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스트레스·우울증만으로는 부족…정신질환, 사망 직접적 원인 돼야" 원고 패소
대법 "망인, 자유로운 의사결정 할 수 없는 상태"
"가해 선임병들, 여러 차례 폭언·구타…가혹행위 신고했으나 내부고발자로 낙인"
"진료기록 확인 결과 망인 사망 전 극심한 우울·불안 증상 앓아" 원심 파기
군 생활 중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군인에게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숨진 군인 A씨의 어머니가 보험사 2곳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이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앞서 A씨는 2016년 12월 입대 후 선임병들에게 모욕과 폭행, 따돌림을 당해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 이듬해 5월에는 피해 사실을 간부에게 알린 일이 공개돼 동료들에게서도 비난과 따돌림을 받았고, 결국 석 달 뒤 부대에서 극단 선택을 했다.
어머니는 입대를 앞두고 아들 앞으로 사망보험 2건을 들어놨기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극단적 선택에 의한 사망이란 이유로 지급이 거절됐고 이후 민사 소송을 냈다.
A씨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는지가 쟁점이 됐다.
사망보험을 든 사람이 숨지더라도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엔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그러나 피보험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면 우발적 사고로 인정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 확립된 판례다.
A씨 어머니는 이후 1심과 2심 모두 패소했다. 1·2심 재판부는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거나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사망 당시 행위를 전반적으로 지배할 정도에 이르는 직접적 원인이 돼야 한다"고 짚었다.
반면 대법원은 "망인이 소속 부대원들의 가혹행위로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극심한 고통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인정할 여지가 있다"며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소속 부대 선임병들은 망인에게 여러 차례 폭언하고 야구방망이로 폭행하는 등 가혹행위 정도가 매우 심했다"며 "망인은 가혹행위를 부대 간부에게 신고했으나 간부가 신고 사실을 공개해 내부고발자로 따돌림당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망인은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피할 방법을 찾기 어려웠고 사망 때까지 소속 부대도 변경되지 않았다"며 "진료기록 감정 촉탁 결과 대학병원도 망인이 사망 직전 극심한 우울과 불안 증상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상태였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