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치 않았던 대극장 코미디의 흥행, 불가능을 확신으로 [대극장 코미디①]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1.05 14:13  수정 2026.01.05 14:13

대극장 거리감 좁힌 '자본의 스펙터클'

번역을 넘어 '재창조'된 유머의 문법

웃음 뒤에 흐르는 보편적 서사의 힘

대극장 뮤지컬 객석에서 박장대소가 터져 나오는 풍경은 더이상 낯설지 않다. 그동안 대극장은 웅장한 서사나 비극적인 작품들이 무대를 채워왔지만, 최근 ‘미세스 다웃파이어’ ‘비틀쥬스’ ‘슈가’ 등의 코미디 뮤지컬이 그 자리를 비집고 연이어 매진을 기록하거나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여러 시즌에 걸쳐 흥행한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를 포함해 이러한 작품들이 대극장 규모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은 코미디라는 장르가 대극장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충분한 완성도와 독자적인 문법을 갖추었음을 의미한다.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2024) ⓒ쇼노트

업계에선 대극장에서 코미디 뮤지컬을 올리는 것을 ‘태생적인 물리적 한계와의 싸움’이라고 입을 모은다. 무대와 객석 사이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관객이 배우와 맺는 정서적 유대는 약해질 수밖에 없고, 이는 0.1초 차이로 성패가 갈리는 유머의 타격력을 약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또한 언어와 관습의 차이로 인해 국경을 넘을 때 유머의 가치가 하락하는 ‘문화적 할인’ 현상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장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틀맨스 가이드’는 2018년 초연 이후 2024년 네 시즌에 걸쳐 공연되며 꾸준히 관객과 만나왔고,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2022년 초연하고 3년 만에 재연으로 돌아와 연일 매진을 기록 중이다. ‘비틀쥬스’도 2021년 초연에 이어 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면서 흥행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흥행에 성공한 해외 라이선스 코미디 뮤지컬 작품들은 공통된 특징을 보인다. 자본과 기술이 집약된 시각적 효과, 보편적 예술 언어인 음악적 퀄리티 그리고 공감을 극대화한 각색과 보편적 서사의 배치 등으로 물리적 한계라는 장벽을 허문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자본의 미학’을 코미디와 결합한 시각적 스펙터클이다.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보여준 ‘퀵 체인지’(Quick Change) 기술이 대표적인 사례다. 주인공이 눈앞에서 수 초 만에 인물을 오가는 변신 과정은 단순한 개인기를 넘어 무대 뒤 수많은 크루와 정교한 분장 시스템이 결합한 기술적 성취를 보여준다. ‘젠틀맨스 가이드’ 역시 한 명의 배우가 9명의 다이스퀴스 가문 후계자들을 연기하는 ‘1인 9역’의 설정 그 자체로 대극장에 걸맞은 압도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관객은 배우의 놀라운 캐릭터 변신 과정과 연기력에 환호하며 코미디극이 주는 즐거움에 기꺼이 높은 티켓값을 지불한다.


현재 공연 중인 ‘비틀쥬스’ 역시 마찬가지다. 거대한 세트가 통째로 기이하게 뒤바뀌고 화려한 시각적 효과가 쏟아지는 무대는 코미디도 대극장 규모의 압도감을 줄 수 있음을 시각화했다. 특히 극중 비틀쥬스가 “니들 티켓값의 반이 들어간 28억짜리 세트”라고 언급하며 관객과 대화하는 방식은, 대극장의 물리적 거리감을 오히려 유머의 소재로 활용하며 관객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영리한 전략을 보여준다.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2025) ⓒ샘컴퍼니

음악적 완성도 또한 대극장 코미디를 주류 장르로 끌어올린 핵심 동력이다. 해외 성공작들은 수준 높은 음악을 통해 유머의 언어적 장벽을 상쇄한다. ‘슈가’는 1930년대 빅밴드 재즈의 풍성한 사운드와 화려한 탭댄스를 전면에 배치해 청각적 압도감을 선사한다. ‘젠틀맨스 가이드’가 클래식한 오페레타 형식을 빌려 우아하면서도 날카로운 풍자를 구사했듯, 성공한 코미디들은 고난도의 가창력과 풍성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요구한다. 관객은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적 만족도를 바탕으로 극의 유머를 한층 더 품격 있게 받아들이게 된다.


더 직접적인 언어적 장벽은 각색의 힘으로 해소한다. 브로드웨이 특유의 말장난이나 문화적 맥락을 한국 관객의 일상과 맞닿은 ‘K-유머’로 치환하는 과정은 대극장 코미디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공정이다. ‘젠틀맨스 가이드’는 영국 상류사회의 허례허식을 풍자하는 고전적인 어투를 유지하면서도, 한국어의 동음이의어와 라임을 활용한 언어유희로 장벽을 넘었다. ‘비틀쥬스’는 원작의 파격적인 유머 스타일을 한국의 최신 트렌드와 결합하며 현지화에 성공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육아와 가사 도우미라는 한국적 생활 밀착형 소재를 각색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마지막으로 웃음의 이면에 흐르는 보편적인 서사는 관객의 심리적 만족감을 완성한다. 한국 관객은 단순히 웃고 즐기는 것을 넘어 정서적 몰입과 여운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흥행에 성공한 코미디극들은 하나같이 웃음 뒤에 가족애, 정체성, 꿈과 같은 묵직한 주제를 숨겨두고 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헌신적인 부성애, ‘비틀쥬스’가 던지는 존재론적 외로움, ‘젠틀맨스 가이드’의 계급 풍자 등은 관객에게 웃음 뒤의 뭉클한 잔상을 남긴다. 유머를 수단으로 삼아 결국 인간적인 감동에 도달하는 서사 구조가 대극장이라는 거대한 공간에서도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이 된 것이다.


‘젠틀맨스 가이드’ 김동연 연출은 한 인터뷰에서 “유머 코드를 미국식에서 한국식으로 바꾸는 일과 고급스러운 코미디물로 여기게끔 풍성함을 더하는 일에 중점을 뒀다”며 “코미디물의 가치를 낮게 보는 시선이 존재하는데, ‘돈이 아깝지 않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완성도를 높이고 풍성함을 더하는데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이 작품에서 1인 9역을 연기했던 배우 정상훈 역시 “외국 코미디 작품을 한국식으로 각색하기가 참 난해한데, 거의 부숴서 다시 탑을 쌓았던 것 같다”며 “우리가 중점을 뒀던 부분은 ‘한국 관객들의 공감’이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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