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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52>] 인터뷰이


입력 2022.10.28 14:04 수정 2022.10.28 14:04        데스크 (desk@dailian.co.kr)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52화 인터뷰이


김석규는 자신을 희화화해서 소설적 재미를 추구하는 것도 좋고 술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엮어서 구성의 묘를 발휘하는 것도 다 좋은데 결정적으로 술로 인한 폐해나 술에 대한 경각심은 일언반구도 없이 술을 너무 낭만적이거나 코믹하게 묘사했다고 불같이 화를 냈었다. 술이란 건 예찬서가 없어도 술꾼이란 족속은 알아서 술을 마시게 되어 있는데 굳이 ‘역전의 용사’를 출판해서 음주행위를 부추길 필요가 있겠냐는 게 그 이유였다.


김석규는 ‘다시는 이 나라에 본인과 같은 불행한 술꾼이 없어야 한다.’며 박정희가 쿠데타 후 전역식에서 했던 말을 패러디하여 일갈하더니 앞으로는 서로 얼굴 보지 말자고 매정하게 무질러 버렸다. 이철백과 한종탁은 밑도 끝도 없이 화부터 내는 김석규에게 기분이 잡쳐 한소리 해야겠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지만 편집망상을 치유하고 알코올중독마저 잡아내느라 칩거하고 있는 김석규가 안쓰러워서 그저 꾹 참고만 있었다.


“이런 기회가 어딨어요. 남들은 J신문이랑 인터뷰 못 해서 난린데…. 친구를 설득하세요.”

김석규를 인터뷰이로 데려오는 게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다며 난처해하는 이철백에게 음비 사장 강용태가 대답했다.


“그럼 인터뷰는 소설 주인공과 공저자까지 3명이 함께 하는 거죠?”


“아뇨. 이 작가님만 하시는 거예요. 김 작가님 집필부분은 이미 알려진 내용이라 시큰둥해 하더라고요.”


“그래도 공저인데 김 작가도 인터뷰이로 나가면 안 될까요?”


“이건 정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기자가 갑이지 우리가 갑이 아니잖아요.”


강용태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철백은 김석규와 함께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것도 난감하지만 공저자로 참여한 한종탁이 인터뷰이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에 더 난감해졌다. 이철백은 또다시 강용태에게 하소연했다가 ‘기자가 갑’이라는 말을 듣자 다른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닫고는 한종탁을 블랙&화이트로 불렀다.


“종탁아, 미안하게 됐어. J신문에서 저자 인터뷰 요청이 왔는데 나하고만 하재.”


“미안하긴. 너라도 인터뷰하는 게 고마운 거지.”


한종탁의 말이 단지 가식이 아니라 진심이란 걸 느낀 이철백은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의 잔에 술을 가득 채워주었다.


“그런데 난감한 건 말이야.”


한종탁이 술잔을 들다말고 이철백을 바라보았다.


“소설 주인공도 함께 인터뷰하는 조건이란다.”


“그럼 좋다 말았잖아. 석규가 인터뷰한다고 하겠냐? 책 낸 걸 못마땅해 하는 녀석인데. 그럼 말짱 도루묵이잖아. 네 혼자만 하면 안 되겠냐고 해보지.”


“음비 사장 말로는 그냥 설득해보래.”


“석규가 설득한다고 될 녀석이 아닌데?”


한종탁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자 방선희가 주방에서 귀동냥을 하고 있다가 냉큼 끼어들었다.


“이런 기회가 어딨어? 무조건 설득해야지. 철백 씨가 못하면 나라도 나서볼께.”


“그래 선희 씨 말이 맞아. 책을 알릴 절호의 기횐데. 나도 같이 가줄께.”


한종탁도 힘을 보태고 나서자 이철백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J신문 장영철 기자와 인터뷰 약속이 잡힌 날에 하필이면 한종탁의 서울 출장이 있었다. 이철백은 든든한 우군을 잃은 처량한 심정으로 택시에 장 기자와 방선희를 태워 미천(美川)으로 달려갔다. 그 동안 김석규에겐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았다. 섣불리 설득하려 들다가 거절당하기라도 해버리면 낭패가 이만저만 아니기 때문이었다. 당일 J신문 장 기자와 함께 쳐들어가서 인터뷰를 시도해 보다가 여의치 않아 복귀한다손 치더라도 차라리 그게 장 기자에게 면목은 서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택시는 미처 제설되지 않은 미끄러운 시골길을 조심스럽게 달려 김석규가 요양하는 미천에 도착했다. 가끔 지리산의 적설이 바람에 날려 오는 경우는 있어도 12월 초에 폭설이 내리긴 십 수 년 만의 일이었다.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과 들판을 겨울바람이 한바탕 휘몰아치자 눈보라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방선희는 살을 에는 듯 차디찬 북풍한설에 옷깃을 여미며 택시 트렁크에서 짐을 챙겼다. 김석규와 함께 구워 먹을 소고기와 장류, 그리고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불판 따위 조리 기구였다.

“J신문 문학담당기자 장영철입니다.”


장 기자의 명함을 받아든 김석규의 얼굴에 일순 당혹스런 기색이 스쳤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불청객들로 내심 언짢고 당황한 듯했다. 이철백은 금방이라도 김석규의 울화통이 터져 나올까봐 조심하며 일행의 방문경위를 설명했다. 방선희는 초면인 김석규의 반응을 예의주시하며 마당 한쪽에 잠자코 서있었다.


“일단 방으로 들어갑시다. 누추하긴 하지만.”


김석규가 무덤덤하게 장 기자를 안내했다. 이철백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네 명이 자리 잡고 앉으니 천정 낮은 방안이 꽉 들어찼다. 김석규가 그제야 방선희에게 관심을 보였다.


“첫 사랑이야. 25년 만에 재회했어.”


이철백의 말에 김석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장 기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철백은 최소한 어떻게 만났는지 정도는 물어봐줄 줄 알았는데 김석규가 후속질문도 없이 시선을 싹 거둬 가버리자 내심 서운했다. 김석규와 시선을 마주친 장 기자가 녹음준비를 하는 사이 방선희는 조리 기구 세팅을 해놓겠다며 방 밖으로 나갔다.


“인터뷰라고 생각지 마시고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제가 알아서 기사 쓸 테니까요.”


장 기자가 녹음 버튼을 누르고 질문을 시작했다.


“먼저 이 작가님께 여쭤보죠. 역전의 용사 아주 흥미롭게 봤는데요. 픽션입니까, 논픽션입니까?”


“픽션을 가장한 논픽션이라 할 수도 있고 논픽션에 기반한 픽션이라 할 수도 있겠네요.”

“어느 부분이 픽션이고 어느 부분이 논픽션이죠?”


“픽션은 주인공 주경(酒鯨, 술고래)이 쓴 ‘간디’라는 소설인데, 그것도 일부만 픽션이지 거의가 논픽션이에요.”


“그럼 이 작가님, 간디가 음주 수행하는 것도 논픽션인가요?”


“음주 수행은 픽션이죠. 그런 게 어딨어요?”


“주경의 편집망상이라든지 정신병원 입원도 그럼 픽션인가요?”


“아뇨. 그건 논픽션이에요.”


장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김석규에게 시선을 돌렸다. 김석규는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장 기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지그시 눈을 감았다.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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