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만났지만 '군 위안부' 없이 '북핵'만
박 대통령 아베 쇼맨십 '무대응', 일본 미일관계 강화 목적일 수도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미일 3자 정상회담에서 한일관계 정상화 방안과 한일 양자 정상회담 개최 일정은 결국 논의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각)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 개최지인 네덜란드 헤이그의 미국 대사관저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주최하는 형식으로 열린 이날 회담에서는 북핵문제 해결과 핵비확산, 이를 위한 한미일 3국 간 공조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대화 위한 대화 없다' 박 대통령 원칙 반영
당초 이번 정상회담은 ‘아시아 중시 전략’을 추진해온 오바마 대통령의 중재로 마련됐다. 미국의 구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한일 양국간 관계개선을 목적에 둔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정상회담 성사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아베 총리의 ‘고노 담화’ 계승 발언도 미국의 압박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이 같은 노력에도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논의 주제는 한일관계를 떠나 범세계적 공통적 관심사인 북핵 문제에만 한정됐다.
다른 각도에서 이는 박 대통령의 ‘원칙’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앞서 박 대통령은 일본과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대화를 통해 실효성 있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일본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원칙이었다.
결국 아베 총리가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박 대통령이 일본에 손을 내밀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 아베 총리는 이날 회담에서 위안부, 독도 문제 등은 거론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의 입장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한일관계 개선보다는 미일관계 강화가 목적일 수도 있다.
정상회담에 앞서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에게 우리말로 인사하고, 모두발언에서 “이번 만남이 일본과 한국간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위한 첫 걸음이자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한 것도 한일관계 개선 의지보다는 분위기 반전을 위한 일종의 쇼맨십이나 제스처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분석이다.
아베 총리가 회담에서 납북 등 일본 내 현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발언하면서도 한일 양국간 현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간 것이 회담에 임하는 아베 총리의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같은 점들을 고려할 때 한일관계는 당분간 기존의 갈등구도에서 답보 상태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밖에 일본 언론에서는 한일 정상이 양국간 현안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오바마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였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6자회담 수석대표 회의, 한미일 안보토의 개최 합의
한편, 한미일 3국 정상은 회담에서 북한 비핵화를 위한 공조 강화 차원에서 가까운 시일 내 한미일 3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 회의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청와대는 6자회담 재개와 관련, 3국 정상이 ‘대화를 위한 대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이룰 수 있는 여건 하에 회담이 추진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관련 협의를 지속키로 했다고 전했다.
또 북한의 현존하는 모든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법으로 포기할 것을 촉구하자는 데에 인식을 함께했다. 이를 위해 중국이 대북 설득과정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해나갈 수 있도록 중국의 협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데에도 3국 정상은 의견을 모았다.
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의 양적·질적인 심화, 북한의 안보 도전 등 무모한 행동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의 나쁜 행동을 억제하는 데 있어서 3국간 협력이 과거에 비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핵문제 해결과 3국간 안보협력 차원에서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 회의를 개최하고 △한미일 3국 국방부 차관보급을 수석대표로 2008년 이후 5차례 실시된 ‘한미일 안보토의(DTT)’를 개최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DTT는 이르면 다음 달에도 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한미일과 국제사회가 북핵 불용의 확고한 원칙을 견지하면서 단합되고 조율된 대응을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북핵 불용에 대한 강력한 국제적 공감대를 기초로 북한이 핵보유에 대한 전략적 계산을 바꾸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한 6자회담 수석대표 회의에 대해서는 “한미일 공조가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만큼, 한미일 3국 수석대표들이 조속히 만나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이룰 수 있는 협력방안을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공감의 뜻을 내비쳤다.
이밖에 아베 총리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상호보완성을 언급하며 대북억제에 있어 일본의 협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북한이 핵·미사일 문제, 납치·이산가족 문제 등 인도적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행동을 하게끔 협력해나가자고 제안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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