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약탈 정권’ 규정에 국민들 얼마나 공감하느냐가 관건
화려한 수사보다 거칠고 투박한 YS, 노무현 방식 직접화법
윤석열의 ‘출마 선언문’을 읽은 필자의 소감은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수위(水位)가 높다는 것. 봉건, 전제 정치 이미지인 약탈(掠奪, 폭력을 써서 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음)이란 말을 반복해서 사용했다. 의도적이다. 검찰총장 사퇴 시의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치는)에서 더 강공으로 나간, 그의 조어(造語) 또는 어휘 선택 감각이다. 학자나 공직자 류가 아닌, YS(김영삼) 류(類)의 매우 거친 스타일이다.
다른 하나는 ‘기획’하지 않은 윤석열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줬다는 점이다. 화려한 수사(修辭)도 없고 세련된, ‘초현실적’ 감각의 장식도 없다. 연단 뒤에 내건 ‘공정과 상식으로 국민과 함께 만드는 미래’라는 배경 막은 2021년 판으로는 믿기지 않는, 투박하고 촌스러운 디자인이다. 모든 것들이 점잔빼지 않고 막 가는 종류여서 차라리 노무현을 연상시킨다.
그의 이런 거친 면들은 여성들과 보수 연령층에서 썩 매력적으로는 보지 않는 것이라고 할 때, 약간 흥미로운 미래 관전 포인트를 제공한다. 아직 캠프 진용이 갖춰지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윤석열 스타일이 그런 것으로 보인다. 꾸미고, 고상한 척하고, 여러 가지를 고려하는 표현과 이미지를 그는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단도직입적이고 직설적이다.
그의 이런 ‘직접화법’에 제1야당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은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는 지가 담겨 있고, 젊은 세대가 배척하는 애매모호한 화법이 아닌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화법이 인상적인 훌륭한 연설”이라고 호평했다. 반면 집권 민주당 의원들은 ‘무능한 검사의 넋두리’(윤호중), ‘동문서답, 횡설수설’(박주민), ‘극우 인사(가 써 준 글)의 영혼 없는 대독’(정청래)이라고 혹평했다.
야당 사람들의 깎아내리기는 ‘그럼 그렇지’라는 식의 예정된 것이다. 그들은 자기 정권이 논공행상(論功行賞)으로 검찰총장 자리까지 올려 준 사람이 배은망덕(背恩忘德)해 야권 대선 주자로 나선 데 대해 없는 죄도 뒤집어씌울 태세다. 그의 대권 준비는 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될 리가 없다고 보고 싶어 하는 게 그들의 마음이다.
구체적인 정책과 미래 비전이 없다는 것이 이들의 비난 초점이다. 윤석열은 출마 선언문에서 앞으로 자신의 선거 운동 핵심 슬로건이 될 만한 정책 한 가지는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진보적 복지 의제(議題) 같은 것이 그런 종류다. 그는 대신 시대의 화두, 즉 시대정신이 공정과 상식이며 이 두 가치를 위해 정권교체를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데, 그 일을 사명으로 준 국민의 부름을 받아 나온 것이라고 출마의 변(辯)을 대신했다.
연설문은 시작부터 허사(虛辭)가 없다. 3월 초 검찰총장 사퇴 후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이 한결같이 ‘도대체 나라가 이래도 되는 거냐’고 했다는 ‘여론’을 전하고 있다. 문장을 많이 써 본 솜씨다. 쓸데없는, 하나 마나 한 말 대신하고 싶은 말부터 팍 찌르고 보는 스타일이다.
그다음에는 원로가 아닌, ‘안보 청년’들의 분노를 전한다. 천안함 피격과 자주포 폭발 사고 주인공인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킨 영웅들’, 그리고 마포의 자영업자가 토하는 분노를 얘기하며 이들과 함께 하겠다고 선언했다. 국가와 국민을 지킨 그들을 왜 국가는 내팽개치느냐고, 그들의 주장을 국민에게 대신 들려주었다.
문장을 쓸 줄 아는 사람은 글의 처음 한두 문단이 승패를 가름한다는 것을 안다. 윤석열(그리고 혹시 있었다면, 그의 연설문 첨삭(添削)에 관여한 측근들)은 이 두 문단 작성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는 이 서두에서 그가 보는 한국의 안보, 경제 문제를 축약하고 있다. 그리고 청년들을 전면에 등장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위대한 국민’을 상기시켰다. 청년을 먼저, 이어서 중노년 보수층을 아우르고자 하는 전략이다. 현 정권의 중심축인 586 운동권 출신들이 그토록 저주하며 배척한 산업화 세대들도 민주화 세대들과 함께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영웅들이라는, 자신의 보수적, 중도우파적 시각을 강조한 것이다.
“위대한 국민, 그 국민의 상식으로부터 출발하겠다.”
윤석열의 보수우파 정체성 확인, 다시 말해 대한민국을 끌고 가려는 방향이 분명치 않고 불안한 현재의 좌파 정권에 대항하는 야권의 대선 후보가 되겠다는 다짐은 그가 연설문에서 ‘자유’라는 말을 22번 사용한 데서 지나칠 정도로 분명하게 나타난다.
“(문재인 정권은)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한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다... 도저히 이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
그는 ‘이권 카르텔’, ‘권력 사유화’, ‘먹이사슬’ 등 야당 투사 같은 초강경 용어들도 구사했다. 그들의 기만과 거짓 선동에 속지 않으면서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집권 연장과 국민 약탈을 막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모든 국민과 세력이 힘을 합쳐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어내야 한다고 했다.
연설문을 읽고 보니 윤석열은 문재인과 조국 일당의 위선과 무능, 오만과 독선, 그리고 나라를 결딴내는 강남좌파 정책에 누구보다 분노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정권이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다. 그가 퇴임 후 4개월 동안 만난 사람들도 이 분노의 당사자들이 대부분이다.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산업화에 일생을 바친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민주화에 헌신하고도 묵묵히 살아가는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세금을 내는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이 분노하는 국민들은 그동안의 여론조사 수치로 미루어 최대 60%다. 윤석열은 이들이 ‘위대한 국민’이며 이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가 내년 3월에 정권교체 숙원을 이루려면 60% 국민 중 최소한 45%의 지지는 받아야 한다. 그들이 윤석열의 분노에 얼마나 공감하고 그가 앞으로 내놓을 정책과 방향에 얼마나 호응할지가 ‘준비된’ 소명(召命)의 실천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