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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소민의 슬기로운 예술소비] 뱅크시의 세상과 소통하는 거리예술 화법


입력 2021.04.29 15:24 수정 2021.04.29 16:38        데스크 (desk@dailian.co.kr)

뱅크시(Banksy), 원래 제목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 바뀐 제목 ‘사랑은 쓰레기통에(Love is in the Bin’ ⓒ게티이미지 코리아

(https://youtu.be/vxkwRNIZgdY 뱅크시가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올린 ‘풍선과 소녀 분쇄하기 감독판’ 영상. 1분 55초 지점부터 작품이 낙찰되고 곧이어 파쇄기가 작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banksyfilm)


위 작품은 2017년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예술품으로 선정된 것으로 2018년 10월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뱅크시의 경매 작품 중 최고가인 104만 파운드(한화 약 15억 원)에 낙찰됐다. 그런데, 낙찰 직후 액자 틀에 숨겨진 소형 분쇄 장치가 가동되면서 절반이 분쇄된 사건이 발생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행한 퍼포먼스로 판명됐고, 훼손시킨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경매 낙찰자는 구매했다. 소더비는 이를 두고 역사상 처음으로 경매 현장에서 창조된 예술품으로 선정했다. 작품을 훼손작품 임에도 고가에 낙찰되는 아이러니한 진풍경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 경매장에서 시장 가치가 높은 작품을 분쇄함으로써 예술 시장의 가치부여와 대중의 선호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뱅크시의 거리예술 화법이 명중한 퍼포먼스로 예술과 현실이 맞닿는 사건이었다.


뱅크시(Banksy)는 세계적인 그라피티 아티스트(graffiti artist)다. 본명은 로버트 뱅크스, 1974년 영국 브리스톨 출생으로 추정되며 현재까지도 ‘가명 미술가’로 활동한다. ‘그라피티’와 ‘거리 예술’의 경계에서 활동하는 ‘얼굴 없는 거리의 화가’ 이며 영화감독으로도 알려져 있다. 영화감독다운 그의 작업 화법은 대중과의 관계, 작품에 대한 평가를 고려하면 그라피티보다는 거리 예술가에 가깝다.


거리예술은 초기 ‘그라피티 미술운동’과 그 맥락을 같이 하는데 ‘거리는 위대한 문화실험실’이라는 전제로부터 시작됐다. 그라피티는 당대 도시의 정치, 문화, 경제 질서를 반영하며 발전해 왔다. 주류 문화에 편입되는 것과는 관계없이 그라피티는 대도시의 자본 및 도시 계획과 갈등을 빚어 왔으며, 도시 행정부는 그라피티를 제거, 통제, 금지해왔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법과 경제 질서를 비판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저항과 반항의 예술이기도 했다. 그라피티 라이팅 초기에는 허가 없이 무작위로 행해져 태생부터가 ‘불법적인 미술운동’이라는 법적, 제도적 관습과 규율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됐다. 제약과 긴장감 속에 제 빠르게 행해질 수밖에 없었기에 주로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용했고, 긴박감 넘치는 알파벳의 변형처럼 관습적인 문자를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이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또 다른 자아의 존재를 확인하고 주장하는 행위였다. 벽을 캔버스 삼아 행하는 이 운동은 미술과 디자인의 간극을 허물었고 정통 미술사를 뛰어 넘는 하나의 예술장르가 됐다.


그라피티(graffiti)는 ‘긁다, 새기다’라는 뜻으로 1960년대 미국 뉴욕과 1970년대 이후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에서 발전했다. 40여 년간 그 명맥을 이어왔으며, 어느덧 도시의 풍경과 새로운 문화를 형성 하는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추상회화 같은 작품부터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를 풍자하는 작품까지 그 주제가 다양해져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거리의 도시 공간에 그려지며 공공미술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공공기물에 그린다는 점 때문에 위법행위로 간주되기도 했지만 1980년대 이후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그라피티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라피티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거리에 그렸던 작품들이 미술관으로 들어오면서 미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거리 예술은 이러한 그라피티의 파생물이다. 갤러리와 미술관을 통해 거리 예술가인 키스 해링(Keith Haring),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가 전시회를 통해 데뷔했고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때문에 거리 예술은 그라피티에 비해 공격성이 덜하다. 공공장소에 그린 태그나 그림이 상품으로 변형되어 출시됐고, 이처럼 그라피티와 거리예술은 비슷한 것 같지만 차이가 크다.


거리 예술가들은 그라피티 라이터들이 표현하는 분노를 무조건 공유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장난이나 유머를 활용한다. 시각적 이미지에 집중하여 그라피티의 주된 표현 수단인 스프레이와 페인트에서 벗어나 스텐실, 포스터, 설치 예술, 행위 예술 등으로 표현 매체를 확대한다. 거리 예술은 그라피티처럼 뜻을 알 수 없는 문자의 조합이나 스타일 개발에 집착하지 않는다. 관객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작품을 구성한다.


두 예술을 대하는 대중의 반응에도 차이가 있다. 1980년대 대중은 힙합 문화의 일부로 그라피티를 인지했지만 문자를 공공 공간에 남기는 행위는 수용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그림을 내세운 거리 예술은 유머를 섞어 대중에게 다가갔고 이해 가능한 예술이 됐다. 도시 공간을 점유한다는 제작 의도나 기법은 비슷하지만 두 예술을 대하는 대중과 사회의 인식은 달랐다. 앞서 탄생한 그라피티가 상업적 진입 장벽을 낮춘 덕에 후발 주자인 거리 예술이 자본주의 체제에 쉽게 융화된 측면도 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상품에서 유명세(인기)는 상당히 중요하다. 사실적 의미나 맥락보다 인지도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대중의 호기심을 끌게 된다. 그러나 뱅크시는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에 편입하려 하지 않았고, 오로지 거리 활동으로 주류에 자리 잡았으며 여전히 주류와 주변,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창조적인 거리예술을 고수하고 있다. 부정적 평가에도 뱅크시가 거리예술가로서 확고한 위상을 가진 이유는 담론을 만들어 내는 그의 능력(화법) 때문이다. 1990년대에 거리예술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 30여 년간 뱅크시의 거리예술 퍼포먼스는 대상을 한정하지 않았다. 의사소통이 쉬운 상징과 어구를 사용함으로써 대중이 해독하지 못하는 문자 조합이 주였던 그라피티의 단점을 극복했다.


뱅크시는 분쟁지역 등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며, 스텐실 기법을 활용해 건물 벽, 지하도, 담벼락, 물탱크 등에 거리 그라피티 작품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달 초, 영국 레딩시에 있는 옛 레딩 교도소 담장 벽면에 뱅크시의 새 작품으로 추정되는 벽화가 등장했는데 특유의 사회 풍자적이며 파격적인 주제의식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은 익명으로 남는다. 그건 훌륭한 것 같다. 요즘 모든 사람들이 유명해 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익명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영화 배우 브래드 피트(Brad Pitt)가 뱅크시의 거리예술 활동을 두고 극찬 했던 말이다. 이러한 익명성의 힘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 그를 존재할 수 있게 만들었을 것 같다.


BONUS NOTE:


,‘뱅크시 진품 태워버리기 의식’ 유튜브 참고 ⓒ불탄 뱅크시 트위터

뱅크시의 판화작품 ‘멍청이들(Morons)’이 큰 이슈였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던 ‘비플’의 NFT 그림경매 직전에, ‘NFT 미술팬’이라는 한 집단이 '번트뱅크시(Burnt Banksy)'라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이벤트를 벌였다. 뱅크시의 판화 ‘멍청이’를 9만 5000달러(약 1억 7000만원)에 구입해 스캔하여 NFT로 전환한 후, 원본 그림은 불태워버리는 과정을 ‘뱅크시 진품 태워버리기 의식’이라는 유투브 영상으로 공개한 것이었다. 번트뱅크시의 회원은 카메라를 향해 "만약 당신이 NFT디지털 원본과 실물을 가지고 있다면, 그 가치는 주로 물리적 실물에 있을 것이다. 실물을 제거하면 NFT디지털 원본은 대체 불가능한 진정한 작품이 되고, 물리적 그림(실물원화)의 가치는 NFT로 옮겨올 것이기 때문에 불태워 없애는 것이다”라며 “뱅크시 역시 재산, 권력, 문화에 대한 우상파괴적인 발상을 추구하기 때문에 아마 우리가 하는 일을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멍청이’ NFT는 경매시장 오픈씨(OpenSea)를 통해 원본의 4배에 달하는 가상화폐 228.69이더(EHT, 한화 약 4억 3000만원)에 팔렸다. 경매 수익은 모두 기부될 예정이며 낙찰자는 뱅크시 작품을 검증하는 업체 페스트 콘트롤(Pest Control)에서 진품인증서를 발급받는다. 멍청이’ NFT는 블록체인을 이용해 조작 불가능한 ‘원본 증명서’를 만들어냄으로써 전통 예술의 원본(original) 개념을 가능케 한 것이다. 다만, 과연 뱅크시 작품의 NFT를 작가가 아닌 소장자가 만들어 돈을 벌 수 있는가의 저작권 이슈가 제기되고 있다.


한편, ‘불탄뱅크시’팀의 정체가 블록체인 회사 인젝티브 프로토콜 관계자로 드러났고, 유투브 영상에는 ‘좋아요’ 와 ‘싫어요’ 700여개가 각각 달렸다 NFT 기술이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된 기술로 가상자산시장, 특히 예술시장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면서 뱅크시 원화를 NFT로 전환하여 판매하는 자칭 "기술력 갖춘 예술 애호가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원작을 불로 태우는 일은 역사상 처음이기에 큰 이슈였던 것이다.


뱅크시는 투자 대상이 된 예술과, 작가의 명성에 기댄 자산을 창조하는 동시에 파괴한다. 멍청이 작품은 대표적인 사례로, ‘이런 쓰레기를 사는 멍청이들이 있다는 걸 믿지 못 하겠다’고 써진 그림과, 이를 태우는 영상조차 미술 경매 품 구매자들을 비꼬고 있다.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그림을 사는 사람들을 향해 지나치게 부풀려진 예술 시장을 풍자한 것으로. 앞서 언급했던 뱅크시가 자신의 작품을 분쇄한 ‘풍선과 소녀’를 연상케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관객의 관심을 높이는 퍼포먼스 전략은 뱅크시를 가장 상업적인 동시에 예술적인 아티스트로 만들었다.


“TV는 극장에 갈 필요가 없게 만들었고, 사진은 그림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래피티는 인류의 진화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다”라고 거리예술가 뱅크시는 말한다. 모든 분야에서의 이미 디지털화가 트렌트인 것은 사실이다. 세상은 점점 더 가상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뱅크시는 여전히 자본의 논리를 비판하고, 다른 시선으로 사회 체제를 바라보며 예술과 대중문화의 간극을 좁히고자 끊임없이 시대를 기록할 것이다. 이것이 세상과 소통하는 뱅크시의 거리 예술 화법이다.


홍소민 이서갤러리 대표 aya@artcorebrown.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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