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북한여성구원연대 최명희 사무국장이 탈북여성을 돕다 지난 10월 23일 뇌출혈로 쓰러져 서울 흑석동 중앙대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마음이 아픕니다. 아내를 위해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서요.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내도 조금은 편히 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한창권 탈북인단체총연합 대표회장(48)의 표정이 일순 어두워졌다. 1994년 탈북한 그는 탈북인 지원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사단법인 겨레선교회 상임이사와 자유북한인협회 회장을 지낸 한 회장은 올해 3월 탈북자의 국내정착을 위한 체계적 지원을 위해 탈북인단체 연합체를 출범시키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10일 <데일리안>과 만난 한 대표는 탈북자 운동에 바빠 보였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는 병상에 누워있는 아내 최명희 씨(47)에 대한 걱정으로 어두운 표정이었다.
아내인 자유북한여성구원연대 최명희 사무국장은 현재 서울 흑석동 중앙대병원 중증환자실에 있다. 지난 10월 21일 경기도 파주에 거주하던 탈북여성이 조선족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최 국장은 한 달음에 달려갔다.
한국에 연고가 없는 피해여성의 가는 길을 쓸쓸했다. 최 국장은 상주도 없는 장례식장을 밤새 지키며 발인까지 치렀다. 모든 장례절차가 끝난 23일 밤 최 국장은 두통을 호소하다 갑작스런 뇌출혈로 쓰러져 깨어나지 못했다.
최 국장은 이미 두 차례 뇌수술을 받았지만 상태가 그리 낙관적이진 않다. 10일전 의식불명에서 깨어나면서 중환자실에서 중증환자실로 옮겼지만, 여전히 사람을 알아보거나 의사표시를 하진 못한다. 간간히 눈을 뜨는 정도다.
“의사가 죽을 확률이 99%라고 했어요. 그런데 깨어나줬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어쨌든 위험한 고비를 넘긴 것 아니겠습니까.”
한 대표는 “원래 심장이 안좋던 아내는 최근 들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고 말했다. 베이징올림픽으로 중국에서 탈북자 단속이 강화되자 중국에 숨어지내던 탈북자들의 전화를 하루에 수십통 이상 받았다. “탈북자의 인권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사명감이 투철했습니다. 한밤중이나 새벽에도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 탈북자들의 고민을 상담해주곤 했어요.”
최 국장이 두 자녀와 함께 남한에 정착한 것은 2005년 6월. 북한에서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일했던 최 국장은 탈북여성들의 인권옹호에 앞장섰다. 2006년부터 사단법인 겨레선교회 총무로 일했고 올해 2월에는 자유북한여성구원연대를 발족한 뒤 사무국장을 맡아 탈북난민 강제북송 저지에 주력해왔다.
최 국장의 활동으로 중국이나 제3국을 거쳐 남한 땅을 밟은 탈북자들은 100여명이 넘는다. 관절 등의 장애진단으로 받는 월 60만원의 생활보조금도 자신의 위한 보험 하나 가입하지 않은 채 대부분 탈북자 운동에 썼다. 특히 올해부터 자유와 인권의 소중함, 북한 곳곳의 현실 등을 담은 ‘자유북한신문’을 대형 풍선에 실어 북녘땅으로 보내는 일도 병행하고 있었다.
최 국장은 지금까지 3000여만 원의 병원비가 나왔다. 그러나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생활이 넉넉지 못한 형편인 만큼, 병원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독교사회책임 등 일부 단체에서 병원비 모금에 나섰지만 턱없이 부족한 상태.
한 대표는 “아내가 병상에 있은지 800시간이 지났다”고 말했다. 그는 정확한 시간을 기억할 정도로 아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강했다. ‘좀더 경제력있는 사람을 만났다면 이렇게 고생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더욱 마음이 무겁다.
그는 “현재 주변의 도움으로 병원비를 모으고 있지만 도움을 준 사람들도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탈북자들인 데다 경기가 어려워 모금이 잘 안 된다”며 “다른 병원으로 옮기고 싶어도 병원비때문에 그러기도 여의치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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