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게임들, 남녀노소·어느 나라 사람이든 30초면 이해 가능”
“준비하며 너무 힘들었지만…시즌2, 떠오르는 그림들 몇 가지 있다”
세계적인 열풍을 끌어낸 ‘오징어 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지금의 반응이 얼떨떨하기만 했다. 그러나 황 감독에겐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겠단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를 끝까지 밀어붙인 것이 지금의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었다.
지난달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공개 직후 한국 콘텐츠 최초로 북미지역 시청 순위 1위를 차지하더니, 지난 1일 인도에서 1위를 기록하면서 마침내 이 작품이 서비스되는 83개국 모두에서 정상을 찍게 됐다.
“이렇게까지 열풍이 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좋다가도 얼떨떨하고, 지금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출연진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전세계에서 메시지가 오니 다들 놀라고 있다. 꿈인가, 생시인가 하고 있다.”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의 심플함을 인기 비결로 꼽았다.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게임은 과거 골목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어린아이들이 하던 놀이다. 복잡하지 않아 이해가 쉬운 것은 물론, 순수했던 그 시절 게임들에 잔혹함을 덧입힌 것이 기괴한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다른 게임 작품은 등장하는 게임이 어렵고 복잡하다. 천재 같은 주인공이 나와 풀어내며 진행된다. ‘오징어 게임’의 게임들은 가장 단순한 것들만 꼽았다. 남녀노소, 어느 나라 사람이든 30초면 다 이해한다. 그래서 우리 드라마에서는 게임을 하는 사람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다.”
밑바닥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담고자 한 의도도 있었다. 주인공 기훈은 물론 모든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절박한 인물들이었고, 국내에서는 ‘신파’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이것이 다수의 몰입을 끌어낸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기본적으로 모든 캐릭터가 루저다. 주인공 기훈도 남의 도움을 받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극에 등장하는 징검다리의 경우는 상징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징검다리가 끝나고 기훈이 앞사람을 밀어버린 상우에게 ‘그 사람 덕에 우리는 다리 끝까지 간 것’이라고 한다. 반면 상우는 ‘내가 죽도록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이런 두 사람의 관점이 세계관 차이를 보여준다. 상우는 자신을 승자라고 생각하고, 기훈은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통과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오징어 게임’은 루저들의 이야기다. 어떤 승자도, 영웅도 없다.”
지금은 흥행의 달콤함을 즐기고 있지만, 황 감독은 이번 도전이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했다. 거대한 세트장에서 펼쳐지는 게임, 이 게임을 통해 수백 명의 사람이 죽어 나간다는 설정 등 작품의 규모가 크고, 소재 역시도 파격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 감독은 이러한 실험적인 작품에 기회를 준 넷플릭스에 감사를 표했다.
“지상파나 케이블에서 가능한 것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영화에 맞는 서사는 아니었다. 자유롭게 만들 수 있도록 밀어줄 수 있는 곳은 넷플릭스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세계 일시에 공개할 수 있다는 것도 커다란 이점인 것 같다. 일주일 안에 말도 안 되는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다만 국내 시청자들 사이에서 불거진 ‘여혐’ 논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앞서 ‘오징어 게임’은 여성 캐릭터의 묘사가 구시대적이라는 비난을 받았었다. 극에 등장하는 한미녀는 생존을 위해 자신의 몸을 이용하는 장면이 담기는가 하면, 호피 무늬 등의 보디페인팅을 한 나체의 여성들이 VIP의 가구로 활용되는 장면이 포함됐다. 황 감독 해당 장면들의 의도에 대해 설명하며 여성 비하나 혐오에 대한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한미녀의 경우 그런 극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악의 상황에 놓였을 때 할 수 있는 행위라고 여겼다. VIP 장면 역시도 그들이 사람을 어디까지 경시할 수 있는가를 표현하려고 했고, 그것이 인간을 사물화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끝으로 시즌2에 대해 언급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오징어 게임’ 작업을 진행하며 스트레스로 인해 이가 6개가 빠졌다는 황 감독이지만, 뜨거운 인기를 실감한 만큼 시즌2에 대한 구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즌1을 하면서 너무 힘들었다. 극본을 쓰고, 제작하고 연출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당분간 다시 할 순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하지만 너무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안 한다고 하면 안 될 것 같다. 떠오르는 그림들은 몇 가지 있다. 다른 영화를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시즌2는 이야기를 해봐야겠지만, 그다음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