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소사이어티 기고>탈북자의 북 인권 고발영화 ‘신이 보낸 사람’ 관람기
최근 개봉된 영화 ‘신이 보낸 사람’(김진무 연출)은 북한의 14만 명으로 추산되는 지하 교인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많은 관객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영화는 듣던 대로 막이 오르자마자 숨을 들이키게 만든다. 눈을 질끈, 감고 싶기도 하다.” 좌와 우의 구분 없이 거의 모든 영화광과 지식인들이 칭찬하는 이 영화는 2월 19일 현재 예매율 1위, 좌석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소리 없이 강한 영화'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영화를 한 탈북 여성이 관람한 뒤 느낌을 글로 보내왔다. 2년 전 탈북한 그의 시선으로 본 영화 이야기는 특별하다. 단신 탈북해 가족을 북한에 두고 있는 그의 신원이 노출된 것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가명으로 처리했다. < 편집자주 >
바로 어제 본 영화이지만 아직도 그 여운이 잊혀지지 않아 마치 악몽 속을 헤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2년 전 탈북에 성공해 대한민국 국민이 된 이후 그저 나 홀로 독립하기 위한 몸부림 속에 잠시나마 북한을 잊고 살아왔던 건 아니었나 하는 자책(自責)과 깨우침도 얻었던 귀한 기회였다. 전국 개봉 바로 다음 날인 지난 토요일(2월 15일) 나의 은사가 구해주신 영화 관람 티켓 열 장을 전해 받았다. 북한 인권을 폭로한 영화 ‘신이 보낸 사람’ 초대권이었다.
이런 영화가 흥행에도 성공하고, 되도록 많은 이들이 함께 봐야 한다며 한 독지가가 많이 구매해 주변의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주는 티켓이라고 들었다. 그 분의 마음이 더 없이 감사할 따름인데, 이걸 누구랑 보아야 할까? 갑자기 10명에게 시간을 내라고 독촉하기는 무리였지만, 주변의 친구 후배들 20여 명에게 북한 인권에 대한 영화를 보러 가자고 휴대폰 문자를 보냈다. 대부분 무연고 탈북자를 포함한 대학생들이고, 20대가 주축이라서 내가 맏언니 뻘이다.
선약이 있는 친구들은 못 오고 그날 오후 6시10분까지 롯데시네마 노원점에 10명이 다 모였다. 탈북한 시기가 제각기 다르고, 개인별로 편차가 없지 않지만, 지난 설 명절에는 임진각에도 함께 다녀오기도 했을 만큼 평소 만나는 동생들이다. 그들과 함께 반갑고도 착잡한 마음으로 영화관에 입장했다. 북한에 대한 영화라 관람객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편견을 부정하듯 영화관 안은 이미 만객(滿客)이였다. 작은 충격의 시작인데, 이들은 이 영화에서 무엇을 얻으려 할까? 그게 나와는 어떻게 같고 다를까? 의문과 기대가 함께 들었다.
배우들의 리얼한 열연과 북한 국민들에 대한 가혹한 고문장면
처음부터 북한 보위부에서 임산부를 고문하는 처참한 장면이 나와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피로 얼룩지고 불에 달군 도구로 임산부를 가해하고, 그것도 임산부의 남편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물론 내게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장면인데, 그게 너무도 여실한 북한 현실임을 나와 영화를 함께 본 우리들은 모두가 안다) 종교와 신앙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는 어느 북한 지하교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 그 임산부는 주변 성도들이 해(害)를 당할까봐 자신이 선택해서 고문을 받으며 순교를 선택한다.
‘신이 보낸 사람’은 아내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남편 주철호(김인권 분)는 남아있는 사람들의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그들 10여명을 남조선 땅으로 탈출시키려고 아픈 몸을 가누며 다시 마을을 찾는 이야기다. 남조선을 가나안 땅이라고 믿는 사람들, 그 땅을 밟아보려고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해 보지만 한 가닥 희망의 빛마저 잃는다.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와 국경경비대, 그리고 보안원들의 거미줄 같은 감시망을 벗어나 목숨 건 탈북을 시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가 감시하고 감시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인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문득 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학생들을 감시하는 사람으로 발탁되던 때가 주마등처럼 지나쳤다. 친구들의 동향과 그들 부모들의 언행, 친구 집에 어떤 낯선 사람이 왔다 갔는지, 모든 것에 대해 학교를 담당하고 있는 보위원을 만나 의무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곤 했다. 어린 아이들까지 이렇게 감시하고, 감시당하며 사는 곳이 북한이다.
공감대를 형성해 주는 영화의 배경과 환경
눈물범벅이 되면서 영화에 공감 할 수 있었던 것은 배경과 환경을 잘 묘사해 준 것이다. 북한의 어느 탄광마을을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실제 평양과 큰 도시에서 사는 북한 사람들조차 미처 모를 수 있는 지방을 섬세하게 보여주었다. 평양을 제외한 지방에는 1995년부터 지금에 이르는 동안 사람이 살고 있지만 폐허처럼 변해버린 마을들이 무수히 많다. 특히 탄광과, 광산마을들이다. 탈북자라고 다들 그런 곳에서 살고 그런 생활을 체험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영화를 본 탈북자들의 반응 또한 여러 가지로 나뉜다.
내 고향 청진에서 기차로 3시간 거리에 “무산광산”이라고 하는 자철광매장량이 세계2위에 속하는 노천광산이 있다. 1970년대부터 김일성 부자의 관심으로 10여 년 군사 복무한 사람들 3000여명을 반(半)강제로 국가로 인해 집단 배치되고, 또한 2000년대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꿈나무들 1000여명을 강제로 집단 배정했다.
1980년대에는 광산노동자들에게 주택을 공급했는데 지금은 바로 영화에서 보는 대로 폐허처럼 변해 버렸다. 하루 한 끼 죽도 먹기 힘들어 집안에 가격을 측정할 수 있는 물건들은 다 팔아서 연명해야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밝은 해가 뜨는 장면을 보기 힘든 것처럼 그게 바로 현재 북한의 실상이 암흑인 것이다.
영화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서로 다른 견해 몇 개
우리는 그 땅에서 살다가 온 사람들이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또다시 헤어 나올 수 없는 비참하고 침울한 마음에 잠겼다. 누구는 반평생을, 또 누구는 십대의 소중한 시절을 그 땅에서 억압받으며 살아온 억울함 때문인가? 아니면 그 곳에서 아직까지 "인권"이란 말조차 모르며 한평생을 살아가는 소중한 가족들에 대한 애달픔이 가슴을 울려서 일까? 적지 않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숨 한 번 편히 쉴 수 없었다.”고 했지만, 우리도 그랬다.
영화를 함께 본 내 친구 동생들의 각기 다른 심경을 그대로 적어본다. 탈북 10년차 되는 친구(34세 회사 재직) “탈북자들의 콤플렉스이고, 트라우마인 기억조차 힘든 북한 인권문제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알리는 다양한 영화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공감된다. 탈북 5년차 되는 내 동생(28세 대학교 재학 중)은 “대한민국 청년들도 깨어있어야 한다. 맹종맹동 북한을 좋아할 수는 결코 없지 않은가?”고 다짐하듯 말했다. 그 느낌을 나도 안다.
탈북 1년차 된 동생(23세 대입준비생) “지금도 가끔 강을 건너던 무서운 꿈을 꾸면서 새벽에 소스라쳐 놀란다. 이 영화가 북한의 현실을 잘 형상했다.” 또 있다. 중국에서 북송 당해 직접적으로 고문을 받은 친구(25세 회사재직) “영화에서 리얼한 북한 보위부의 고문장면을 보고 또다시 그때의 충격이 떠오른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드린다.” 또한 우리들 중에는 북한에서 자랐지만 실상에 대해서 잘 모르는 친구도 있었다.(30세) “인간이 지어낸 거짓말 같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옛말 이라 생각했는데 실제사실이라니, 믿기 힘들 정도로 처참하다.”
나에게는 조금 아쉬운 점도 남았다. 영화보고 난 후에 지인들에게 추천을 해드렸는데 상영관이 많지 않았고 제한되어 있다. 북한 인권을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외면을 한다면 과연 통일에 대한 희망은 있을까? 라는 아쉬움이다. 하지만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분명히 있다. 다소 종교 영화라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도 있지만 종교와 신앙을 떠나서 인간의 자그마한 권리조차 모르는 북한의 현실은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그들은 인간 이하의 고통과 피로 얼룩진 역사를 만들어야 되는 것인가.
영화를 보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더욱 더 고맙고 소중하며, 북한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 영혼만이라고 가고 싶어 하던 그 “가나안 땅”에 내가 지금 서 있고, 숨 쉬고 있음을 깊이 깨달았다. 누구는 그토록 바라는 그 땅에서 우리가 살고 있음에 고맙고 감사 드린다. 티켓을 어렵게 구해 주시면서 은사가 나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미안해. 가슴 아픈 추억과 상처가 있는 너희들에게 밝은 영화를 보여 주고 싶은데 생각하기도 싫은 그 땅을 돌아봐야 하는 영화를 추천해 주어서….”
우리가 북한 인권법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유
그때는 제대로 대답을 드리지 못했지만 이제는 똑 바른 대답을 드릴 수 있다. “좋은 영화를 추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는 것에 연연하면서 그 땅을 잊고 살던 저희들을 깨워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초심으로 다시 되돌아 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오후 8시경에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다. 돌아보니 객석에 꽉 차있는 관객들이 움직일 줄 모른 채 우두커니 앉아 있다. 영화 한 편, 아니 생지옥에 다름 아닌 북한의 현실이 안겨준 충격 때문일 텐데, 저 분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현실이라 믿기 어렵겠지? 그 분들도 지금 이 자리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임에 감사하고 있겠지?
사실 계획은 오랜만에 만난 애들과 맥주 한잔 나누려 했는데 영화를 보고 울어서 충혈 된 눈과 다소 흑빛으로 변한 모습을 보니 다들 일찍 들어가 쉬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간단한 소감만 나누고 집으로 왔다. 다만 서로의 영화평은 달랐지만 한 가지 의기화합이 된 바람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북한인권법'이 하루 빨리 제정되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희망한다. 그건 같은 시대 한반도에서 사는 한국인 사이의 상식과 균형감각에서 당연한 일이다.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지도자들을 반(反)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죄로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고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최근 권고했다는 뉴스도 신문에서 보았다. COI는 400쪽 분량의 최종 보고서를 통해 “이들 침해의 엄중함과 규모, 성격은 현재 세계에서 도저히 비할 수 없는 국가를 드러낸다”고 강조했다. 바로 나 같은 탈북자 등 증인들과 가진 240여회의 비밀 인터뷰를 통해 증거를 수집했으니 정확할 수밖에 없다.
COI는 보고서에서 “이들 인도에 반한 범죄들은 몰살과 살해, 노예화, 고문과 투옥, 강간과 강제낙태 및 기타 성폭행과 정치와 종교, 인종과 성을 이유로 한 처형, 주민의 강제이주, 인신의 강제 실종 및 장기 기아를 초래하는 비인도적 행위를 수반한다”고 역설했지만, 그건 내가 얼마 전 북한에서의 일상이었음을 나도 증언할 수 있다.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북한 정부와 지도자들이 그런 능력이 없거나, 의지가 실종됐다는 건 국제적 상식에 속한다. '신이 보낸 사람'은 그걸 새삼 증언해주는 영화 이상의 영화였다.
글/박승희 탈북여성(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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