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출입구 폭파?" 묻자 가족들 "절단은 가능"
<현장>세월호 참사 12일째 악천후로 수색도 난항
진도체육관 "풍랑 특보 가능성" 일기예보에 한숨
세월호 참사 12일째인 27일 오후 4시 진도 팽목항. 굵어지는 빗줄기에 자원봉사자들의 손이 바쁘다.
실종자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 나온 각종 단체 관계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자신들의 천막 지붕에 고인 물을 거둬내고, 천막에 덧씌운 비닐막을 보수했다. 한쪽에서는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는 천막 주변 흙바닥에 고인 물을 빼기 위해 배수로를 트고, 다른 한쪽에선 눈삽으로 아스팔트 바닥에 고인 물을 퍼냈다.
이날 새벽부터 이어진 악천후로 세월호 침몰현장의 수색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팽목항의 구호인력과 실종자 가족들도 몰아치는 비바람에 힘든 하루를 보냈다.
오후 5시가 넘어가면서는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일부 실종자 가족들은 구호품으로 받은 운동복에 바람막이, 우비를 겹겹이 입고 가족휴게소의 난로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반면 대다수의 가족들은 외출을 삼간 채 천막을 지켰다. 가족들이 저녁 뉴스를 시청하던 가족대책본부 옆 텔레비전도 한산했다.
5시 10분께 가족대책본부로 실종자 가족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본부 안에서는 실종자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학생으로 추정되는 시신 한 구가 추가 수습됐다는 소식이 들린 때였다. 잠시 후 사망자가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가족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본부를 빠져나왔다.
이날 수색은 하루 종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사고현장에 풍랑예비특보와 주의보가 잇달아 발효되면서 바지선 1척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박은 일찍이 팽목항 선착장 인근 해역으로 대피했다.
저녁 7시 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이 가족대책본부를 찾았다. 최 차장은 구조현장의 상황과 함께 다음날 수색 계획을 밝혔다. 최 차장이 출입구가 막힌 선체의 실종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선체를 절단하거나 출입구를 폭파해야 한다고 말하자 가족들은 폭파에 난색을 표하면서도 절단은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앞서 실종자 가족들은 아침 가족회의에서 선체 인양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한 실종자 아버지는 캐비닛을 비롯한 부유물들이 격실 입구를 막아 선체 전부를 수색하는 것이 어렵고, 수색 종료 시점을 예측할 수 없다는 이유로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선체 수색이 마무리되지 않은 점, 인양용 바지선이 들어오려면 수색용 인양선이 빠져야 하기 때문에 수색이 중단되는 점, 한정된 정조 시간에 수색과 인양을 병행하기 어려운 점, 인양 작업에 2개월 이상 소요되는 점 등을 들어 선체 수색이 끝날 때까지 인양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결국 가족들은 현재까지 수색이 완료되지 않은 부분의 수색이 끝날 때까지 인양을 논의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빈자리 늘어난' 진도체육관 '빗물에 눈물에...'
아울러 이날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진도 실내체육관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오전부터 내린 굵은 빗줄기에 실종자 가족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전날 “풍랑특보가 발효될 가능성이 있다”는 기상 예보가 야속하게 맞아떨어지자 할 말을 잃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체육관 앞쪽 단상에서 구조작업을 전하는 대형 스크린만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사고 현장을 생중계하는 카메라 렌즈에 묻은 빗물에 화면도 흐려졌다.
맞은편 스크린에서 나오는 방송뉴스에 가족들의 눈물이 또 한번 흘렀다. 침몰사고가 발생한 지난 16일부터 열흘간의 기록을 종합한 뉴스를 시청하던 한 실종자 가족은 안타까운 마음에 “어휴. 어이구”하며 흐느끼기도 했다. 이들의 마음은 여전히 4월16일에 머물러 있다.
특히 이날 오전 10시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의표명 뉴스가 나오자 실종자 가족들은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하며 정 총리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한 실종자 가족은 “저건 무책임한 거지”라고 했고, “상황이 이런데, 사퇴해서 어쩌겠다는 거냐”라며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사망자는 188명으로 늘어 어느새 실종자 수가 사망자 수보다 줄었다. 체육관에는 빈자리가 더 많았고, 일부 실종자 가족들은 이날 오후 짐을 꾸려 체육관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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