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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0’ 통산 타율 1위 이정후, 장효조 위엄?


입력 2022.04.20 16:23 수정 2022.04.20 16:22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개인 통산 3000타석 채우면서 타격 역대 1위

타율 0.331의 장효조는 프로 10년간 꾸준했던 특급

이정후. ⓒ 뉴시스

키움 이정후가 개인 통산 3000타석을 채우면서 KBO 통산 타율 역대 1위 자리에 올랐다.


18일까지 통산 2997타석을 소화했던 이정후는 이정후는 19일 SSG 랜더스전에서 5타석에 들어섰고 마침내 통산 기록 부문에 자신의 이름을 오릴 수 있게 됐다. KBO리그의 통산 비율 스탯은 3000타석 이상 소화한 타자들을 분류한다.


이로써 프로 데뷔 후 2654타수 901안타를 기록 중인 이정후는 타율 0.340으로 통산 타율 1위에 등극했다.


종전 기록 보유자는 ‘타격의 달인’으로 전설을 써내려간 故(고) 장효조로 1983년부터 1992년까지 10년간 뛰며 타율 0.331(3050타수 1009안타)을 기록했다. 즉, 장효조의 타율 0.331은 KBO리그 40년간 그 어떤 타자도 넘보지 못한 대기록이라는 뜻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장효조가 KBO리그에 머물렀던 기간이다. 대구상고와 한양대를 졸업하고 실업야구를 거쳤던 장효조는 상당히 늦은 나이인 27세에 KBO리그 무대에 데뷔했다.


프로 첫 해부터 0.369의 타율을 기록했던 장효조는 선수 말년인 1990년과 1992년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타율이 3할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개인 최고 타율은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던 1987년으로 타율 0.387의 괴물급 수치를 찍었다. 또한 3할 5푼 이상의 고타율을 3번이나 기록할 정도로 꾸준함까지 갖췄던 타자가 바로 장효조였다.


다만 아쉬운 점은 역시나 프로에 머물렀던 기간이 고작 10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장효조는 실업야구에서 커리어를 시작했고 여기에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 참가하느라 프로 데뷔도 1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프로 출범이 5년만 빨랐더라면’이라는 말은 장효조를 논할 때 늘 거론되는 가정법이다.


故(고) 장효조. ⓒ 뉴시스

장효조가 은퇴한 뒤 많은 후배들이 0.331의 통산 타율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기록의 사나이 양준혁이 프로 데뷔 후 9년간 타율 0.328을 기록하며 장효조 기록에 근접했으나 30대에 접어들면서 타율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0.316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정교함에 있어 최고 수준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김태균과 손아섭도 전성기 시절 고타율을 유지했으나 이들 역시 나이에 따른 노쇠화를 이겨내지 못하면서 장효조의 기록은 불멸로 남았다.


KBO리그 통산 타율 순위. ⓒ 데일리안 스포츠

이정후는 다소 다른 케이스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주전 자리를 찜한 이정후는 프로 첫해부터 3할 타율을 달성했고 6년 차인 올 시즌 장효조보다 약 1푼이나 높은 고타율을 유지하고 있다.


24세의 젊은 나이이기 때문에 기량 면에서 더 성장할 여지가 있으며 만에 하나라도 해외 진출이 확정된다면 지금의 통산 타율 1위를 유지한 채 KBO리그를 떠날 수도 있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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