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검찰’ ‘국민의 검찰’ 강조한 문재인 김오수
말은 옳지만 법치 대들보 법무부·검찰청 윗자리에
피고인 피의자가 이렇게 많아서야
12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자녀 유학 생활비 등 명목으로 가족이 기업체 회장 한테서 640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던 중이었다. 낭패 속에 번민하던 그는 절망의 벼랑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도덕, 신뢰, 원칙에 더해 반칙과 특권 타파를 부르짖던 그였다. 성격상, 속된 말로 쪽 팔림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노무현의 불행은 ‘뇌물수수 혐의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돌출 사망 사건’이다. 닷새 동안 연인원 500만명이 참여한 장례는 전국적 추모 열기 속에 치러졌다. 충격도 컸거니와 죽음에는 특별히 관대한 국민성과 언론의 상업주의 감성 보도가 더해진 결과였다. 장례식 무한 보도 경쟁은 한 마디로 저널리즘 탈선이었다. “비리 혐의로 수사 받던 사람이 자살 후 성자(聖者)가 되는 나라가 있나”라고 썼던 논객은 변태 취급을 당했다.
친족과 후원자를 포함해 패밀리가 줄줄이 구속된 데 이어, 조사를 받거나 수사가 예정된 상황에서 노무현은 지지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도덕도 민주주의도 정의도 말할 자격을 잃었다. 나를 버려 달라.” 앞서 퇴임에 임박해서는 ‘노사모 폐족(廢族) 선언’을 했었다. 노사모에서 이어진 이른바 노빠들 중 상당수는 ‘촛불 정부’에서 대깨문으로 재탄생했다.
사후(死後)의 노무현 명성에 편승한 정치가 한때 관(棺)장사로 비판받은 것은 그들과 무관하지 않다. 실패했지만 노무현이 꿈꿨던 ‘모든 사람이 골고루 잘 사는 세상’은 진영을 초월하는 명제다. 최근 민주당이 발표한 자체 의인화 이미지 조사결과(엠브레인 퍼블릭)는 ‘거짓말, 성추문, 독단, 내로남불, 무능한 40-50대 중년 남자’였다. 이것이 ‘문재인 4년 보유국’ 현주소다.
잡음 속에 결국 김오수 검찰총장이 취임했다. 야당 동의 없이 임명을 강행한 촛불 정부 33번 째 장관급 인사(人事)로 기록됐다. 김오수는 ‘국민 중심의 검찰’을 강조하며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에게 ‘공정한 검찰’을 당부했다. “검찰이 바로 서면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도 했다.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 수사하라는 주문은 물론 없었다. ‘국민의 검찰’ ‘공정한 검찰’은 윤석열 총장 때도 있었지만 윤석열은 쫓겨났다.
검찰의 주요 범죄 수사는 장관이나 총장 승인을 받게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조직 개편안이 준비되고 있다. 정권 수사는 물 건너갔다는 탄식이 나오는 배경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대대적 인사 예고가 검찰 내부의 ‘조직개편 우려’와 어떻게 조합할 지,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권력이 불편해 할 수사를 지레 챙기면 친정부 성향의 검사를 요소요소에 포진시키기 마련이다. 이미 권력 수사를 지휘했던 고검장, 지검장 등의 줄사표는 시작됐다.
대통령과 검찰총장은 다시 공정을 말했다. 촛불 정부 출범 이래 박상기 조국 추미애 박범계로 이어진 법무부 장관과, 휘하의 김오수 이성윤 정진웅 등 달나라 실세 검사들이 얼마나 공정한지는 익히 봐 왔다. 법치의 대들보인 법무부와 검찰에 재판 피고인과 수사 피의자들이 지금처럼 많았던 적도 없다. 더 반듯하고 유능한 인물이 왜 없겠는가.
김오수는 김학의 불법출금사건 피의자다. ‘윤석열 식물 총장’ 때는 법무부 차관이었다. 한때 전관예우 근절 추진업무를 주도했던 그는 2조원 사기 사건의 라임 옵티머스 측 변호와 관련해 전관예우 논란의 중심에도 섰다. 로펌에서 8개월 일하며 자문료 2억여원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그 일을 계기로 국민들 애환을 경험했다”고 그는 말했다.
노무현 타계 한 달 뒤 서울지검 김오수 당시 특수1부장은 ‘박연차 게이트와 노무현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수사팀의 의지와 용기에 진심으로 위로와 격려,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는 글을 같은 날 검찰 내부망(網)에 올렸다. 노무현 수사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으로 썼을 것이다. 선택적 적폐 청산, 문재인은 ‘노무현 칼잡이’를 발탁한 셈이다.
검찰개혁이 시대적 과제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 배가 산으로 올라간 것은 비리 혐의 수사로 권력의 심기를 거스른 윤석열을 괘씸죄로 찍어낸 것과 맞물렸다. 내 탓은 없이 윤석열 탓하며 수사를 뭉개려 했던 결과다. 권력 스스로 겸손하고 공정하면 훗날이 찝찝할 리 없다. 퇴임 후 안전장치 같은 것이 왜 필요하겠는가.
촛불정권의 비리 혐의는 무겁다. 울산시장선거 관련 하명수사,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라임 옵티머스 권력형 금융사기, 드루킹 여론조작, 부동산 투기 등 하나 같이 초대형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서원 씨와 뜬금없이 묶여 경제공동체로, 그리고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뇌물수수로 엮여 탄핵과 함께 형사처벌 받은 것은 차원이 다르다.
김진욱 공수처-김오수 검찰 라인업은 완성했지만 권력의 ‘노무현 트라우마’는 쉽게 떠나갈 것 같지 않다. 타락한 권력의 책임은 소멸하지 않는다. 검찰 무력화를 꿈꾸며 하산길에 바벨탑 쌓는 일은 더 없기 바란다.
글/한석동 전 국민일보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