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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크레딧(68)] 김혜수, 버클리 음대 장학생에서 케이팝 작곡가까지


입력 2022.03.21 08:20 수정 2022.03.21 16:17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비투비 '피날레'로 데뷔

더뮤즈 프로덕션 이사

플레이리스트에서 음악은 누군가에게 위로를, 누군가에게는 공감과 기쁨을 선사한다. 이 같은 노래 한 곡이 발표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손들의 노력이 동반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수 외 프로듀서, A&R, 엔지니어, 앨범 아트 디자이너 등 작업실, 녹음실, 현장의 한 켠에서 노래가 나올 수 있도록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봤다.<편집자 주>


고등학교를 자퇴한 후 만 17세 나이에 미국의 버클리 음대에 진학한 김혜수.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온 김혜수는 한 번도 음악이 없는 미래를 꿈꿔본 적이 없었다. 클래식 연주가를 꿈꿨던 그는 지난해 엠넷 '킹덤: 레전더리 워'에서 비투비의 마지막 경연곡 '피날레'로 작곡가로 데뷔했고 현재는 더뮤즈 프로덕션 이사 직도 함께하고 있다.


결과물만 보자면 어린 나이에 음악으로 권위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인기그룹 작곡가에 이름을 올리는 등 평탄한 길처럼 보이지만, 그에게 두 번의 고비가 있었다. 첫 번째 고비는 예술 중학교 진학 시험에 실패했던 경험이다. 그때는 음악 자체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세 살 때 언니가 피아노 학원 가는 걸 보면서 저도 배우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 언니가 하는 건 다 따라 하고 싶었거든요. 크래서 클래식 분야로 진학하려 했는데 예술중학교 시험 때 곡을 잘못 준비해서 진학하지 못했어요.당시 음악은 내 길이 아닌가란 생각에 잠시 멀리하기도 했었죠. 그래도 배운 건 피아노 연주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시 피아노 학원을 다녔어요. 그때 선생님이 버클리 음대 입학을 앞둔 상태여서, 자연스럽게 버클리 진학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리고 클래식보다는 재즈 연주를 배워보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를 해주셔서 방향을 조금 틀었어요."


버클리 음대라는 목표를 갖게 된 후, 아현고등학교 실용음악과에 붙었지만 조금 더 이른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고등학교를 자퇴해 하루빨리 버클리 음대에 진학하기로 한 것이다.


"실용음악과에 붙은 시점부터 부모님께 제 실력을 인정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자퇴를 결심했죠. 그런데 저희 부모님께서 학업을 중시하시는 분이라 처음에는 당연히 반대에 부딪혔어요. 그래서 자퇴했을 때와 아닐 때 두 가지 버전의 10년 계획표를 짜서 보여드렸어요. 당연히 자퇴를 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물이 조금 아쉽게 만들었죠.(웃음) 그렇게까지 하니까 부모님께서 일주일 만 시간을 달라 하더니 결국 허락해 주셨어요."


그렇게 자퇴한 후 버클리 음대와 자매결연을 한 아카데미를 다니며 진학을 준비했다. 3개월 동안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영어 공부와 연주를 반복하는 일상을 보냈다. 당초 계획은 1년 후 버클리 음대 진학 시험을 보려고 했지만 경험 삼아 응시했던 그 해, 퍼포먼스과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피아노를 가르쳐줬던 선생님께서 버클리는 뷔페 같은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골라 담은 만큼 먹을 수 있는 학교라고요. '무엇을 해야지'라는 생각보다 '내가 어떤 걸 하고 싶은지 탐구해 보자'란 생각으로 입학해 제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소화하려 했어요. 처음에는 적응이 힘들었는데 피아노 연주도 재미있고 교수님들도 개방적이라 수업이 즐거웠어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고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했어요."


두 번째 고비는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준비하던 때, 학교의 전산 오류로 비자 연장을 하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또 한 번의 기회였다.


"학교에서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가 연장이 안된다는 연락을 받게 됐어요. 그러면서 너무 미안한 말이지만 2주 동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그 연락을 받았을 때 솔직한 심정이 '내 인생 망했다'였어요. 대학원까지 진학하고 미국에서 연주자로 살려고 했던 제 계획이 완전히 망가졌으니까요. 그런데 신기했던 게 주위에 이런 제 상황을 말하지 않았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도전하고 싶은 게 다 도전해라'라는 말을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에 다시 격려를 받고 한국에 돌아가서 도전해 보고 싶은 걸 해보자 싶어서 미련 없이 한국에 돌아왔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대중가요 작곡가의 길로 이끈 건 버클리 대학 선배이자 더뮤즈 프로덕션 대표인 이주헌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이) 주헌 오빠에게서 '작곡팀을 만들려고 하는데 작곡 좀 하냐'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생각이 있으면 작곡팀에 합류해달라는 이야기였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작곡가로 방향을 수정한 후, 지난해 엠넷 '킹덤: 레전더리 워'에서 비투비의 마지막 경연곡 '피날레'에 함께하면서 정식으로 데뷔했다. '피날레'는 발표 당시 국내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피날레'는 미완성이 된 채로 디벨롭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와서 하게 됐어요. 데뷔곡 공연을 방송으로 보는데 심장이 벅차고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부모님도 신기해 하시고요. 사실 부모님은 제가 재즈를 연주한다는 것 자체를 존중해 주셨지만 장르 자체가 비주류다 보니 자세히 모르셨어요. 그런데 대중가요는 누구나 다 듣고 아니까 더 좋아해 주셨던 것 같아요. 겉으로는 표현을 안 했지만 속으로는 자랑스러워하시는 걸 느꼈죠. 사실 언니가 비투비의 오랜 팬이라 저보다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웃음)"


이주헌과 함께하면서 그가 설립한 더뮤즈 프로덕션에도 자연스럽게 합류해, 프로덕션의 세무와 법무 관련된 서류 작업, 직원관리를 맡아하고 있다. 현재는 소속 가수인 체리비의 신곡을 준비하고 있으며 다수의 아이돌 곡들을 작업하고 있다. 회사의 성장과 입지 있는 작곡가로서도 도약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피날레'처럼 또 1위 곡을 만들고 싶어요. 남녀노소가 다 아는 노래를 작곡하고 싶어요. 또 우리 회사의 아티스트가 국민가수가 되는 것 역시 저의 소망이고요. 지금부터 또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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