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예고편 아냐?…가성비와 메시지 동시에 잡은 ‘빅 마더’의 AI 활용법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3.25 11:47  수정 2026.03.25 11:47

3월 30일부터 4월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AI 기반 연극 예고편 제작...극 세계관 마케팅에 투영

공연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한 편의 영화 같은 예고편이 등장했다. 이달 30일 개막하는 서울시극단의 연극 ‘빅 마더’ 공식 티저 영상이다. 이 예고편은 기존 연극이나 뮤지컬 홍보물의 문법을 벗어나, 상업 영화 예고편에 버금가는 시각적 완성도와 몰입감을 구축했다. 이를 가능하게 한 핵심 도구는 인공지능(AI) 기술이다.


ⓒ세종문화회관

그동안 공연 예고편은 형태와 내용에서 뚜렷한 한계를 보였다. 대부분 배우들의 대본 리딩, 연습실 스케치, 연출진의 인터뷰 영상을 교차 편집하는 식의 단순 정보전달에 그치지 마련이다. 물리적으로 사전 예고편 단계에서 극의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온전히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빅 마더’는 AI 기술을 통해 이 한계를 돌파했다.


연극 ‘빅 마더’는 프랑스의 잡지사 기자 출신 극작가 멜로디 무레가 2023년 발표한 희곡을 토대로 한다. 뉴욕을 배경으로 거대 권력의 음모를 폭로하려는 기자들의 싸움을 그렸다. 투명성을 가장한 통제, 데이터 감시, 여론 조작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진실이 작동하는 방식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제작진은 이처럼 철저히 통제된 극 속의 세계관을 예고편이라는 매체 위로 고스란히 끌고 왔다. 작품의 내용과 마케팅 형식을 완벽하게 일치시킨 것이다. AI와 알고리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극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그 비판 대상인 AI 기술을 영상 제작의 전면에 내세우는 역설을 택했다. 관객은 기술로 직조된 영상을 시청하며, ‘기술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라는 연극의 세계관을 직관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기획의 우수성뿐만 아니라 마케팅의 실질적인 효용성도 입증했다. 기존 방식으로 영화 수준의 티저 영상을 제작하려면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요구된다. 사전에 무대 세트를 별도로 제작하고, 고가의 촬영 장비 대여, 조명 및 음향 스태프 투입이 필수적이다. ‘빅 마더’는 AI를 활용해 이 복잡한 실사 촬영 과정을 전면 생략했다. 물리적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마케팅 비용을 크게 절감한 셈이다. 예산 절감이라는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선택이 작품의 메시지와 완벽하게 맞물렸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작품 속의 통제 사회의 억압적인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AI가 만들어내는 특유의 인위적 영상미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해 AI 예고편을 기획하게 됐다”며 “‘기술에 의한 통제’라는 극의 핵심 세계관을 가장 직관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획”이라고 설명했다. 또 “예고편 촬영을 하면 필연적으로 투자될 수밖에 없는 비용을 AI를 활용함에 따라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시도는 단발성 이벤트에 머물지 않는다. 세종문화회관은 최근 기관 차원에서 영상물 제작에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앞서 ‘세종시즌구독’ 티저 영상을 AI를 활용해 다시 제작하고 대중에 공개했다. 기관의 지속적인 기술 활용 실험과 기조가 ‘빅 마더’라는 개별 작품의 주제와 맞물려 마케팅 전략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빅 마더’ 예고편 사례는 공연계의 AI 활용에 대한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한다. 그동안 공연 홍보 마케팅에서 AI는 포스터 합성이나 단순한 예산 절감 수단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이번 예고편은 AI가 관객을 극장에 오기 전부터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입체적인 마케팅 도구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비용 절감이라는 현실적 선택과 작품의 미학이 결합하면서 완벽한 시너지를 낳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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