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3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뮤지컬 배우 정혜은은 한 회사의 경영기획실에서 일하다 뒤늦게 꿈을 찾았다. 뮤지컬 배우라는 꿈을 이룬 후에도 여전히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어내고 있지만, 그는 어려움에 좌절하기 보단 딛고 일어선 이후 얻게 될 ‘행복’에 더 집중한다. 스스로 ‘행복전도사’로 불리고 싶다는 그는 이미 행복을 전해주는 배우다.
지난달 20일부터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킹키부츠’에서도 그렇다. 그는 작품에서 ‘팻’ 역을 연결한다. 연출진은 평소 정혜은의 모습에서 ‘팻’과의 닮은 점을 발견했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무대에 서길 요구했다. 그 결과 평범하지만 사랑스러운, 호기심이 많고 열정이 넘치는 ‘팻’이 완성됐다.
-먼저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저는 뮤지컬 전공자가 아니에요. 하지만 집안에 배우의 끼가 있는 건 확실했어요. 저희 아버지는 배우가 꿈이셨는데 할아버지의 강한 반대로 법대에 입학하시면서 꿈을 접으셨거든요. 그리고 제 동생이 뮤지컬 전공을 하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뮤지컬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저는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대에서 연기하고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리고 정말 열심히 뮤지컬을 사랑하고 간절히 배우가 되길 원했더니 결국 꿈을 이루었습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기 이전의 삶은 어땠나요?
저는 일반 회사 경영기획실에서 근무도 오래 했었어요. 하지만 뮤지컬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회사를 퇴사하고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죠. 그래서 제 이력을 보면 놀라는 분이 많아요. 뮤지컬 외에 전혀 다른 분야에서도 다양하게 경험을 해본 것 같아요. 앞으로도 뮤지컬을 계속하면서 또 다른 새로운 분야인 드라마 장르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데뷔작은 어떤 작품이었나요?
데뷔는 뮤지컬 ‘달을 품은 슈퍼맨’이었어요. 작은 소극장에서 6명의 배우가 함께 했었는데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리고 정말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고 무대에서 자고 먹고 해도 하나도 힘들지 않고 연습이 끝나고 집에 갈 때 너무 아쉬웠었어요. 마음은 24시간 계속 노래하고 연기하고 싶었거든요.
-꿈꾸던 뮤지컬 배우가 됐을 때,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힌 적은 없나요?
아직도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혀있는 것 같아요. 저는 결혼을 해서 한 가정의 엄마이기도 해요. 이제는 아이도 있고 부모님 밑에서 지내는 게 아니다 보니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금액이 정해져 있어요. 직업상 정기적인 급여가 들어오는 게 아니라 제가 움직이고 활동한 만큼의 페이를 받거든요. 그러다보니 미리 다다다음달까지의 계획을 짜고 부족하면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열심히 시간을 나눠서 움직여야 해요. 그래서인지 저는 정말 안 해본 아르바이트 가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이 부분은 제가 뮤지컬 배우를 하는 동안은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뮤지컬 배우가 되길 참 잘했다’ 싶은 순간이 있었다면?
매 순간이요. 직업 만족도 최상이에요(웃음). 노래하고 연기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그 것을 통해 인정받고 돈을 벌 수 있어서도 좋고요. 또 함께하는 사람들 배우 그리고 관객분들의 에너지가 너무 좋으니 저 또한 공연 때마다 행복 에너지를 받아가요. 항상 웃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노화 예방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고요. 하하. 우리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요.
-정혜은 씨의 배우 인생에 있어서 터닝포인트가 됐던 사건(사람)이 있다면?
저희 신랑을 만나서 결혼한 거요. 저희 신랑도 배우로 활동하고 있어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여보 보고 있지? 아주 많이 사랑해!(웃음)”
-배우로서의 삶에서 정혜은 배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있나요?
‘무대에 서는 매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자.’ 저는 관객 생각을 많이 해요. 저도 관객으로 공연을 볼 때 공연 보는 날만 기다리면서 며칠을 보내거든요. 관객분들에게는 특별한 하루일 수 있는 날이고 소중한 시간을 내어 와주셨으니 무대에서 매 순간 정말 열심히 해야 커튼콜에서 큰 박수를 받을 때 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어요.
-오랜 기간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올랐는데요. 공연을 하면서 많은 관객분들을 만나왔는데요. 기억에 남는 관객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공연할 때마다 잊지 않고 응원해주러 오시는 관객분이 늘 기억에 남고요. 한 가지 에피소드로 기억에 남은 관객분이 있어요. 제가 어린이공연을 정말 좋아해서 많은 어린이공연을 했었는데 그때 어린 관객 친구 한 명이 생각나요. 주인공이 위험에 빠져있을 때 검이 필요해서 아이들에게 검이 나오는 주문을 외쳐달라고 얘기했어요. 근데 그때 아주 작은 아이 관객이 자기의 소중한 장난감 검을 가지고 무대 앞으로 걸어오더니 검을 주려는 거예요. 아직도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하나를 고르자면?
모든 작품이 기억에 남지만 특별히 하나를 뽑으라면 뮤지컬 ‘넌센스’입니다. ‘넌센스’는 앙상블 없이 수녀 5명이 2시간 30분의 무대를 꽉 채워야하거든요. 저는 ‘로버트앤’ 역을 연기했는데요. 솔로곡도 많고 합창도 많아서 공연하는 동안 노래를 쉬지 않고 계속해요. 자연스럽게 노래도 정말 많이 늘었고 큰 무대에 혼자 있다 보니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그래서 ‘넌센스’를 하고나서 ‘킹키부츠’ 오디션에 합격한 게 아닌가 싶어요.
-뮤지컬 ‘킹키부츠’와는 지난 시즌에 이어 두 번째로 인연이 됐어요.
너무 너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킹키부츠’의 대단하신 배우분들 속에서 같이 호흡 할 수 있다는 것이 영광입니다. 연출님, 음악감독님, 안무감독님, 컴퍼니 관계자 분들 저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떤가요?
‘롤라’의 대사 중에 “하지만 확신할 수 없어요. 이건 라이브니까”라는 대사가 있어요. 라이브기 때문에 매회 마다 정말 느끼는 게 다르고요. 주연 배우들이 트리플이다 보니 각각 호흡이 너무나 달라서 그 걸 직접 느끼고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특히 무대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겼을 때 갑자기 특별한 힘이 나와서 모든 스태프 및 배우가 그걸 해결할 때를 보면 신비롭습니다.
-정혜은 배우가 맡은 ‘팻’은 어떤 인물인가요?
제가 맡은 ‘팻’은 공장의 매니저입니다. 평범하지만 사랑스러운 사람이에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열정이 넘치는 긍정적인 사람이죠. 그리고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요. 공장직원 중에서 굽이 있는 구두를 공연 끝까지 신는 사람은 저뿐이에요. 다른 여직원들은 모두 운동화나 단화를 신거든요. 그래서 ‘롤라’가 등장했을 때 놀라기도 하지만 너무나 행복해져요. “패션에 이렇게 진심인 사람을 실제 내 눈 앞에서 보게되다니! 거기다가 남자라고? 오마이갓! 그를 알고싶어!”라는 마음이죠.
-캐릭터를 어떻게 분석하셨는지도 궁금해요.
‘팻’은 ‘롤라’가 관심 있어 하는 인물이에요. 그리고 ‘팻’도 ‘롤라’의 패션 센스와 배려심을 닮고 싶어하죠. ‘팻’의 성격이 적극적이어서 다소 부담스러울 순 있지만 ‘롤라’는 그 모든 걸 사랑스럽게 봐줘서 ‘롤라’와의 관계에 집중을 많이 하며 연기하고 있어요.
-이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어려운 점은 특별히 없어요. 연출진의 참 대단하다 생각이 드는 게 오디션 때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를 잘 파악하신 것 같아요. 제가 ‘팻’의 캐릭터 성격이랑 정말 너무 비슷해서 그냥 있는 그대로의 저를 보여주면 되거든요(웃음).
-‘킹키부츠’만이 가진 매력 포인트는?
레드부츠의 강렬함! ‘킹키부츠’는 마지막 쇼에서 레드부츠를 신고 다 함께 춤추는 엔딩이 있어요. 거기에서 나오는 긍정적인 힘이 엄청 난 것 같아요. 공연이 끝나도 계속 흥얼거리고 춤이 춰지는 작품, 그게 ‘킹키부츠’의 매력이 아닐까요?
-이 작품에서 가장 애정하는 장면 혹은 넘버, 대사가 있나요?
애정 하는 장면은 ‘스탭원’입니다. 꿈도 없던 찰리가 공장을 살리겠다는 불타오르는 열정을 가지고 구두를 만들겠다고 공장을 돌면서 구두를 만드는 모습을 보는데 너무 벅차올라요. 가까이에서 찰리의 눈을 보고 있으면 정말 행복해진답니다.
-다음 시즌 또 ‘킹키부츠’와 함께 한다면 어떤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으신가요?
‘로렌’이요. 이유는 간단해요.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뽑아주시지 않으시겠죠?(웃음) 혼자 집에서 연습해볼게요.
-앞으로 정혜은 배우의 활동도 궁금한데요,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나요?
뮤지컬 ‘빨래’의 ‘희정엄마’ 역이요. ‘빨래’는 따뜻한 작품이이에요. 캐릭터 역시 저랑 잘 맞을 것 같고 잘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정혜은 배우가 얻고 싶은 수식어가 있나요?
행복전도사 정혜은이요. 근데 제가 생각했을 때 대중들에게 제가 어떤 배우로 인식이 되어지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모두가 저를 좋게 봐주면 좋겠지만 저를 싫어할 사람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요. 있는 그대로의 저를 평범하게 인식해주시고 받아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최근 가장 흥미를 가지고 있는 일이 무언지도 궁금해요. 뮤지컬 관련도 좋고, 그렇지 않은 것도 좋아요.
요즘에는 ‘육아’와 ‘부동산’이요.(웃음)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요. 언젠가는 건물주가 된다는 꿈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육아는 아이와 어디를 가고 어떤 걸 할지 찾는 거예요. 엄마들이 부지런해서 좋은 곳들은 예약을 미리 해놔야 하거든요. 육아도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한답니다.
-정혜은 배우의 최종 목표도 궁금합니다.
제 직업인 배우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작품을 만나고 드라마 연기도 하면서 가정과 제 주변의 모든 분들과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