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대 회장, 연임 후 임기 못 마치고 정권 바뀌자 퇴진
중대재해 사고 추가 발생시 퇴진 압박 거세질 듯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12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한 가운데, 20여년간 계속돼온 포스코 회장의 ‘연임 후 중도퇴진’의 흑역사를 끊고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을지 관심이다.
포스코는 이날 서울 역삼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제53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최정우 회장의 연임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이로써 최 회장은 오는 2024년 3월까지 3년 더 포스코를 이끌게 됐다.
그동안 포스코 회장 자리는 정치적 외풍에 시달리며 ‘집권세력의 전리품’으로까지 불려왔다.
초대 박태준 회장이 1968년부터 24년간 장기재임 후 1992년 김영삼 정부와 불화로 퇴진한 이후 2대 황경로 회장은 6개월, 3대 정명식 회장은 1년의 임기로 단명했다.
이후 포스코 회장들은 ‘연임 후 중도퇴진’이라는 같은 운명을 걸었다. 4대 김만제 회장은 김대중 정부 출범 후 사퇴했고, 5대 유상부 회장은 노무현 정부 들어 임기를 못 채우고 내려왔다.
6대 이구택 회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자리를 내놓았고, 7대 정준양 회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사퇴했다.
8대 권오준 회장 역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1년 만에 특별한 이유 없이 자진 사퇴했다. 당시 재계 일각에서는 권 회장이 정권 핵심으로부터 “조기 사퇴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받고 사의를 밝혔다는 의혹이 일었다. 문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수행하는 경제인단에 권 회장이 제외되는 등 포스코가 ‘패싱’ 당하는 모습은 이런 의혹에 무게감을 더했다.
그나마 후임인 9대 최정우 회장은 현 정부와 연관성이 포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논란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다.
최 회장은 포스코가 회장 선임 과정에서 더 이상 정치권의 외풍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구성한 ‘CEO 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첫 임기를 시작했다.
그는 이번 연임 과정에서도 CEO 후보추천위의 면밀한 심사를 거쳤고, 이사회 승인을 거쳐 이번 주총에서 확정됐다.
문제는 최 회장의 연임이 확정되기 이전 정치권과 진보성향 시민단체, 노동계 등에서 최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거나 자친 사퇴를 압박하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는 것이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15일 중대재해 사고의 책임을 언급하며 “포스코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제대로 실행해 달라”고 요구한 데 이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달 22일 산업재해 청문회를 열고 최 회장을 불러 근로자 사망사고 책임을 추궁했다.
이달 3일에는 노웅래·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강은미 정의당 의원 주최로 ‘최정우 회장 3년, 포스코가 위험하다’란 제목의 토론회를 열고 최 회장을 비난하며 그의 사퇴를 압박했다.
지난 9일에는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금속노조가 공동으로 최 회장을 향한 공세에 나섰다. 이번에는 책임경영 차원에서 경영진이 단행한 주식 매입을 빌미로 삼았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권오준 회장이 물러났음에도 불구, 후임으로 정권에 맞는 인물을 밀어 넣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 재차 최 회장을 끌어내리고 기어코 포스코 회장 자리를 전리품으로 활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권오준 회장의 후임 결정 과정에서 당시 CEO 후보추천위가 정권의 의중을 반영하지 않은 데 대한 여권과 진보 진영의 불만이 중대재해 사고 발생 이슈를 빌미로 터져 나온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번 주총에서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이낙연 대표의 의중과는 달리) CEO 선임 안건에 대해 ‘중립’ 결정을 내리면서 일단 최 회장은 표결을 거치지 않고 연임에 성공하게 됐다.
하지만 과거 ‘연임 후 중도퇴임’ 사례가 줄을 이었던 것처럼 여권이 ‘우리 사람 밀어 넣기’ 의지를 버리지 않는다면 최 회장은 남은 임기 내내 자리를 위협받을 수도 있다.
특히 그동안 최 회장에 대한 공격의 빌미가 됐던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앞으로 추가로 발생할 경우 앞으로의 임기를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데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날 주총에서 최 회장은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뜻하는 ESG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앞으로 ESG 경영에 미래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안전 문제와 관련해서는 비용이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무재해 작업장’ 구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포스코는 이날 주총에서 정관 변경을 통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ESG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다. 안전사고 이슈 및 탄소중립 등 환경 관련 어젠다를 다루는 조직으로, 앞으로 사업장 안전확보 노력을 감시하는 역할도 할 예정이다.
포스코는 향후 3년간 1조원의 안전투자를 통해 노후·부식 대형 배관, 크레인, 컨베이어 벨트 등 대형설비를 전면 신예화하고 불안전 시설과 현장을 즉시 개선하는 등 위험요인을 철저히 제거해나갈 계획이다. 협력사를 포함한 사업장 모든 작업자를 대상으로 안전교육 프로그램도 강화해나가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연임이 확정된 민간기업의 CEO를 곧바로 끌어내리는 일은 정권에도 부담이 될 것”이라며 “다만 책임 소재를 떠나 또 다시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재차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만큼 사업장 안전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