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터칼을 청룡언월도로 만들자던 인사
남북한이 돌멩이 던지기 놀이 중인가
평화의 안전핀 우리 정부가 뽑는다?
‘우리 북한’인지 ‘우리 김정일, 또 김일성 주석’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자신을 포함한 1인칭 대명사가 ‘우리’다. 꼭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느낌으로는 아주 살갑다. 별일이다. 이 대표가 이렇게 나긋나긋한 표현으로 상대방이나 제3자를 지칭한 적이 있었던 것 같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자기 형수에게 더할 수 없이 흉측한 표현으로 욕설을 퍼부었던 사람이다. 그것도 성남시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시기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06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섰다가 커터 기습을 당한 것을 빗대어서도 모진 말을 쏟아냈었다. 그 여러 해 후였지만 트위터(지금의 X) 등에 커터 테러를 연상시키는 글을 올렸다.
커터칼을 청룡언월도로 만들자던 인사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한(2016년 12월 9일) 바로 다음 날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가 주장했다.
이렇게 ‘법대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와 재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처럼 갖은 말로 비난하고 온갖 방법으로 회피하려 기를 썼을까? 어쨌든 그는 자신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여겨지거나 앞길을 가로막을 우려가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모진 심성을 있는 대로 드러냈다.
그랬던 그가 북한 폭정체제의 우두머리들과 언제 그처럼 친했다고 ‘우리’라고 자신의 동아리 속에 포함시키는지 황당하다. 김일성 부자의 ‘노력’이 ‘폄훼’되지 않도록,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지난 19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말이라는데, 그 사람들이 폄훼되거나 훼손되어서는 안 될 무슨 노력을 했다는 것인지 이 대표가 직접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을, 건국 이후 지금까지 76년간 괴롭힌 것도 이 대표가 말한 그 ‘노력’에 포함되는가. 6·25동란 3년간의 그 민족적 고통은 어떤가. 북녘 2700만 동포에게 대량 살상과 처벌의 고통을 상시로 안기고 있는 그 행동도 폄훼되거나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가.
김정은이 지난 15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북한의 ‘동족’ 관계를 부인한 데 대한 논평을 그렇게 했다. 문제가 김정은의 극언과 협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윤 대통령의 단호한 방어 의지에 있다는 논법이다.
남북한이 돌멩이 던지기 놀이 중인가
이게 이 대표의 한반도 정세 인식이다. 1.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 상황이 돌멩이 던지기 놀이인가? 2. 북한의 핵무기와 다양한 미사일 개발이 작은 돌멩이이고, 우리의 방어 의지 고취는 큰 돌인가? 3. 윤 대통령이 더 큰 돌을 던져서 더 큰 상처를 입힌다? 민주당 정권의 대통령이 ‘삶은 소대가리’라고 놀림당하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던 광경을 정말로 잊어버렸는가? 상처를 입을 사람이 따로 있지 날마다 우리에게 온갖 험한 말로 협박을 일삼는 북한에 대해 우리는 대거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이재명 식 평화원칙인가? 4. 북한의 군사도발로, 또 공갈·협박으로 상처받는 우리 국민의 사기는 누가 돋우어 줄 건데?
윤 대통령에 대한 ‘김정은 맞춤형’ 충고다. 북한 1인 전제군주 체제를 이 대표가 정말 몰라서 이런 말을 예사로 하지는 않을 거다. ‘평화의 안전핀’이라니? 그걸 언제 우리 측에서 쥐고 있었나? 우리가 그걸 뽑지 않으면 한반도 평화가 지속된다고 누가 보장했나? 북한의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과 공갈 정책은 우리의 의지나 대응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다 알지 않는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해괴한 폭정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이다. 전체주의적 1인 폭압 정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통제 체제가 불가피하다. 이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외부의 간섭이 아니라 내부의 저항이다. 체제의 유지와 통치의 편의를 위해서는 오히려 외부의 간섭이나 도발을, 상상으로라도 만들어내야 한다.
“공화국이 대한민국은 화해와 통일의 상대이며 동족이라는 현실 모순적인 기성 개념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철저한 타국으로,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제한 이상 주권 행사 영역을 정확히 규정짓기 위한 법률적 대책이 필요하다.”
북한은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민족 공조’ ‘우리끼리’ ‘민족대단결’ 따위의 구호를 내세워왔지만, 이는 대외적인 용어였을 뿐이다. 그들은 이미 1994년 김일성 사망 100여일 후부터 ‘김일성 민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북한인’, 나무위키). 2022년 1월 21일 노동신문 사설에도 ‘김일성 민족’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평화의 안전핀 우리 정부가 뽑는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김일성)의 탄생 110돌과 위대한 장군님(김정일)의 탄생 80돌을 승리와 영광의 대축전으로 성대히 경축함으로써 김일성 민족, 김정일 조선의 존엄과 위용을 남김없이 떨쳐야 한다.”
남한으로부터 이익을 취할 때만이 그들에게 우리는 ‘민족’이었다. 물론 북한 동포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 보이지 않는 글로…. 남한의 멱살을 잡고 있는 동안 체제는 안전할 것이었다. 북한의 극심한 경제위기 때는 우리가 때맞춰 내리는 단비 역할도 해줬다. 예로써 4700만명의 국민을 대표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2300만명의 동포를 강압 통치하고 있는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는데 5억 달러의 면담비가 들었었다. 역대 정부에서 갖은 욕설과 비난을 들어가면서 무던히도 달러와 식량‧비료 등을 지원했다.
안전핀을 우리 정부가 뽑는다? 북한은 평화의 의지에 차 있는데? 어떻게 그런 환상에 젖어 있을 수 있는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남북 사이엔 ‘평화의 안전핀’ 자체가 없다. 있다면 김정은과 그 집단의 욕심뿐이다. 12만㎢의 땅과 2700만 주민 위에 전제군주로 군림하고 있는 그 이익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 지위와 이익을 지키려고 하니까 대외적으로 핵전쟁 협박을, 대내적으로 광포한 통치를 계속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선에서, 김정은의 정상회담 파트너였던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가 예견되고 있는 것에 고무되었을 수 있다. 사회 통제 시스템이 느슨해지는 데 따라 커지고 있는 주민의 국경 밖 세계, 특히 남한에 대한 동경을 억누를 필요가 생겼다. 남한의 자유우파 정권에 대해서는 과거처럼 장난을 칠 여지가 거의 없다. 핵무기‧미사일 강국이라는 이미지가 국제사회에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할 정도로 저들 사회에서 위상이 높아졌다. 러시아 및 중국과의 안보 결속이 강화됐다. 이런 정세와 여건의 변화가 김정은이 기고만장해서 떠들 수 있는 조건들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국민까지 위협과 조롱의 대상이 되게 한, 무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인가에 대해 반성부터 하는 게 옳다. 우리의 국력과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자부심을 국민이 갖게 하는 것도 정당의 책무가 아닌가? 왜 대한민국이 북한 폭정집단에 대해 억지웃음을 지으며 비위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언제까지 국민을 속일 것인가? 안전핀을 우리가 뽑는다? 그런 황당한 괴담을 만들어낸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정말 안전핀을 윤 대통령이 뽑으려 한다고 여기는가?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