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수술 당시 태아 심박 정상 확인"…살인죄 인정
"낙태죄 사라져 입법공백…산모는 사각지대에 놓여"
임신 36주자 태아의 초음파 사진과 함께 낙태 사실을 주장하는 브이로그 영상. 유튜브 갈무리.
임신 36주차 산모에게 낙태 수술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의사들이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구속됐다. 법원은 이들의 살인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유튜버 산모에 대해선 '사회적 사각지대에 놓였다'며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이진관 부장판사)는 4일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병원장 윤모(81)씨에게 징역 6년과 벌금 150만원을 선고하고 11억5016만원의 추징을 명했다. 수술을 집도한 심모(62)씨도 징역 4년의 실형이 선고돼 윤모씨와 함께 법정 구속됐다. 산모 권모(26)씨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했다.
병원장 윤씨와 집도의 심씨는 지난 2024년 6월 임신 34~36주차인 산모 유튜버 권씨의 제왕절개 수술을 진행한 뒤 태아를 미리 준비한 사각포로 덮고 냉동고에 넣어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윤씨는 권씨의 진료기록부에 '출혈 및 복통 있음'이라고 허위로 기재하고 태아가 사산한 것처럼 꾸민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수술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자 윤씨는 태아의 사산 증명서를 허위로 발급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검찰 조사 결과 윤씨는 병영 경영에 어려움을 겪자, 낙태 수술을 통해 돈을 벌기로 마음먹고 2022년 8월부터 2024년 7월까지 브로커들로부터 임신중절 환자 527명을 소개받아 총 14억6000만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이 사건 낙태 수술과 관련해 이들 세 사람의 살인 혐의가 인정된다고 봤다. 수술 당시 태아의 심박이 정상이었고 다른 이상이 없어 충분히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산모가 초음파 진료를 통해 태아의 심장 소리도 확인했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산모는 여러 산부인과와 의원에서 진료받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태아의 사체 처리를 의원에 위임한다는 동의장에 서명하고 수술을 감행한 것은 곧 태아 사망으로 이어질 것을 본인도 알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형법상 낙태죄가 사라져 입법 공백 상태에 있는 점을 두고 "낙태죄의 입법 공백이 범죄 성립 여부를 좌우하지는 않지만 참작할 여지는 있다"며 "이들의 형을 정함에 있어 살인죄 책임을 온전히 이들에게만 물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며 모든 인간은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라며 "태아가 태어난 이상 하나의 사람으로서 보호돼야 하는데 피해자는 숨 한 번 제대로 쉬어보지 못한 채 냉장고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산모 유튜버 권씨에 대해 "동영상을 올려 우리 사회가 큰 충격을 받았다"고 비판하면서도 "산모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을 고려할 때 임신과 출산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임신 당시 오진으로 범행 직전에서야 임신 사실을 안 것으로 보인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끝으로 재판부는 "산모를 엄히 처벌하는 게 마땅하지만 위기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법적 조치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적·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위기 임산부를 보호하는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은 2024년 7월에 시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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