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적 관계 규정… 선순환 구상 타격 불가피
영국 싱크탱크 "시진핑에 한반도 중재자 역할 뺏겨"
관계 복원 위해 대북 전단 금지 조치 우선순위 둘 듯
북한이 9일 남북 관계를 '대적 관계'로 규정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제안은 '메아리 없는 외침'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문 대통령은 최근까지 북미 관계와는 관계없이 남북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자며 남북 협력사업에 대한 변치 않은 의지를 보여왔다. 그러나 당장 국외에서는 문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의 중재자 역할을 빼앗겼다는 분석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올해 들어 '선순환론'을 유독 강조해왔다. 남북 관계의 개선은 북미관계의 진전으로 연결된다는 구상이다.
그는 올해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제 북미 대화만 바라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남북도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서 남북 관계를 최대한 발전시켜 나간다면 그 자체로도 좋은 일"이라며 "그것이 북미 대화에 좋은 효과를 미치는 그런 선순환적인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위해 남북 공동방역, 개별 관광, 이산가족 상봉, 철도 연결사업 등의 추진을 제안해왔다. 그는 판문점 선언 2주년을 맞은 지난 4월 27일 "코로나19의 위기가 남북 협력에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며 "남과 북이 함께 코로나 극복과 판문점 선언 이행에 속도를 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개척하며 상생 발전하는 평화 번영의 한반도를 열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또 지난 5월 10일 취임 3주년 대국민연설에서 "코로나 상황이 진전되는 대로 우리의 제안이 북한에 받아들여지도록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북한의 반응은 냉담하다. 북한은 지난 7일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남조선 집권자가 북남 합의 이후 제일 많이 입에 올린 타령을 꼽으라고 하면 '선순환 관계' 타령일 것"이라며 "선순환 관계를 남조선 당국자는 북남관계와 조미관계를 서로 보완하며 추진해 나가는 것이라고 그럴듯하게 해석하는데, 말이 그렇지 실천에 있어서는 북남관계가 조미관계보다 앞서나갈 수 없으며 조미관계가 나빠지면 북남관계도 어쩔 수 없는 관계로 여기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중재자' 역할을 중국에 빼앗겼다는 국외의 전망은 문 대통령에게 뼈아픈 대목이다. 9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 보도에 따르면 영국의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지난 5일 발간한 '2020 아시아태평양 역내 안보평가' 보고서에서 "문 대통령이 주장하는 한반도 중재자 역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빼앗긴 상태"라고 분석했다.
IISS는 "북미 정상 간 직접적인 소통로가 구축되면서 남북 간 대화의 가치는 급격히 낮아졌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관계가 소환해지자 시 주석에게 조언을 구하고 경제적 원조를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남북 관계가 2018년과 같이 짧은 시기의 평화를 다시 맞이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 성사되더라도 한국이 아닌 북미 사이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 대통령의 '선순환론'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남북 관계가 중대 기로에 놓인 가운데 문 대통령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인다. 문 대통령은 현 상황의 도화선이 된 대북전단(삐라) 문제 해결에 우선 순위를 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정부의 통일된 입장은 통일부에서 밝혔다"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