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의병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사실 의병(의로운 병사)이란 정말 특이한 존재다. 의병을 정치적으로 정의하면 파르티잔(partisan)이라고 할 수 있다. 파르티잔, 빨치산이라고 하면 일부에서는 ‘빨갱이’를 연상해서 언짢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파르티잔이란 단어 자체를 나쁘게 이해할 필요는 없다. 파르티잔이란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무장해서 저항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원래 국제법상 이들은 군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특히 독일 같은 나라는 이들을 군인으로 인정하는 것에 격렬히 반대했다. 왜냐하면 보불전쟁 당시 이른바 ‘프랑스 사냥꾼’이라는 이름의 프랑스식 의병 즉, 레지스탕스의 원조쯤 되는 이들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적 조류가 바뀌며 이들을 정규군은 아니라 해도 군인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졌고, 결국 1899년 만국평화회의에서 이들을 군인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들을 군인에 버금가는 존재로 인정하면서 의병 활동은 더욱 본격화되었다. 물론 우리나라는 이와 별개로, ‘국난극복’의 기치를 건 의병이 이미 자리잡고 있었다. 몽골의 침략 때 그러하였고, 왜란과 호란 때도 그러했다. 세계 각국에서도 전근대 전쟁에서 근대 전쟁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의병, 즉 파르티잔의 활동은 각광을 받았고, 일부 국가에서는 이들의 전력을 매우 중요하게 평가하고 일종의 숨겨진 전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양상이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난 것이 나폴레옹 전쟁이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 프랑스는 단숨에 스페인 정규군을 물리치고 스페인 왕조를 굴복시킨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자신의 형을 스페인에 보내서 황제로 삼았다. 이때 스페인 민중을 중심으로 저항이 일어난다. 물론 이를 배후에서 지원한 것은 당시 영국이었지만, 여하튼 중심 역할을 한 것은 스페인 민중이었다. 이른바 소규모의 전쟁, 즉 ‘작은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스페인어로 작은 전쟁(‘guerra’)에 휘말려 프랑스 정규군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스페인 민중의 게릴라에 프랑스군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자 심지어 지역민을 인질로 잡고, 그들이 저항하면 처형하라고 형에게 조언하기도 했다. 나폴레옹이 취한 방법은 이후 게릴라를 탄압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리잡게 된다. 게릴라가 지역민 속에서 활동하는 것을 차단하면서, 게릴라의 저항이 이어질 경우 지역민을 인질로 잡고 대신 처벌하는 것이었다. 즉, 지역민과 게릴라를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이다.
사실 파르티잔, 즉 게릴라 전술을 펼치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민중이기 때문에 총기만 버리면 민중과 게릴라를 구분하기 힘들다. 설사 마음속에 저항 의지가 있다 해도 무기를 들기 전까지는 게릴라라고 할 수 없었다. 게릴라는 이런 점을 이용해 민중 속에서 저항을 이어나갔던 것이고, 나폴레옹은 이를 파악하고 게릴라의 저항을 탄압하려고 했다.
그래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는 민중이 무기를 들기 전까지는 저항자로 볼 수 없다고 규정했다. 다만 군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식별 가능한 명확한 표시를 부착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무기를 들고 저항하기 전까지는 이들을 민간인으로 봐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점령군이 비전투원인 민간인을 공격하는 행위는 전쟁 범죄로 규정했다. 다만, 명확한 식별 표시를 하지 않고 저항하는 것은 자칫 점령군에게 범죄자로 취급될 수 있다는 점 또한 분명히 했다.
그 뒤 파르티잔은 굉장히 애매한 존재가 된다. 이른바 회색지대에 있는 전력으로 인식된다. 사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이와 조금 엇갈리는 협의가 나오기도 했다. 점령 지역의 사람들은 점령한 나라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처벌을 피할 수 있고, 저항하지 않는 것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파르티잔은 이러한 복종의 의무를 거부한 사람들이었다. 사실상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고 신념을 위해 기꺼이 모험을 감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험’이라고 하니까 꼭 어린이 영화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모험’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국어사전에는 모험에 대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어떠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처음 만든 군사 조직의 이름 역시 ‘구국모험단’(救國冒險團)이었다. 모험의 가장 핵심적인 모습은 자신의 안전을 도외시하는 생각과 의지였다. 독립운동 역시 이러한 모험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soothhistory@nah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