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체포동의안 가결정족수 넘어
초반 차분, 흐느끼는 지지자 속출해
이내 '배신자 응징' 기류…당사로 모여
경찰과 바리케이트 밀치며 대치
21일 오후 4시 42분 국회의사당역 2번 출구, 친명(친이재명)계 원외단체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주도 집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부결 여부를 발표하는 김진표 국회의장의 목소리가 중계되기 시작했다.
오전 11시부터 이뤄진 집회 내내 "체포동의안 부결"을 외치던 사회자는 결과 발표 시간이 다가오자 "기도를 하자"라는 발언을 중간 중간에 하기도 했다. 혹시 모를 '가결' 소식이 들려올까 불안한 기색이었다.
현장에 모인 이들의 바람과 다르게도 재석 295명 중 찬성 149명, 반대 136명, 기권 6명, 무효 4명으로 가까스로 체포동의안이 가결 정족수를 넘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5시간 넘게 '윤석열 탄핵' '체포동의안 부결'을 외치는 등 분위기를 끌어올렸던 집회였지만, 급작스레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치게 됐다.
오후 2시쯤에는 송영길 전 대표까지 연설에 나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은 단순한 여야의 문제도 아니고 입법부의 권위와 일상을 지키는 중대한 문제"라며 "체포동의안 부결을 위해 다 같이 힘을 모으자"고 독려를 했던 상황이었다.
원하지 않던 표결 결과에 지지자 대부분은 할 말을 잃은 듯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이상하리만큼 차분한 분위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일부 지지자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가결표를 던진 의원들을 향한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하지만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난다거나, 눈에 띄게까지 과격한 행동을 하는 이의 모습은 이때까지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내 스크린이 본회의 중계를 끝내고 지지자들을 비추자, 곳곳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여성 지지자들이 포착되는 정도였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탄식과 흐느낌 정도가 이어질 뿐이었다.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측은 최근 들어 지지자들의 잇단 과격한 행동이 문제가 된 것을 의식한 듯, 결과 발표 전에 "이따가 어떤 결과가 나와도 돌발·폭력행동을 하지말자. 어떤 일이 있어도 오늘 이 대오를 무너뜨리지 말자"라는 주문을 했었다.
사회자와 무대에 오른 이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가결이라고) 흩어지면 안 된다. 자리에 앉아달라"라고 요청했다. 아직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지지자들 대부분은 섣불리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사회자는 "윤석열 정부와 전면전을 치르자"라며 더민주전국혁신회의와 촛불행동의 QR코드를 띄워놓고 가입을 독려하기도 했다. "지금 실무작업을 해야겠다. 그래야 흩어지지 않는다"라는 것이 요지였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며, 국민항쟁은 이제 시작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도 낭독됐다.
물리적 충돌은 없었으나, 정작 돌발 상황은 비상행동 집회 장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지지자들이 삼삼오오 2번 출구 앞을 떠나면서, 앞쪽 대열에서 꽤 많은 빈공간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쯤이었다.
국회의사당 내부 진입 통제가 삼엄해지면서 강성 지지자들이 택한 곳은 국회가 아닌 더불어민주당사 앞이었다. 이날 집회 역시 국회를 둘러싸는 형태로 열리려 했으나 경찰이 가두행진 금지를 통보하며 계획이 무산됐던 바 있다.
이미 강성 지지층들이 다녀가 한 차례 난동을 부렸기 때문일까. 경찰은 당사 주변 골목마다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었다.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과 양아들(양심의 아들)은 "민주당사라도 부수자"라며 그들의 분노를 민주당사로 옮긴 듯한 모습이었다. 이들 사이에는 이재명 대표는 지키지 못했지만 가결 표를 던진 '배신자'들을 응징해야 한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었다.
오후 5시 15분쯤 집회 장소에서 민주당사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계를 강화한 경찰 인력만 아니라면 방금 전까지 지지자들의 소란이 있었다는 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용한 모습이었다.
조용함도 찰나, 갑자기 몇 명이 "이쪽입니다"라고 말하며 하나 둘씩 사람들을 몰고 오기 시작했다. 모여든 지지자들은 "왜 여길 막냐"라며 경찰을 향해 고성을 지르고, 바리케이트를 무너뜨리기 위해 있는 힘껏 체중을 실었다.
바리케이트를 미는 과정에서 경찰과 물리적 충돌이 이뤄지고, 지지자의 발이 바리케이트에 걸리는 일도 있었다. 뒤이어 온 지지자들도 "문을 열어라"라고 소리지르며 경찰 쪽으로 다가왔다. 고성을 지르는 사람과 바리케이트를 미는 인파들, 이를 저지하는 경찰들이 엉켜 난장판이 됐다.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가결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들이 사람이냐"라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두 차례나 당사 앞으로 지지자들이 몰린 것이 알려지자, 그나마 남아있던 집회 장소의 사람들도 "당사로 가자"라고 외치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5시 55분, 당사 근처 골목을 막았던 바리케이트 하나는 걷혔지만 정작 당사 앞은 경찰의 '차벽'이 막고 있었다.
당사를 떠나 국회로 돌아오는 길도 험난했다. 당사 근처 골목을 몇 번이나 빙 두르고, 정문 앞에서만 출입증을 세 번 보여준 다음에야 다시 들어오는 것이 가능했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면서 지지자들은 국회 진입도 시도했다. 경찰은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1번·6번 출구도 폐쇄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지지자들은 오후 7시부터 국회의사당 앞에서 촛불집회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