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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못할 국회' 출범…주호영 사의에 영향


입력 2020.06.16 00:30 수정 2020.06.16 04:34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주호영 "민주주의 파괴 막지 못한 책임 지겠다"

절대다수 동료 의원들 만류에도 사퇴 의사 고수

국회 기능 상실, 삼권분립 붕괴에 절망감 느낀듯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의원총회 도중 안경을 만지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의원총회 도중 안경을 만지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야당 의원 상임위 강제 배정과 집권여당 단독 본회의로 상임위원장 선출 등 국회 본연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일하지 못할 국회' 출범에 제1야당 원내대표가 사의를 표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15일 오후 범여권 의원들끼리 본회의장에 모여 상임위원장을 뽑고 있던 그 시각, 국회 로텐다홀 맞은편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 도중 사퇴할 뜻을 밝혔다. 이종배 정책위의장도 동반 사의를 표명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이 야당 의원들의 상임위를 강제배정하고, 여당 의원들만으로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폭거가 진행 중"이라며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갑작스런 사퇴 선언에 깜짝 놀란 통합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협상이 아닌 협박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원내대표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힘을 모아 같이 풀어나가자"며 사의를 만류하고 재신임을 하겠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주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까지 제1야당이 맡아온 법사위를 지켜내지 못했다"며 "우리나라 의회민주주의가 파괴되는 것을 막아내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사의를 고수했다.


이날 파국의 순간까지 주호영 원내대표의 책임론은 거의 제기되지 않았다. 통합당 핵심 관계자는 "특정 의원이 거취 문제를 거론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주호영 원내대표를 겨냥했다기보다는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조준한 느낌"이라며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가장 큰 기둥이 주호영 원내대표이기 때문에, 주 원내대표를 타격해 '김종인 비대위'를 흔들자는 복안이 깔려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그런데도 주호영 원내대표는 비공개 의총에서 전격적으로 사퇴 의사를 밝혔다. 아울러 절대다수 의원들의 만류와 재신임 의사표시에도 사의를 거둬들이지 않았다. 이에는 21대 국회 개원 과정에서 협상 파트너인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준 행태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여권의 의도가 드러나면서 대한민국 의회민주주의의 앞날에 대한 절망감이 미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코로나 추경이라며 간호사 위험수당도 안 줘
급하니까 해달라고…무슨 종전선언결의안도"
예산안·법안·결의안, 아예 심의 받기 싫다는 뜻


통합당 원내 관계자는 "국회의 '일'이란 견제"라며 "기획재정부가 자신들의 '일'을 해서 예산안을 편성해오면, 국회는 그것을 시간을 들여 심의해서 삭감하는 게 본연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정부 각 부처와 법제처가 자신들의 '일'을 해서 법률안을 성안해 제출하면, 국회는 그것을 수정하거나 통과시키지 않는 게 '일'"이라며 "그냥 마구 통과시키는 게 '일'이라면 기재부와 법제처에서 바로 만들면 될 것을 뭣하러 국회를 두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집권여당은 마치 정부부처가 제출한 예산안과 법안을 정신없이 의사봉을 두드려 통과시켜주는 게 '일하는 국회'인 것처럼 해괴한 프레임을 날조해냈다"라며 "절대다수 의석을 등에 업고 잘못된 국회관을 기정사실화해 삼권분립의 우리 헌정질서를 해체하려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민주당의 행태가 5선 중진의 의회주의자 주호영 원내대표를 실의에 빠뜨렸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로 이날 주호영 원내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공개발언을 한 본회의 항의성 의사진행발언에서 이같은 점을 질타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3차 추경이 '코로나 추경'이라고 하지만, 코로나 관련 예산은 2%밖에 되지 않는다"라며 "K-방역 성공모델로 꼽히는 간호사들 위험수당조차 주지 않으면서, 데이터 아르바이트 하는 예산 1000억 원을 가져와서 급하니까 (통과)해달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북 유화 정책의 실패로 북한으로부터 조롱과 모욕과 협박을 받고 있으면서 정책 방향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라며 "무슨 종전선언촉구결의안 이런 것을 (여당)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 이러는 것 아니냐"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 제출한 법률안, 그외 여당 의원들에 의해 이뤄지는 각종 '대북굴종' 결의안 등을 아예 야당 의원들이 참여한 국회에서 심의받고 싶지 않다는 의도라는 점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국회의 기능과 존재 의의에 대한 근본적 부정에 대한 항의 발언이었다는 것이다.


민주당과의 협상 과정에서 나날이 이러한 의도를 접하면서, 원내대표를 넘어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으로서 활동 의의가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에 깊은 회의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게 통합당 안팎의 관측이다.


헌정사 오점 박병석, 19일 본회의 강행 부담 가중
상임위 가동 호언한 집권세력도 어려움 직면할듯
"상임위 둘러싸고 하지 않았어야할 선을 넘었다"


이날 주호영 원내대표와 이종배 정책위의장의 동반 사의 표명에 통합당 원내지도부는 공백 상태에 빠졌다. 원내수석부대표를 비롯한 원내대표단은 원내대표에 의해 지명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원내대표와 동반 사퇴하게 된다. 실제로 당장 16일 통합당 일정 공지에 원내대표·정책위의장의 일정이 빠진 것은 물론, 순번제로 운영되던 원내대변인의 당번 공지까지 사라졌다.


'친정' 집권여당의 강력한 압박에 야당 의원들을 상임위에 강제배정하는 등 헌정사에 오점을 찍으며 임기를 시작한 박병석 국회의장은 오는 19일 다시 본회의 소집을 예고했지만 정치적 부담은 가중될 전망이다. 본회의 소집에 앞서 불러서 의견을 청취하는 척 모양새를 갖출 야당 원내대표 자체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집권여당도 16일부터 모든 상임위의 가동을 공언했지만 야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에 의해 강제로 배정된 상임위를 자신의 소속 상임위로 인정할 리가 만무하다. 상임위에 출석할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상임위원장을 본회의에서 선출했더라도 상임위에서는 여야 간사를 선임한 뒤, 국회법 제49조 2항에 따라 위원장과 간사의 협의를 거쳐 상임위의 의사일정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협의해야할 야당 간사 자체가 없으니 의사일정 결정 자체가 위법해진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회법 제48조 3항에 정보위원회 위원은 국회부의장과 협의해서 선임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야당 국회부의장이 없기 때문에 협의할 상대가 없어 오늘(15일) 정보위원 강제 배정을 하지 못했고 따라서 정보위원장도 선출하지 못했다"라며 "마찬가지로 야당 간사가 아예 없으면, 야당 간사와 협의해야할 의사일정과 개회일시를 정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상임위 내의 소위도 구성해야 하는데, 야당 의원들이 불참하는 가운데에서는 상임위원장이 야당 의원들의 소위마저 강제배정해야 하는 등 정치적 무리수가 연속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그나마 소위 강제배정은 국회법에 직접적인 근거 규정마저 없다.


결국 '모든 상임위 가동'이라는 집권여당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실제로는 제1야당 미래통합당과 제2야당 국민의당의 불참 속에서 집권여당 민주당과 본회의에 '구색 맞추기'로 동원됐던 여러 범여권 정당 소속 의원들끼리 모여서 여당 간사를 선임하는 등의 활동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최형두 통합당 원내대변인은 "(통합당 의원들은 상임위에 출석하기) 어렵다. 강제 배정됐기 때문에"라며 "상임위를 둘러싸고 (국회의장과 집권여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야할 그러한 선을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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