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장보리와 사도세자는 아버지 어머니와 왜 싸우나


입력 2014.09.24 11:26 수정 2014.09.24 11:30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김헌식의 문화 꼬기>욕망에 충실한 현대인들의 욕구불만 표출

SBS 월요드라마 '비밀의 문' 동영상 화면 캡처.

MBC '왔다, 장보리'와 SBS '비밀의 문'은 같은 TV 드라마이지만 장르는 물론 공간이나 시대적 배경이 너무나 다르다. 하지만 두 드라마는 자식이 부모와 적대적 관계가 되는데 특히 악녀나 악당과 손을 잡는 부모의 모습이 설정과 복선으로 사용된다.

근래에 이런 설정과 복선은 심심치 않아왔다. 드라마 '조선총잡이'처럼 아들이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설정은 매우 고전적인 방식이 되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비슷한 부모 자식의 서사구도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두 작품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SBS '비밀의 문'에서 사도세자 이선(이제훈)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벗 신흥복(서준영)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분투한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영조(한석규)는 진실을 은폐하는 노론 영수 김택(김창완)과 손을 잡는다. 자신의 비밀 행위가 탄로날까 우려 했기 때문이다. 그 행위는 바로 형 경종을 밀어내면서 노론세력과 협력하겠다는 서약이다.

신흥복은 서약을 담은 '맹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죽어야했다. 맹의는 노론의 비밀 조직 ‘대일통회맹’의 결의문이고, 그안에 정조의 맹약이 있는 셈이다. 승정원 화재로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맹의가 등장하면서 노론은 이를 반드시 취해야 했다. 영조가 노론과 협력하기로한 약속을 깨었고, 오히려 현재는 노론을 핍박하고 있기 때문에 영조를 노론이 압박할 좋은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사도세자가 신흥복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칠수록 과거의 감추고 싶은 영조의 허물은 등장하게 된다. 이로써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와 적대적인 대결을 벌여야 한다.

MBC '왔다, 장보리'에서 어머니 침선장 김인화(김해옥)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교통사고를 고의적으로 내고 심지어 자동차의 탑승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를 잃어버리게 되고 그 아이는 다른 집안에서 장보리(오연서)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다. 세월이 흘러 자신의 딸을 찾게 되지만 이 어머니는 망설인다.

자신이 딸을 받아들일 경우, 자신이 저지른 해악이 세상에 드러날까봐 염려한 때문이었다. 보리가 딸임이 밝혀진 이후에도 김인화는 자신의 과거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악녀 연민정(이유리)와 손을 잡는다. 물론 악녀는 딸을 항상 괴롭혀 왔고 앞으로도 앞길을 고단하게 만들 사람이었다.

우선 이런 캐릭터와 서사 구도는 자식에게 부모는 거부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갈등과 번민,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 한다. 만약 영조가 맹의를 맺지 않았다면, 사도세자의 지위는 없을 수 밖에 없다. 김인화가 없었다면 장보리는 존재자체가 불가능하고, 침선장 집안에 다시 복귀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기반인 부모와 싸움을 벌여야 하는 서사구조는 본래 부쩍 늘었다. 딜레마의 형국은 마치 수용자들이 느끼는 일상의 난처한 형국과 비슷한 정서적 몰입의 효과를 이끌어낸다. 물론 드라마는 주인공의 딜레마가 어떻게 해결될지 궁금증을 지속하게 된다.

이러한 부모의 캐릭터를 통해 우선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자기 욕망에 충실한 점이다. 이는 전통적인 부모 캐릭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들 부모는 자식에게 무조건 희생과 헌신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선 자신의 욕망은 물론 체면과 존재감을 중요시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식에게 위해가 가해질 수 있는 행위도 하게 된다.

이런 캐릭터는 종종 이전에도 등장했지만 절대적인 악녀나 악당이었다. 두 드라마를 비춰봐도 이들은 절대적 이분법적인 선악이 아니라 상대적인 관점의 선악 구도를 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비밀의 문'에서 극대화 되었다. 절대적으로 악한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흔한 욕망이 심지어 아들과 권력 투쟁을 놓고 승부를 벌여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금기와 터부의 위반은 긴장감과 비극을 강화한다. 이에 도덕적 윤리적인 원칙의 위반은 극단적인 패륜적 드라마의 시청률 높이기 수단이기도 했다. 꼭 패륜 드라마가 아니라도 가족 관계 속에서 부모와 자식의 도리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런 드라마들은 통념들을 위반한다.

이를 통해 인식적 파괴와 전복을 기하고 현실적인 설득력을 높이려 한다. 부모와 자식의 도리가 실제 현실에서는 얼마든지 다르게 작동하고 있음을 일깨워 주려는 듯 싶다. 이런 인식적 전복의 드라마는 리얼리티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가 뒷받침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실력파 배우들의 호연으로 화제를 낳기 쉽다.

부모는 자식을 낳고 기르지만, 자식이 부모의 틀을 밟고 나아가 좀 더 성장하기 위해 디뎌야 할 존재이다. 그러나 이런 대중 드라마가 등장하는 이유는 좀더 욕망에 충실한 현대인들의 욕구불만을 대리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현실에서는 모두 그렇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부모들은 자신을 좀 더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며, 자식들은 부모를 더 우선한다.

어쩌면 그런 부모와 자식의 쟁투는 권력이 강하고 돈이 많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판타지월드에 그치거나 그쳐야 하는 것이겠다. 더구나 '비밀의 문'에서 등장하고 있는 영조와 사도세자는 자신들의 욕망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버려야 했기 때문에 서로 파멸적인 관계로 치달아갔는지 모른다.

글/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김헌식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