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혜, 존속살해 사건 24년 10개월 만에 재심 1심서 '무죄'…국내 무기수 재심서 무죄 받은 첫 사례
2003년 친부에 수면제 탄 양주 먹여 살해한 혐의…경찰 조사서 범행 자백했지만 재판 과정서 번복
'무기징역' 선고 받았지만 교도소서 노역 거부하며 무죄 주장…법원, 2015년 11월 재심 개시 결정
김신혜 "잘못된 부분 바로 잡히면 좋을텐데 수십년 걸릴 일인가…비극 반복되지 않게 힘 보탤 것"
친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무기수 김신혜(47)씨가 재심 사건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사건 발생 24년 10개월 만이자 법원에 재심을 청구한지 10년 만이다. 이번 사건은 국내에서 무기수가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은 첫 사례로 기록됐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해남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박현수 지원장)는 6일 존속살해·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형이 확정된 김씨에 대한 재심 선고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2000년 3월 7일 전남 완도군 완도읍에서 아버지(당시 52세)에게 수면제를 탄 양주를 먹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버지가 자신과 여동생을 성추행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이를 번복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받았다.
당초 사건은 뺑소니 의심 사고로 시작됐다. 2000년 3월 7일 오전 5시 50분께 전남 완도군 완도읍의 한 도로 옆 버스 정류장에서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A씨는 자택에서 약 7㎞ 떨어진 곳에 쓰러져 있었는데, 현장 주변에는 깨진 차량 방향 지시등 파편이 널브러져 있었다.
경찰은 뺑소니 사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벌였지만 김씨의 고모부가 "조카가 아버지를 수면제 먹여 살해했다고 말했다"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김씨는 긴급 체포됐다. 당시 23세였던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수면제를 양주에 타 아버지에게 '간에 좋은 약'이라고 말하고 먹였고, 아버지인 A씨가 자신과 여동생을 성추행해 죽였다"고 자백했다. 이를 토대로 수사 당국은 김씨가 A씨 명의로 약 8개에 달하는 보험에 가입하고,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살해했다고 기소했다.
그러나 김씨는 재판이 시작되자 자백 진술을 번복했다. 김씨는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는 고모부의 말에 대신 감옥에 갈 생각으로 거짓으로 자백했다"며 "선처를 받으려고 거짓말했을 뿐, 아버지의 성추행도 없었다"고 항변했다. 김씨는 무죄를 주장했지만 2000년 8월 광주지법 해남지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심에 이어 대법원도 무죄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김씨에 대한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김씨는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에도 노역을 거부하며 계속 무죄를 주장했고, 김씨의 사연은 여러 방송프로그램과 언론을 통해 재조명됐다. 이후 뒤늦게 경찰의 위법 수사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건이 다시 들춰졌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영장 발부 없이 김씨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폭행과 가혹행위로 자백을 종용한 정황이 제기된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 등이 경찰의 반인권적 수사를 확인하고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이 2015년 11월 재심 개시를 결정하면서 사건이 새 국면을 맞았다. 이는 우리나라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 결정 사례였다.
재심에서는 ▲ 자백 진술의 신빙성 ▲ 불법수집 증거 ▲ 수면제 등 검출 가능성 ▲ 알리바이 조작 ▲ 강압·불법 수사 여부 등이 쟁점이 됐다. 재심 재판부는 진술과 증거의 증거 능력에 대해 모두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자백 진술에 대해서는 김씨가 수사기관 진술을 모두 부인했고, 피고인이 자백한 것을 들었다는 친척과 경찰관의 진술도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특히 "김씨가 사건 당시 남동생이 범인으로 의심받는 상황에서 동생을 보호하려고 허위 자백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존속살해 증거에 대해서도 수면제(독시라민) 30알을 피해자에게 복용시켜 사망케 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은 피해자인 아버지가 숨지기 2시간 전 독실아민 30알 분량을 복용했다고 하지만, 부검 당시 피해자 위장 내에서는 어떤 형태든 많은 양을 복용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망 당시 피해자가 혈중알코올농도 0.303%의 고도명정(의식 희미·혼수 직전) 상태였던 점은 독립적인 사망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검찰이 주장하는 '사후재분배'(사망 후 약물 농도가 증가)도 신속한 부검이 이뤄진 점으로 봤을 때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살인 동기에 대해서도 피해자가 피고인과 여동생을 성추행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보험보상 범행동기도 보험설계사 자격이 있는 김씨가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금을 수령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동생들에게 허위 진술을 교사하고, 진술의 일관성이 없는 점 등은 의심스럽긴 하나, 이러한 사정만으로는 유죄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재판은 김씨에게 처음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에 대한 재심이다. 만약 검찰이 무죄에 불복해 항소하면 다시 재심 재판 2심이 이어질 수도 있다.
김씨는 이날 재판에 불출석했지만, 무죄가 선고돼 이날 곧바로 장흥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김씨는 "아버지가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끝까지 못 지켜드려 죄송하다"며 "이런 일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잘못된 부분이 있었으면 바로 잡으면 좋을 텐데, 이렇게 25년(만 24년), 수십 년 걸려야 되는 일인가에 대해 (교도소)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며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저도 힘을 보태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재심에서 김씨의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24년 간 무죄를 주장해온 김씨의 진실의 힘이 오늘의 무죄 판결로 이어졌다"며 "이번 판결이 김씨와 그의 가족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