음을 피력

정부, '대북전단 규제 법안' 추진…험로 예상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자료사진) ⓒ데일리안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자료사진) ⓒ데일리안

한국 정부가 대북 협력의지를 지속 표명하고 있는 가운데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탈북민 단체의 '삐라(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으며 '최악의 사태'를 운운하고 나섰다.


최근 한국 정부가 각종 협력 제안에 "북측이 호응하지 않는다"며 공을 거듭 떠넘기자, 북한이 대북전단을 근거로 대화 교착 책임을 한국에 전가하는 모양새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4일 브리핑에서 "접경지역에서의 긴장 조성 행위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대북전단을 규제하는 "법률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여 대변인은 "법률안의 형태에 대해서는 정부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통일부가 개정을 추진 중인 남북교류협력법을 손보는 것인지, 새로운 법안을 제출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통일부의 이날 입장 발표는 김 부부장의 담화문 공개 4시간 만에 이뤄졌다. 예정에 없던 공개 브리핑까지 자처해 법안 마련 의지를 밝힌 만큼 통일부가 '대북전단 금지법을 만들라'는 김 부부장 요구에 사실상 '화답'했다는 평가다.


여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판문점 선언 이행 차원에서 정부는 그(김여정 담화) 이전부터 (법률안을) 준비해오고 있었다"며 김 부부장 담화를 계기로 법안 마련에 나선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김 부부장은 이날 발표한 담화문에서 대북전단 살포에 강한 불만을 표하며 △남북 군사합의 파기 △개성공단 완전 철거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등의 '최악의 국면'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부부장은 "남조선 당국은 군사 분계선 일대에서 삐라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하기로 한 판문점선언과 군사합의서 조항을 결코 모른다 할 수 없을 것"이라며 "구차하게 변명할 생각에 앞서 그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고 애초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남북 정상이 합의한 '4.27 판문점 선언' 2조 1항에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 부부장은 이어 "얼마 있지 않아 6.15 (남북공동선언) 20돌을 맞게 되는 마당에 우리의 면전에서 거리낌 없이 자행되는 이런 악의에 찬 행위들이 '개인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방치된다면 남조선당국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보아야 할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남조선 당국자들이 북남 합의를 진정으로 귀중히 여기고 철저히 이행할 의지가 있다면 우리에게 객쩍은 '호응' 나발을 불어대기 전에 제 집안 오물들부터 똑바로 청소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북전단 금지법', 위헌 논란 불거질 듯
야권 및 여론 반발도 불가피할 전망
전문가들 "北, 공을 한국에 떠넘겨"


김 부부장이 담화문에서 언급했듯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한국에서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를 강제로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찰력을 동원해 예고된 전단 살포를 제지한 사례는 있지만, 기습적 전단 살포까지 막아설 방도는 사실상 없다.


이에 정부가 법률 제정을 통한 대북전단 규제 카드를 꺼냈지만 실제 입법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위헌 논란에 휩싸일 여지가 있는 데다, 180석에 달하는 범여권 입법 권력을 활용해 법안 처리를 밀어붙일 경우 야권 반발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여파로 침체된 경제 살리기에 몰두해야 할 정부가 북한 관련 법안에 힘을 쏟을 경우 여론 악화를 피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결국 북한이 한국 정부가 뾰족한 수를 찾기 힘든 카드를 활용해 대화 교착 책임을 한국에 떠넘김으로써 당분간 대화할 의지가 없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통화에서 "우리 정부가 교류협력을 하고 싶다고 하니 그전에 북한을 어지럽히는 행위부터 손보겠다고 나온 것"이라며 "공을 한국에 떠넘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 교수는 "북한이 남북관계 진일보를 희망하는 문 대통령의 취약점을 파고들고 있다"며 "정부가 일부 호응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고 평가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사실상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대변하고 있는 김 부부장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전제조건을 제시했다"며 "우리 정부의 돌파 의지와 역량을 계속 테스트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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