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 안철수 출마, 국민의힘 경선 흥행 '비상'
출마 명분 갖춘 나경원·오세훈에 '시선 고정'
나경원, 2011년에 박원순과 맞섰었지만 분패
오세훈, '결자해지' 여전히 강력한 출마 명분
'대권주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내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국민의힘 내부의 시선이 나경원 전 원내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의 선택에 고정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도 비슷한 정치적 중량감을 갖춘 인사를 내지 않을 경우 안철수 대표에게 끌려가는 현상이 초래될 수 있다. 안 대표가 '결승에 먼저 올라가 있겠다'고 고집하더라도 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선 토너먼트'는 따로 있고, 국민의힘 내부 경선은 '지역예선'으로 격하되면서 국민의 외면을 받을 우려가 생긴다. 따라서 동등한 위치에서 주도권 싸움을 하려면 나 전 원내대표나 오 전 시장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교롭게도 안철수 대표와 나경원 전 원내대표, 오세훈 전 시장, 세 사람은 이번 보궐선거의 원인 제공자인 고 박원순 전 서울특별시장을 매개로 인연이 얽힌 처지다. 이번 선거전의 핵심 키워드인 '결자해지(結者解之)'도 공유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시장직에서 자진사퇴를 하면서 박원순 전 시장이 나설 '판'을 깔아준 것은 일단 오세훈 전 시장이다. 미미했던 박 전 시장이 당선될 수 있도록 키워준 것은 안철수 대표다. 박 전 시장의 당선을 막지 못한 것은 나경원 전 원내대표다.
국민일보가 GH코리아에 의뢰해 그해 9월 3일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박원순 후보의 적합도는 5.0%에 불과했다. 안철수 후보(36.7%)나 나경원 후보(17.3%)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였다. 그러나 안 대표는 그해 9월 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박 전 시장을 만나 '양보'했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후보로 보궐선거에 출격했다. 나 전 원내대표는 분투했으나 10월 26일 투표 결과 46.2% 득표에 그쳐 박 전 시장(53.4%)에 분패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오세훈 전 시장이 판을 깔아주고 안철수 대표가 손 들어주고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당선을 '허용'하면서 서울시민의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된 것"이라며 "'박원순 암흑기'를 초래한데 대해 세 사람이 모두 책임을 분담하고 있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나경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여전히 '무게'
대권 언급은 '배수진' 안철수와의 신경전 해석
"2011년에 안철수가 5% 박원순 45%로 키웠다"
安 책임론 거론…'견제구' 차원으로도 읽혀져
물론 책임의 경중 논란은 있을 수 있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28일 KBS라디오에 나와 "안철수 대표가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5% 후보였던 박원순 후보를 엄청 키워줬다. 45% 후보로 만들어준 것"이라며 "그렇게 돼서 민주당이 9년 동안 서울에서 독주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책임론'을 거론했다. '견제구'의 차원으로도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나 전 원내대표는 이날 라디오에서 "서울시장 출마만을 두고 고민하는 것은 없다"며 "내년 서울시장 선거, 전당대회,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여러 정치 일정의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폭넓게 열어놓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국민의힘 전당대회, 차기 대선 세 가지를 거론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차기 대선을 굳이 거론한 것은 본인도 대권주자의 위상임을 부각하려는 것"이라며 "안철수 대표는 대권 기회를 단념하고 체급을 낮춰 나온 것이고 본인은 원래 체급이라고 하면, 향후 있을 경쟁에서 지고 들어가는 셈이 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데일리안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써치에 의뢰해 올해 추석 직전인 9월 27~28일 차기 정치지도자 적합도를 설문한 결과, 안철수 대표가 7.7%가 나왔으나 나경원 전 원내대표도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정세균 국무총리,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유사한 2.6%의 지지를 얻었다. '잠룡'의 반열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전당대회는 열릴지 안 열릴지도 모르지 않느냐. 최근 움직임도 그렇고,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대권이나 다른 가능성을 거론한 것은 안철수 대표의 배수진(背水陣)에 밀리지 않겠다는 신경전의 차원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보궐선거가 기본적으로 박원순 전 시장의 권력형 성범죄 의혹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으로 치러지는 만큼,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인지도와 선명성에 더해 유력 여성 후보로서의 이점 또한 함께 가져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쿠키뉴스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9~20일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설문한 결과 안철수 대표는 17.4%,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16.3%로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했다. 여론조사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오세훈, 최근까지도 "출마하라" 요구에 시달려
행정경험 바탕 '일머리' 내세울 수 있어 '강점'
안철수에 '결자해지'를 선점당한 것은 아쉬워
'추대'는 난망…출마하려면 스스로 손 들어야
오세훈 전 시장도 범야권 대권주자의 반열이며, '결자해지'로 말하자면 출마 대상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실제로 오 전 시장의 광진구 사무실에는 최근까지도 보수 진영의 여러 인사들이 번갈아가며 찾아와 '결자해지'를 내세우며 1~2시간씩 출마를 강권하는 일이 계속됐다고 한다. 오 전 시장은 "그 때마다 유구무언의 심정이었다"고 밝혔다.
오 전 시장은 '일머리'가 강점이다. 제2야당 대표로 연일 문재인정권에 날을 세워온 안철수 대표나, 지난 한해 내내 정권과 맞서싸운 제1야당 원내대표였던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범야권 단일후보가 된다면 선거전에서는 '정치 후보'의 위상을 갖게 된다.
서울시장으로서 행정 경험이 있는 오 전 시장이 후보가 되면 성격이 달라진다. 아시아투데이가 알앤써치에 의뢰해 지난 6~8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의 가장 중요한 쟁점을 설문한 결과, 부동산 정책이 31.7%로 소속 정당(26.1%)을 앞섰으며 행정 경험이 11.1%로 뒤를 따랐다.
오 전 시장 재임기였던 2006년부터 2011년은 서울 부동산 시세가 가장 안정됐던 시기였다. 정치권 관계자는 "가장 유력한 범야권 후보라는 안철수 대표의 출마선언 이후 언행을 보면, 마치 대선에 나온 것 같아 걱정스러운 측면이 있다"며 "선거전의 양상이 '정치 선거' '심판 선거'가 아닌 '행정 선거' '정책 선거'로 변화하더라도 야권 후보가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앞서 오세훈 전 시장은 지난 10월 22일 '더 좋은 세상으로(마포포럼)' 주제발표 직후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누구를 염두에 두고 얘기했다고 할 것 같아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유일하게 말하고 싶은 조건은 '일머리'"라고 강조했다. 이 '일머리'라는 조건이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본인을 자천(自薦)하는 듯한 묘한 상황이 됐다는 관측이다.
다만 주변의 권유와는 무관하게 오세훈 전 시장은 아직 대선 직행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시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결자해지하는 방법이 서울시장 출마만 있는 게 아니다"며 "대권 준비를 10년을 해왔다"고 내세웠다.
정치권 관계자는 "오세훈 전 시장이 안철수 대표의 출마선언으로 '결자해지'라는 명분을 선점당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에서 후보로 '사실상 추대'해주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도 난망해졌다"며 "원래부터 정치에서 '추대'라는 게 실현가능성이 극도로 희박하긴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추대를) 기대할 수 없어진 것"이라고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