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손준성 고발사주 의혹 '범죄사실 예단' 발언 뭇매
피의사실공표 엄단 하겠다더니…"제 논리로는 가능하다"
법조계 "정치인의 잘못된 습성 여전…중립성 상실 심히 우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 수사기관들이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 진상 파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수사 결과를 예단하는 듯한 발언을 잇따라 내놔 논란이 일고 있다.
그동안 박 장관은 무죄추정의 원칙과 이에 근거한 피의사실공표 금지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 왔지만, 야권이 불리한 사안에 대해서는 이들 원칙을 무시하는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 행태를 저지른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 장관은 최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기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고발사주 의혹 관련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핵심적인 수사 대상이다"고 언급해 논란을 빚었다.
여권은 윤 전 총장이 고발사주 의혹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지만, 이는 정황상 추측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수사기관들은 윤 전 총장의 관여 사실을 입증할만한 증거를 아직 밝히지 않았고, 윤 전 총장은 "악의적인 정치공작 프레임"이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또 박 장관은 국회에서 "손준성 검사를 직무 정지하고 수사로 전환해야 한다"는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장에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다"며 손 검사의 범죄 사실을 결론내린 듯한 답변을 내놨다. 이어 '문제의 고발장을 사실상 손 검사가 전달한 것으로 볼 수 있느냐'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는 "무리가 없겠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수사기관들은 손 검사가 문제의 고발장을 작성·전달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공식적인 수사 결과를 내놓은 바 없다. 이런 가운데 손 검사는 지난 14일 기자단에 입장문을 내고 "저는 본 건 고발장을 작성하거나 첨부 자료를 김웅 의원에게 전달한 사실이 결코 없다"며 의혹을 거듭 부인했다.
그동안 박 장관은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야 하며, 피의자가 인권침해 등 불이익을 겪지 않도록 피의사실 및 수사 진행 상황을 유출해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강변해왔다.
특히 박 장관은 '김학의 불법 출금'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등 정권을 겨냥한 수사 상황이 유출되자 "악의적인 피의사실공표 행위"라며 수차례 규탄했고, 지난 7월에는 피의사실공표 요건을 구체화한 수사 관행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여론몰이식으로 수사 내용을 흘리는 행위를 절대로 좌시하지 않고 엄단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하지만 고발사주 의혹을 놓고 박 장관이 윤 전 총장과 손 검사의 피의사실을 단정짓는 듯한 발언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각계는 법무부 장관이 스스로 원칙을 깨고 정치적 중립을 위반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예전 법무부 장관들은 '수사를 하겠다, 진상이 나오는 대로 국민들께 보고하겠다'는 식으로만 얘기했다"며 "윤 전 총장을 핵심 수사 대상이라고 했는데 그 죄를 범했다는 객관적 정황이 뭐냐"고 꼬집었다.
또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아직 감찰 단계인데 윤 전 총장이 핵심적 수사 대상이라고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게 가능하냐"고 반문했고, 이 같은 지적들에 대해 박 장관은 "제 논리에 의하면 가능하다" "진상규명도 법무부 장관이 해야 할 일"이라며 맞섰다.
정치평론가인 서정욱 변호사는 "행정부 관료인 박 장관은 원칙과 절차를 철저하게 따라야 하고 특히 법무부 장관인 만큼 중립성을 더욱 엄정하게 지킬 필요가 있다"며 "그런데도 공공연히 윤 전 총장을 범죄 행위자로 몰아가는 듯한 발언은 여전히 정치인으로서의 잘못된 습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내세워온 무죄추정 원칙과 피의사실공표 금지를 보란 듯이 위반하는 내로남불 행태를 태연하게 저지르고 있다"며 "내년 대통령 선거 결과와도 직결될 수 있는 매우 중대한 사안을 두고 법무부 장관이 중립적이 아닌 정치적으로만 행동하고 있어 굉장히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