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회장, 25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
이건희 회장, 문화재-문화계 인재양성에 적극
이건희 삼성 회장이 25일 오전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8세. 이 회장은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한 이후 병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영면에 들었다.
이 회장은 아버지인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뜻을 이어 받아 문화예술지원사업에 큰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추진한 인물이다. 고인은 46세였던 1987년 12월,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회장 취임식에서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으로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상장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삼성은 호암의 의지에 따라 설립 초창기부터 문화의 보급 및 저변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다. 1965년 설립된 삼성문화재단이 대표적인 예다. 삼성문화재단은 호암의 도의문화 앙양 및 사회와 인간정신과의 균형발전,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나눔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전하고 우수한 문화를 널리 알리며 해외와 문화교류를 적극 지원하고 문화예술 인재를 지원하는 등 한국 문화의 저변 확대에 기여해 왔다. 또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분야, 취약 계층, 청소년을 위한 사업을 통해 문화 복지 증진에도 노력해 왔다.
이 회장 역시 “문화적 특성이 강한 나라의 기업은 든든한 부모를 가진 아이와 같다. 기업 활동이 세계화할수록 오히려 문화적 차이와 색깔은 점점 더 중요한 차별화 요소가 된다”면서 “전통 문화의 우수성만 되뇐다고 해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이 정말 ‘한국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 때 문화적인 경쟁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해외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이건희 개혁 10년'(2003)에 따르면 이 회장은 삼성제품이 인정받으려면 한국 제품이 인정받아야 하고, 한국 제품이 인정받으려면 한국이 먼저 인정받아야 한다는 인식으로,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해 힘썼다. 사재를 털어 국보급 유물인 고려불화를 수집하는 집념을 보였고, 1990년대 중반에는 일본 오쿠라 호텔 뒷마당에 나뒹굴고 있던 자선당(조선왕조 왕세자 공부방) 기단을 가져와 문화재관리국에 기증했다.
삼성문화재단은 △미술관 운영 △문화예술 진흥사업 △문화복지 진흥사업 △한국문화 해외 소개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미술관 운영 사업은 1982년 호암미술관, 2004년 삼성미술관 리움(Leeum)을 개관해 전시는 물론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유산을 보전하고 대중에게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 회장은 문화계 인재양성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한국인 중에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예술가가 많은 것은, 그들이 한국의 전통에 세계적인 것을 보탰기 때문”이라며 “문화예술 보급 사업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국격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한다”고도 말했다.
지난 19996년부터 삼성문화재단이 시행하고 있는 멤피스트 제도(문화예술계 인재 유학 및 연수 지원), 악기대여은행 설립 등이 모두 이 회장의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비롯됐다.
지난 2015년 5월부터는 장남이자 후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이 이재용 회장이 맡아온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자리를 이어받았고, 지난 8월에는 이재용 부사장이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그 빈자리를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맡고 있다.
한편, 이 회장의 장례는 삼성전자와 유족들의 결정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