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도라'가 현실? 사이버현실일뿐이다
<김헌식의 문화 꼬기>한국형 재난 영화의 새로운 관점
요즘 한국 재난 영화의 특징은 주로 국가 시스템의 모순을 지적하는데 있다. 과거 영화 '괴물'을 시작으로 영화 '해운대', '감기'같은 작품도 그렇지만 올해에 개봉한 '부산행', '터널', 그리고 새롭게 개봉한 '판도라'에 이르기까지 모두 국가정책결정자들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다. 무능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이나 이익만을 생각한다. 재난에 대해서는 무감각할 뿐만 아니라 현실주의를 내세워 사태를 봉합하려하거나 기존의 문제가 있는 조치들을 강행하다가 오히려 부작용을 더 심화 시킨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 국가정책결정자들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것은 그들에 관한 현실적 불신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국가에 관한 기대감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가가 시민의 안전을 위해 최우선으로 정책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혹시 그런 사태가 일어났을 경우 제대로된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경고를 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개봉작 '판도라'도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지진이 일어나면서 문제가 생긴 원자력 발전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중심에 두고 청와대의 무능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형 재난 영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가족코드이다. 할리우드 처럼 가족을 구하는 면이 아니라 감성적인 정서를 자극하는 내용이 많다. 아픔과 행복을 함께 간직한 가족간의 끈끈한 애정과 추억의 공유가 강조되기 쉽다. 대중적 흥행을 위해서 고려해야 할 점은 가족 코드라고 할 때 이 영화에서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재난 상황에서 각 개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개인만이 아니라 가족에게도 치명적인 점은 분명하다. 다른 기존의 영화 가운데 가장 강력하게 가족주의를 내세운 것은 영화 '판도라'일 것이다. 아마도 강력한 신파 정서를 강화한 것은 연말 관객을 의식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가족 대신에 다른 시민과 국가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는 모습을 부각시켜낸다. 이렇게 설정한 이유는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을 시민 개개인이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질타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그만큼 국가정책시스템이 무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겠다. 오죽하면 시민에게 목숨을 걸고 원자로를 막을 자원자를 모집하는 장면을 담아내겠는가 싶다. 개인도 개인이지만 가족을 지키는 것도 스스로 해야할 일이다. 가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주인공이 가족마저 버리고 시민과 국가를 구하려 뛰어든다. 오로지 그 원전에서 근무한 마을 사람들만 자원하니 세상은 정말 이기적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모순이 있다. 영화의 내용은 의사결정자들이 조치를 잘했다면, 지진으로 벌어지는 원전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지만, 정작 조치를 잘 취하지 못해 원전이 폭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진 지대에 있는 원전 시설의 근본적인 위험성을 간과하게 한다. 또한 국가기관의 정책적 역할의 부재를 강조하다보니, 정작 폭발이 일어났을 때 방사능으로 일어나는 참사에 대한 묘사가 덜해졌다.
단지 직접 피폭을 당한 이들의 구토 장면이나 혈액 방출 장면만 반복적으로 등장할 뿐이다. 또한 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어나게 될 참사가 지나치게 원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원전이 파괴되는 지진 강도가 발생했을 경우, 더 위험한 것은 화학단지의 유독성 물질이다. 지난 번 경주 지진이 일어났을 때 울산 지역에서 가스 냄새에 관한 신고가 빗발쳤던 점은 이런 불안의식을 반영한다. 영화는 결국 원전 사고를 해결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희생한 사람들을 비추고 끝난다.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원전 사고 그 이후일 수 있는데 시민의 희생만 이야기를 하는 셈이다. 무능한 국가정책결정자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장면이 최소한 나와야 할 것이며, 원전 사고로 얼마나 치명적인 피해가 생겼는 지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발생해도 막을 수 있다는 역설적인 심리 상태에 있게 되니 참 아이러니 하다. 무엇보다 정말 참사가 일어나면 몇사람만 제외하고 모두 다 이기적인 행동만 할까 의문이다. 그렇게 사람이 이기적일까 의문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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