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회고록 출간 소식에 정치권 술렁
운동권 특유 ‘투사화’ 작업, 한명숙 닮음꼴
추미애·이낙연 "검찰개혁 완성하자" 동참
2030 민심 더 떠날라…민주당 속내 복잡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갑작스러운 회고록 출간 소식에 정치권이 술렁였다. 야권은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4.7 재보선 참패의 원인으로 '조국 사태'를 지목하는 상황에서 정면 반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전 장관의 회고록에 민주당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주목되는 이유다.
레토릭을 걷어 내고 조 전 장관이 소개한 발간 배경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검찰개혁이라는 사명을 수행하다가 검찰·야당·보수언론 카르텔에 희생됐다' '가족의 고통에 너무 힘들다' '국론분열은 죄송하지만 나는 억울하다' '촛불시민 응원에 아직 살아 있다' '그럼에도 정치적 부담이 된다면 민주당은 나를 밟고 가라' 등이다.
이는 민주당 특유의 민주화 투사 혹은 열사를 칭송하는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다. 586 운동권이 주류인 민주당은 대의를 위한 희생을 매우 고결한 가치로 여기며, 그 과정에서 생긴 과오나 흠결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보안법과 집회시위법 위반 등의 전과기록을 마치 민주화 투쟁의 훈장처럼 여기는 게 대표적이다. '희생'이라는 가치가 두드러질수록 과오까지 포장되는 구조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비슷한 사례다. 한 전 총리 역시 '불의한 권력에 대항하다 정권과 검찰, 언론의 무자비한 공격에 쓰러졌다'는 내용의 자서전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한 전 총리의 유죄는 검찰의 '증거조작'이라고 민주당은 이미 결론 내리고 성역화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일각에서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과도 비교한다.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던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과 지지층에 "나를 버려야 한다"고 했었다.
조 전 장관의 회고록 출간 소식에 '열사'로 포장하려는 시도가 없지 않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국의 시련은 개인사가 아니다"며 "검찰개혁이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됨을 일깨우는 촛불시민 개혁사"라고 했다. 이어 "촛불시민의 명령인 검찰개혁의 깃발을 들고 앞장서 나갔던 그에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중단 없는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도 "가족이 수감되고, 스스로 유배 같은 시간을 보내는데도 정치적 격랑은 그의 이름을 수없이 소환한다. 참으로 가슴 아프고 미안하다"며 "조 전 장관이 뿌린 개혁의 씨앗을 키우는 책임이 우리에게 남았다. 고난 속에 기반을 놓은 정부의 개혁 과제들, 특히 검찰개혁의 완성에 힘을 바치겠다"고 적었다.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의 정치권 전면 등장을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민주당이 의뢰한 조사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2030 청년들의 이탈에 '조국 사태'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2030의 눈에는 '검찰개혁 투사'가 아니라 '선량한 청년들의 기회를 빼앗은 잘나가는 부모'였을 뿐이다. '민생 우선'이라며 검찰개혁도 후순위로 밀어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조 전 장관의 회고록 관련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고, 공식 논평이나 브리핑도 따로 없었다. 이른바 '조국 키즈'로 불렸던 의원들 역시 아직까진 개인적인 입장표명이나 코멘트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재보선 참패로 위기감이 큰 서울지역의 한 의원은 "조 전 장관이 큰일을 하신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회고록 관련해)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을 것 같다"며 입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