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으로 시작했던 재난지원금
지급 근거·기준 명확하지 않아
합리적 방안 내놓겠다던 정부
1년 지나도록 같은 논란 반복
정부가 내놓은 국민 상생지원금(재난지원금) 지급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당정협의 끝에 가구소득 하위 80%를 기준으로 결정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지급 대상 확대를 시도하면서 정책 혼선과 국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재난지원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지 못해 매번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재난지원금을 편성·지급했지만 매번 지급 대상과 기준 등을 놓고 갈등과 번복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예산 심의 권한을 쥔 정치권 입김에 오락가락했다.
시작부터 정치권에 흔들린 재난지원금
지난해 1차 긴급재난지원금 경우 애초에는 가구소득 하위 70%를 기준으로 4인가구에 1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재원 마련을 위해 7조6000억원 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마쳤다.
당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부 국가의 경우 영업장 폐쇄, 강제 이동제한 등 경제 서든 스톱(sudden stop)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대규모 긴급부양책, 재난수당 지원을 병행하고 있다”며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실제 사용처가 없는 상태에서 돈을 푸는 엇박자 정책이 될 가능성을 지적한다”며 재난지원금 지급 신중론을 펼쳤다.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가닥이 잡히는 동안에도 홍 부총리는 선별 지급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처음에는 하위 50% 지급을 주장했다. 이 때문에 당정회의에서 오랜 시간 말다툼이 이어질 정도로 여당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이후 70% 지급으로 한걸음 물러서면서 선별 지원을 고집했지만 결국 이마저 통하지 않았다.
당시 다수의 경제 전문가들이 선별 지급에 힘을 실었다. 재난지원금에 대한 연구가 사실상 전혀 없다 보니 효과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가계 상황도 어려운데 긴급재난지원금을 왜 반대하냐는 목소리가 높은데 사실 실업자나 저소득층에겐 안전망 역할을 하는 기존 복지제도가 존재한다”며 “이들의 고충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전과 이후가 같으므로 추가 지원할 명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최 전 장관은 “우리가 걱정할 대상은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다가 이번 위기로 저소득 계층으로 잠시 전환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라며 “무차별적으로 지원금을 지급해선 안 되고 꼭 필요한 곳을 선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1차 긴급재난지원금은 정치권 뜻대로 됐다.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기로 했고 추경안은 12조2000억원으로 늘었다. 이 과정에서 기재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대한 기판이 거셌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주무 부처인 기재부 의견은 사실상 ‘패싱(passing·배제)’ 당했다는 지적이다.
한 경제학자는 당시 상황을 놓고 “재정을 관리하는 부총리 입장에서는 당연히 최소 지출로 최대 효과를 거두는 수준을 생각했을 것이고 50% 이상 계층에게 지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라며 “그렇다면 전 국민 지급의 불필요성을 대외적으로 역설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런 노력은 잘 보이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정치권 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이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1차와 달리 2차 긴급재난지원금은 선별 지원됐다. 코로나19 피해가 컸던 소상공인과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을 중심으로 지원이 이뤄졌다. 음식점 등 영업시간 제한을 받은 집합제한업종에는 150만원, PC방 등 집합금지업종에는 200만원을 지원했다. 소득이 감소한 특수고용노동자와 프리랜서에게도 50~150만원까지 차등 지급했다.
3차와 4차 재난지원금도 비슷하다. 지원 금액은 변동이 있었지만 직접 피해를 본 계층을 상대로 지원하는 큰 틀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급 범위에 대한 논란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물론 유흥주점과 콜라텍 등을 지원하는 내용이나 노점상을 포함하는 방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지원 금액이 매번 달라지는 부분도 문제가 됐다. 명확한 기준 아래 지원 금액을 산정하지 않아 협의 과정에서 늘었다 줄었다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다섯 차례 경험하고도 여전히 갈피 못 잡아
지난 4차례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을 복기해보면 논란이 되는 요소는 결국 명분과 기준이다. 특히 1차 때 지급 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었기에 논쟁이 치열했다. 선거를 앞둔 여야가 힘으로 밀어붙인 건 사실이지만 기재부가 명확한 명분과 기준 제시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재 5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놓고 논란이 반복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1차 때와 똑같은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당정협의 끝에 소득 하위 80% 지급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지만 여당이 이를 다시 뒤집는 모양새다. 만약 소득 하위 80% 지급안이 틀어질 경우 결과적으로 기재부는 이번 재난지원금 지급에서도 ‘패싱’ 당하는 꼴이 된다.
전문가들은 기재부가 선별 지급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더욱 설득력 있는 근거를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지급 기준을 결정하는 지표 또한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번에도 건강보험료를 바탕으로 하위 80% 기준을 추려낼 예정이다. 문제는 건보료 경우 근로소득을 중심으로 산정하다 보니 자산 소득은 반영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재산이 많지만 근로소득이 적은 경우 하위 80%에 포함될 수 있다.
반대로 재산은 적은 데 소득이 80% 이상인 경우 지원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소득 산정 시점도 100인 이하 사업장 경우 2019년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경제가 가장 어려웠던 지난해 상황은 반영이 어렵다.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보료로는 정확한 선별이 어렵다 보니 지난 1차 재난지원금 힘겨루기 당시 기재부가 밀릴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도 있다.
다른 방법으로는 소득인정액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소득인정액 방식은 현재 기초연금 수혜 대상 선정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재산소득, 공적이전소득 등 모든 소득을 포함한다. 금융 재산과 자동차, 각종 회원권도 계산에 넣는다.
소득인정액 단점은 금융재산 경우 사전 동의가 필요하고 전체 금융 기관을 대상으로 조회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최소 수개월 이상 작업이 필요하다. ‘속도전’이 필요한 재난지원금에는 치명적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당시 기재부는 두 가지 시나리오의 장단점을 비교해 합리적 보완 수단을 찾겠다고 했다. 그 후 1년이 지났지만 정부는 아직 합리적 보완 수단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처음 시도하는 카드 캐시백 제도도 엉성하긴 마찬가지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온라인 사용 등을 제외하다 보니 정작 카드를 소비할 곳이 없다. 재난지원금 온라인 쇼핑 사용 제한도 마찬가지다. 소상공인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고육책이라지만 이대로라면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건보료 외에는 정부가 당장 활용할 기준이 없는 게 사실인데 작년 연말 소득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올해 수입 감소가 반영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라며 “자영업자 중에 소득이 급감한 분들이 포함되지 않을 수 있고 하위 70%를 자를 때 고액자산가를 어떻게 배제할지 구체적인 기준은 발표하지 않고 있어 일부 국민들도 형평성에 불만이 있어 당분간 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 민간경제연구원 관계자는 “1차 때야 처음이니 이해한다지만 5차 재난지원금까지 지나오면서 매번 같은 논란이 반복되는 것은 정부의 준비 부족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며 “재난지원금 사용처 제한도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앞으로 6차 재난지원금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정부는 그동안의 지원금 효과를 정밀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며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정부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야 불필요한 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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