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투쟁 지지" 성명 발표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첫 파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파업 부추겨
노사관계 제대로 정립도 전에…'투쟁 일변도' 금속노조에 물들까 우려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5일까지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전체 조합원의 74%가 찬성표를 던졌다. 투표 참여자만 놓고 찬성률을 계산하면 97.5%에 달한다. 가결 요건인 50%를 압도적으로 뛰어넘었다.
조합원 찬반투표 가결은 노조가 합법적으로 파업을 단행 할 수 있는 두 가지 요건 중 하나다. 다른 한 요건인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의 조정 중지 결정은 이미 지난달 충족됐다.
노조가 합법적으로 파업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해서 무조건 파업을 벌이는 건 아니다. 통상 노조는 쟁의권을 사측과의 교섭에서 지렛대로 활용한다. “우린 당장이라도 파업을 할 준비가 돼 있다”며 사측을 압박해 더 좋은 조건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그러다 교섭이 여의치 않으면 결렬을 선언하고 노조 집행부가 파업 일정을 잡는다. 파업 돌입이 임박해 사측이 진일보된 안을 들고 나와 극적으로 교섭이 타결되기도 한다. 외교적 기술이 필요한 고도의 협상 과정이다.
삼성전자 노사는 이 분야에선 비전문가다. 삼성전자의 무노조 경영을 폐기 선언 이후 노조가 결성된 역사가 짧은지라 노조도 파업을 지렛대로 한 교섭 전략에 익숙지 않고, 사측도 노조를 상대하는 데 미숙하다. 어찌 보면 ‘초보들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판에 ‘전문가’가 뛰어들 태세다. 삼성전자 노조의 쟁의행위 찬반투표 가결 소식이 전해진 8일 오후,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이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삼성전자 노조는 금속노조와 족보로 연결돼 있지 않다. 가장 규모가 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4노조)은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에 속해 있고, 사무직노동조합(1노조), 구미네트워크노동조합(2노조), 동행노동조합(3노조), DX노동조합(5노조) 등은 상급단체가 따로 없는 독립된 기업별 노조다. 이번 금속노조의 성명은 ‘외부인의 훈수’인 셈이다.
금속노조는 양대 노총 중에서도 강성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최대 산별노조다. 금속노조는 지난 수십 년간 파업으로 맹위를 떨친 자동차, 조선 기업들의 교섭권을 가진 지부와 지회를 거느리고 있다. 위원장을 비롯한 금속노조 집행부 내에도 강성노조로 이름난 현대자동차와 기아 지부 출신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파업 분야에서는 베테랑들이다.
금속노조는 성명에서 “노동자들의 행동은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첫 파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 문 너머에 노동자의 권리, 우리가 흘린 땀의 정당한 대가가 기다린다”고 했다. ‘쟁의권을 쥐고 있는데 당장 파업에 돌입하지 않고 뭘 하느냐’는 소리로 들린다.
국내 최대 기업이자 수출, 전자산업 생태계, 지역경제의 핵심 축인 삼성전자가 창사 이래 첫 파업에 돌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도록 금속노조가 삼성전자 노조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12만여명의 근로자를 거느린 거대 사업장을 향한 금속노조의 탐욕의 시선도 느껴진다. 금속노조는 삼성전자 노조를 향해 “저항할 때 함께 맞는 비, 결국에 모든 노동자를 비추는 햇빛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 빛을 찾는 여정에 금속노조도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노조를 금속노조 산하로 끌어들인다면 세를 크게 불릴 수 있고 조합비도 지금보다 훨씬 늘어날 테니 군침을 흘릴 만도 하다.
삼성전자 노사는 이제 막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관계다. 현대차, 기아, HD현대중공업처럼 매년 노사가 힘겨루기를 하고 파업 리스크에 실적과 주가가 깎이는 사업장이 될지, SK이노베이션처럼 협력적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연초에 교섭을 조기 타결하는 사업장이 될지는 삼성전자 노사가 어떤 역사를 쌓아나가느냐에 달렸다.
아직은 불투명한 이들의 미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 ‘파업의 베테랑’인 금속노조가 개입하는 게 삼성전자의 협력적 노사관계 구축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속노조의 세를 불려주는 ‘투쟁의 장’으로 전락하기엔 삼성전자가 대한민국 경제를 비롯한 각 분야에서 짊어진 짐이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