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가 교장실, 도서실이 교무실된 '공사판' 단원고
<현장>교실 부족 사태에 내부 리모델링 공사 진행
희생자들 기억 위해 재학생과 신입생에 '불편 감수'
'4·16 기억교실' 존치 문제로 논란을 겪고 있는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가 임시방편으로 지난 20일부터 리모델링 공사에 착수했다. 당장 신학기부터 교실부족 사태가 예상되는 상황이지만, 기억교실에 대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단원고 재학생 학부모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어 불가피하게 내부를 개조하는 고육책을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신학기를 닷새 앞둔 26일에도 단원고는 내부 공사가 한창이었다. 여느 공사장에서나 볼 법한 5톤 트럭 두 대가 책걸상을 가득 싣고 운동장에 주차돼있는가 하면, 1층 로비에는 인부들이 소파와 탁자, 사물함, 책걸상 등 널브러진 집기들을 바쁘게 나르고 있었다. 특히 학교 내부는 며칠 뒤 학생들이 사용할 공간이라고는 짐작할 수 없을 만큼 흙과 먼지가 가득 쌓여 있어 그야말로 '난장판'이나 다름없었다.
닷새 후 1학년 신입생들이 12개 교실에서 본격적인 고교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재학생인 2, 3학년 학생들도 각각 12개, 14개 교실에서 새로운 학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 단원고에는 세월호 참사 당시 2학년 학생들이 사용하던 10개 교실이 '기억교실'로 남아있다. 단원고 내 총 40개의 교실 중 10개 교실이 추모의 공간으로 보존되고 있어 신학기 학생들의 학습공간 8개 교실이 부족한 상황이다.
본래 기억교실은 지난달 12일 재학생들의 졸업식과 함께 진행될 예정이었던 명예졸업식까지 유지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유가족들의 거부로 명예졸업식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기억교실은 단원고 내에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그동안 도교육청이 유족 측과 몇 차례 논의했으나, 유족들은 진상규명과 인양 등 상황이 정리되지 않고 있다며 존치를 주장하고 있다.
결국 단원고는 교실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직원들이 활용하는 공간을 최대한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실제 26일에도 교장실과 본교무실을 학생들의 학습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교장실은 학교 밖 컨테이너로, 본교무실은 1층 도서실로 이동하게 됐다.
신학기부터는 이곳 도서실이 교무실과 함께 활용될 예정이다. 실제 이날 도서실에는 수백권의 책이 빼곡하게 차 있는 책꽂이가 한 가운데 세워져 있었고, 그 옆 자투리 공간에 교무실 집기가 들어와 교사들이 해당 공간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일부 교사들은 도서실로 온 교무실의 이삿짐을 정리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자 철근을 자르는 전동기구의 날카롭고 커다란 소음이 귀를 때렸다. 시멘트와 철근이 구석구석에 쌓여있고, 떼어진 문짝과 나무판자는 복도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교실로 활용할 2층의 컴퓨터실과 음악실, 3층의 고사준비실과 에코그린룸(세탁실), 본교무실에서는 교실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그 중 일부 공간은 공사가 완료된 듯 사물함과 에어컨, 책걸상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단원고 관계자는 26일 '데일리안'에 "기억교실이 존치됨에 따라 부족교실이 발생했기 때문에 일단 학생들을 받기 위해서 본교무실과 고사본부실, 교장실, 에코그린룸, 음악실, 컴퓨터실을 일반 교실로 바꾸고 있다"며 "일단 음악실은 시청각실을 사용할 예정이지만, 당분간 컴퓨터 수업은 조금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무래도 (공사가) 급하게 진행하다 보니까 온전한 교실로 만들기가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며 "냄새가 난다거나 미비한 것들로 인해서 민원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단원고 내에는 공사가 한창이었지만 10개 기억교실은 여전히 엄숙한 추모공간으로 유지됐다. 명예 3학년 7반부터 10반까지 4개 기억교실이 있는 2층과 명예 3학년 1반부터 6반까지 6개 기억교실이 있는 3층은 같은 건물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것을 느낄 수 없을 만큼 고요했다.
교실 창문에는 생환을 염원하는 메모지로 가득 차 있었고, 책상에는 유족들의 편지와 꽃, 과자 등 음식도 여러 개 올려져있었다. 기억교실 앞 복도 바닥 양쪽에는 희생자 한명한명의 이름을 적어 놓은 도화지 등 추모품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특히 교실 곳곳에는 '우리의 교실을 지켜주세요', '416 교실을 지켜주세요' 등 기억교실 존치를 바라는 내용이 적힌 조그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416교실을 지키겠습니다', '이 자리를 기억의 장소로 보존해주십시오'라는 스티커와 메모지도 붙었다.
지난 23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과 단원고 재학생·신입생 학부모, 세월호 사고 희생자 유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억교실 존치 문제에 대해 3자 대화를 가졌다. 그러나 이들은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돌아갔다. 현재로서는 입학식 전에 이 같은 협의 테이블이 마련될 가능성도 낮은 상황이다.
앞서 학교 운영위원회 측은 내달 2일 입학식 전까지 기억교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문을 폐쇄해 학생과 교사의 출입을 막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입학식을 전후해 기억교실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본보에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며 "재학생 학부모 측과 유족 측이 입학식 전까지 협의할 수 있도록 논의의 끈을 놓지 않고 소통을 이어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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