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0개팀’ 칼바람 속 사연은 제각각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입력 2012.12.21 09:06  수정

1부리그 16개팀 중 10개팀 사령탑 교체

승강제 칼바람 속 감독 교체 사연도 제각각

사퇴한 광주 최만희 감독.

2012시즌을 마친 프로축구 K리그가 새판 짜기에 분주하다.

팀 개편 핵심이라 할 만한 감독교체의 칼바람이 어느 때보다 매섭다. 올해 1부 리그에서 활약한 16개팀 중 벌써 감독교체가 확정된 팀만 무려 10개팀에 이른다. 더 늘어날 수도 있다. K리그 역사상 단기간에 이렇게 대대적인 사령탑 물갈이가 이루어진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승강제 칼바람에 K리그 감독들 추풍낙엽

사실 K리그는 그간 해외축구나 타 종목에 비하면 비교적 감독교체 주기가 긴 리그에 속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프로축구 사상 처음 도입한 승강제와 스플릿시스템의 칼바람이 리그 분위기를 송두리째 바꿨다. 하위그룹과 2부리그 강등을 피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고, 치열한 경쟁은 감독들에게도 성적에 대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시즌 중 인천이 감독교체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인천은 개막 후 한 달 만에 성적 부진을 이유로 허정무 전 감독이 자진 사퇴했다. 7월엔 강원이 김상호 전 감독의 사퇴로 김학범 감독이 지휘봉을 물려받았고, 한 달 뒤에는 전남도 정해성 전 감독의 뒤를 이어 하석주 감독을 신임 사령탑에 앉혔다. 올 시즌 나란히 하위그룹으로 추락했지만 치열한 경쟁 끝에 결국 1부리그 잔류에 성공하며 감독교체 효과는 일단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본격적인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시즌 종료와 함께 다가왔다. 하위그룹의 대구와 대전은 시즌 종료 한 경기 앞두고 각각 모아시르와 유상철 전 감독과 재계약 포기를 선언, 당성중 감독과 김인완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내정했다. 성남은 신태용 감독이 경질되고 안익수 부산 감독을 영입했다. 올 시즌 첫 강등의 희생양이 된 광주는 최만희 전 감독이 사퇴하고 여범규 코치가 신임감독으로 결정했다.

이로써 올 시즌 하위리그 8개팀 중 이미 중도 하차한 상주 상무 박항서 감독을 제외하고 나머지 7개팀 수장이 모두 교체됐다.

상위리그도 감독교체 냉기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국가대표팀으로 자리를 옮긴 최강희 감독의 빈자리를 메웠던 전북 이흥실 감독대행이 시즌 종료 후 자진 사퇴했고, 윤성효 수원 감독도 계약기간 6개월을 남겨놓고 사직하며 서정원 코치가 감독으로 승격됐다. 부산은 안익수 감독과 김인완 수석코치가 각각 성남과 대전으로 자리를 옮기며 코칭스태프를 새롭게 구성해야하는 상황이다. 경남 최진한 감독도 시민구단 특성상 향후 도지사 선거에 따라 유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존 감독 중 그나마 현재 입지가 안정적인 인물은 올해 K리그 우승을 이끈 최용수 FC 서울 감독, FA컵 우승을 차지한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 ACL 우승을 차지한 김호곤 울산 현대 감독 정도다. 올해 제주를 6위로 이끈 박경훈 감독도 비록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꾸준한 성적을 통해 지위가 안정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K리그 최고령 사령탑인 김호곤 울산 감독은 올 겨울 유일하게 소속팀과 재계약에 성공한 감독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각양각색 감독교체 속사정

이러한 급격한 감독교체 현상에 대해 팬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감독이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앞뒤 과정을 생략하고 모든 책임을 감독에게만 떠넘기는 것이 타당한가하는 부분도 생각해볼 문제다.

올해부터 승강제가 도입되면서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몰린 많은 구단들의 부실한 운영실태가 도마에 올랐다. 특히 재정상태가 열악하고 정치적 상황변화에 민감한 시도민 구단들은 내내 잡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인천은 시즌 개막 전부터 구단 내부의 정치적 파벌싸움과 낙하산 인사 논란, 방만한 운영으로 인한 임금체불사태까지 벌어지며 표류했다. 허정무 감독은 임기 내내 부진한 성적은 물론이고 반대파와 서포터스까지 가세한 네거티브에 시달려야했다. 허정무 감독의 영입을 추진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던 구단주 송영길 인천시장은 시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내내 모르쇠로 일관했다.

광주의 2부리그 강등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최만희 전 감독은 자진 사퇴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구단의 후진적인 운영 실태를 폭로해 충격을 일으키기도 했다. 명색이 프로선수들이 열악한 원룸형 숙소에서 계절마다 추위와 더위에 허덕였고, 전용식당이 없어서 숙소 옆 음식점에서 빈약한 식사로 끼니를 채워야했다고 주장했다. 또 단장이 감독의 동의 없이 핵심선수들의 이적과 방출을 일방적으로 결정했으며, 축구화 등 선수단에 지원할 용품을 사적으로 빼돌리는 등 전횡을 일삼았다고 폭로했다.

자리를 지킨 감독들도 불만이 많기는 매한가지다. 올 시즌 중반 강원 사령탑을 맡아 팀의 극적인 1부 잔류를 이끈 김학범 감독은 생존의 기쁨보다 구단의 안이한 행태에 쓴 소리를 남겼다. 김학범 감독은 강원은 시즌 중반 대표이사가 사퇴하고 난 후 구단에서 월급이 체불되는 어려운 상황을 겪었음에도 구단주(최문순 강원 도지사)가 해결책은 내놓지도 않고 ‘성적이 부진하면 팀 해체’를 운운하며 선수단을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대구가 유일한 외국인 사령탑이었던 모아시르 감독과 결별한데는 성적에 대한 아쉬움보다 비용문제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당초 재계약이 유력해보였지만 내년 시즌 급격한 인건비 상승에 부담을 느낀 대구 구단으로서는 고심 끝에 모아시르 감독과의 계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페셔널 하게 운영되는 몇몇 구단을 제외하고 아직 많은 팀들이 재정적 자립성과 체계화된 운영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K리그의 구조적 한계라는 지적이다.

그런가하면 부산은 또 한 번 ‘감독을 다른 팀에게 빼앗기는’ 흑역사를 되풀이했다. 안익수 부산 감독은 최근 신태용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사실상 경질된 성남의 사령탑을 맡아 친정팀으로 귀환하게 됐다. 부산은 2007년 박성화 전 감독이 취임 17일 만에 축구협회와 구단 고위층간 협의로 올림픽대표팀으로 떠난바 있고, 2011년에는 황선홍 감독이 재계약을 포기하며 친정팀 포항 스틸러스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를 이은 안익수 감독은 2년간 부산을 플레이오프와 상위리그로 이끌며 꾸준한 성적을 냈고 2014년까지 계약기간이 남아있었지만 성남의 강력한 러브콜에 결국 팀을 떠나게 됐다. 부산은 김인완 코치까지 대전 사령탑으로 취임하며 ‘지도자들의 환승역’이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를 달게 됐다. 그나마 윤성효 감독을 재빠르게 영입하며 시행착오를 최소화한 점은 이전과 달라진 부분이다.

부산으로 자리를 옮긴 윤성효 수원 감독과 이흥실 전북 감독대행은 그나마 합리적인 결별을 선택한 케이스다. 윤성효는 감독은 계약기간이 6개월 남은 상태였으나 최근 2년간 무관에 그치며 기대에 못 미친 성적표를 거두자 일찌감치 교체를 예상한 상황이었다.

후임 서정원 감독은 원래 서울 전신 안양에서 선수생활을 하다가 해외진출 이후 1999년 K리그로 복귀하면서 수원으로 이적한 사건이 계기가 돼 지금의 서울-수원 슈퍼매치를 탄생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양 팀의 상징적인 존재인 서정원 감독과 최용수 감독이 맞붙게 될 내년 서울-수원의 더비는 더욱 불타오르게 될 전망이다.

전북을 이끌었던 이흥실 대행은 시즌 초반 최강희 감독의 빈자리를 채우며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 다소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기도 했으나 리그 2위로 디펜딩챔피언의 자존심을 지켰다. 올 시즌 감독으로서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은 이흥실 대행은 내년 6월 최강희 감독의 전북 복귀가 예정됨에 따라 새로운 도전을 위해 상호 합의하에 결별을 선택했다.

최근 K리그는 젊은 감독들의 약진이 대세다. 김호곤 울산 감독이나, 김학범 강원 감독 등 일부 베테랑을 제외하면 대부분 감독경험이 5년차 미만의 젊은 감독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서정원 수원 감독이나 당성중 대구 감독처럼 내년에 갓 데뷔하는 초보사령탑들도 즐비하다.

하지만 정말 감독의 능력에 대한 검증이 얼마나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구단이 얼마나 감독에게 소신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하고 있는지는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경험이 부족한 젊은 감독들이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지휘봉을 물려받고, 충분한 지원도 받지 못하다가 한두 번의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금새 팽 당하는 지금의 분위기에서는 능력 있는 지도자들이 꾸준히 배출되기 어렵다. 검증된 베테랑 감독이나, 외국인 지도자들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도 K리그에 좀 더 다양한 색깔의 축구와 리더십이 공존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간다는 지적은 생각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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