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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67>] TV토론


입력 2022.12.21 14:12 수정 2022.12.21 14:12        데스크 (desk@dailian.co.kr)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67화 TV토론


김우환은 미국이 군사적으로는 세계의 경찰, 경제적으로는 세계의 은행 노릇을 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달러를 무기로 패권을 쥔 미국이 세계 경제를 걱정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병철이 삼성 걱정하고 정주영이 현대 걱정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김우환은 미국에 순응하는 것이 개인이든 국가든 영달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 옛날 조부가 일제에 순응하고 친하면서 부귀를 누리고 부친이 군사독재 권력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서 영달을 누렸던 것처럼.


김우환은 내친 김에 계속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미국이 금주운동에 민감한 이유가 꼭 경기침체에만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0세기 초 미국은 금주법을 시행하면서 엉뚱하게도 마피아를 살찌우는 실수를 범했는데 현대의 금주운동은 과거처럼 마피아 같은 범죄단체가 아닌 IS나 알카에다 같은 테러조직을 지원하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 아닐까 혼자 유추해 보았다.


어쨌든 김우환은 금주운동이 세계 경제를 위협하든 테러조직을 지원하든 그 이유가 어떻든 간에 정작 중요한 것은 미국이 금주운동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할지가 눈 감고도 선명하게 그려졌다. 김우환은 쉽고 편안한 길을 찾아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도록 혜안을 물려준 조부와 부친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금주운동 탄압에 대해 외신, 특히 미국의 유력언론에서 비판성 기사를 실어서인지 정부에서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장외에서 농성중인 야당과 대화 제의를 한 것에 그치지 않고 정부여당의 기관방송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는 공중파 TV에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토론’이라는 프로그램에 야당 의원과 김석규를 패널로 섭외하기에 이르렀다. 금주운동과 관련한 주장과 댓글을 유언비어라 규정하는 상황에서 운동의 대부 격인 김석규를 방송에 내보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유화책이 일종의 구밀복검(口蜜腹劍) 전술이라는 것은 이내 탄로 나고 말았다. TV방송국 기자노동조합에 의해 폭로된 문건에 의하면 정부여당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토론에서 금주운동의 논리적 허구와 비합리성을 파헤쳐서 야당과 시민사회의 금주투쟁에 흠집을 내고 동력을 감소시키려는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 더욱이 금주운동의 지지 여론을 돌려세우면 다음 단계로 공안탄압을 행사하겠다는 야심찬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었다. 내부자 고발로 인해 궁지에 몰린 정부여당은 구밀복검 운운하는 것에 대해 국민통합과 화합을 반대하는 불순세력의 농간이라며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극구 부인했다.


야당과 시민사회에서는 TV토론 참여를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 참여를 반대하는 쪽은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마당에 굳이 토론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말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여론지형이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는 계산이 밑바탕에 깔려있었다. 하지만 찬성하는 쪽은 금주투쟁에 대한 언론보도가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는 상황에서 TV토론을 통해 금주운동의 정당성을 역설해 지지여론의 확산을 꾀할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격론 끝에 야당과 시민사회에서는 TV토론을 수용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마침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토론’ 당일이 되었다. 김석규는 야당의 금주투쟁본부장인 금주성 국회의원과 함께 출연했고, 상대 패널로 여당의 경제전문가인 음주철 국회의원과 주정한 대학교수가 자리했다. 또한 금주운동에 찬성하는 시민과 반대하는 시민이 각각 50명씩 방청객으로 참석했다. 사회자의 토론 취지와 규칙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곧바로 토론이 시작되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토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회자의 개입은 최소화하고 토론 상대자에 대한 발언 수위는 상당한 수준까지 허용된다는 것이었다. 먼저 음주철 의원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선공을 가했다.


“건전한 금주운동을 정치투쟁으로 변질시켜서 추석 대목인데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어요. 시장 상인들이 다들 죽겠다고 아우성입니다. 이거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닙니다. 시정잡배도 아니고 그만 장외투쟁을 접으세요. 등원하세요. 국회에서 논의합시다.”


“뭐요? 시정잡배!”


파이팅 좋은 금주성 의원이 반사적으로 화를 벌컥 냈다. 하지만 음주철 의원은 기세에 눌리지 않고 오히려 맞불을 놓았다.


“그럼 시정잡배지 뭐요.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활동해야지 장외투쟁이 뭐예요, 남세스럽게.”


“이봐, 음 의원. 말조심해. 당신은 형님도 없어? 새파란 사람이 말이야.”


“여기서 나이가 왜 나와. 금 의원 당신이나 말조심해.”


“뭐, 저 따위가 다 있어!”


“저 따위!”


초반부터 스튜디오가 후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사회자는 개입할 생각도 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김석규는 문득 상대의 페이스에 말리고 있다는 의구심이 들어 재빨리 금주성 의원을 제지했다. 오늘 토론의 목적이 금주투쟁에 흠집 내고 투쟁 동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던 정부여당의 계획대로라면 토론을 이전투구로 끌고 가 국민들에게 금주투쟁의 당위성을 호도하려 할 것이 빤하기 때문이었다.


“국회에서 금주특별법 논의를 하자고 해도 여당에서 계속 거부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장외투쟁을 접고 국회에 등원해 대화를 하자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오랜 농성으로 덥수룩해진 수염과 검게 그을린 얼굴로 김석규가 무겁게 반문했다.


“논의나 대화를 거부하는 게 아니에요. 금주특별법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 어이없으니까 그런 거지요.”


“그 말이 그 말 아닌가요? 어쨌든 금주특별법 논의는 할 수 없다는 말씀인데 그러면서 등원하여 대화를 하자니 누굴 바지저고리로 압니까.”


“금주특별법은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법이예요. 자, 보세요. 법에 이런 게 다 있네요. 첫째는 정규교육과정에 금주교육 포함, 둘째는 술 광고․판매 및 음주구역 규제, 셋째는 음주 범죄행위 가중처벌, 넷째는 금주운동 동참 시 세제 혜택, 마지막으로 알코올중독환자의 의료비 및 생계비 지원.”


음주철 의원이 자료를 뒤적여 읽더니 상대 패널을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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