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다 보니 센 역할만 들어와…기훈,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라 좋았다”
“처음엔 내 연기 보고 웃어…달고나 게임 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제대로 ‘오징어’가 됐다”고 말할 만큼 배우 이정재는 ‘오징어 게임’에서 많은 것을 내려놨다.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정재가 용감하게 망가진 끝에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지난달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83개국 모두에서 한 번씩 TV 프로그램 부문 1위를 찍었다.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극에 등장하는 게임을 체험하고, 패러디하는 영상들이 쏟아지는 등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이정재 또한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반응에 얼떨떨하면서도 넷플릭스의 위력을 새삼 느꼈다.
“‘넷플릭스의 힘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걸 느꼈다. 이번을 통해 넷플릭스가 서비스되지 않는 나라가 없을 정도로, 많은 국가에서 스트리밍 되고 있다는 걸 보고 놀랐다. 반응들, 시시각각 올라오는 반응들을 잘 규합해 홍보도 함께 해나가는 것을 보고 많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남다른 세트장 규모에도 감탄을 표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각 게임이 어떻게 구현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는 이정재는 상상 그 이상의 세트장을 보고 크게 만족했다. 많은 이들의 노력이 묻어난 만큼 그 효과에도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각 게임별 스케일감이 중요했다. 어떤 게임은 큰 공터에서 456명이 함께 뛰면서 하지 않나.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을 받은 줄다리기부터 징검다리까지. 이 정도의 스케일로 구현이 될지는 시나리오를 보면서도 몰랐다. 세트장을 보니 굉장히 치밀하게 오래전부터 준비를 했다는 게 느껴졌다. 매번 촬영에 들어가기 전엔 사진을 찍기 바빴고, ‘이번에는 어떤 세트장이 어떻게 구현이 됐을까’라며 늘 궁금해하며 촬영장에 갔다.”
‘오징어 게임’을 통해 시도한 이정재의 연기 변신도 이목을 끄는 요소였다. 이정재는 극 중에서 다니던 회사에서 구조조정된 이후 사업에 실패하고 이혼까지 하게 된, 극한 상황에 내몰린 기훈을 연기했다. 목숨을 건 게임에 참여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인물. 이정재는 덥수룩한 헤어스타일과 남루한 옷차림으로 캐릭터의 현실성을 제대로 살렸다.
“보신 분들이 대체 왜 그렇게 모자는 대충 쓰고, 옷은 저렇게 입었냐고 말들이 많았다. 영화 ‘신세계’ 때부터 함께한 의상 실장님과 이번에도 함께 했는데, 그분께서도 고민을 많이 하신 것 같다. 진짜 쌍문동의 반지하에 사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고 생각을 많이 하셨다. 처음에 의상을 입으러 가니 사이즈도 안 맞고, 이상하게 매치한 콘셉트를 잡아주셨다.”
영화 ‘신세계’의 언더커버 경찰 이자성을 비롯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무자비한 복수를 감행하는 악역 레이, ‘신과 함께’ 시리즈의 염라대왕, ‘암살’의 친일파 염석진 등 그간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해 온 이정재는 ‘오징어 게임’으로 새로운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다소 지질한 인물이긴 하지만, 다른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
“나이를 먹다 보니 악역이나 센 역할만 들어오더라. 근래 했었던 작품들 대부분이 긴장감을 크게 불러일으켜야만 하는 캐릭터였다. 어떤 연기를 보여드려야 할까 고민하던 때에 황동혁 감독님이 기훈이라는 캐릭터를 제안 주셨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 역할이라 좋았다.”
새로운 표현들을 해볼 수 있어 좋았지만, 생각보다 수위가 강해 당황스러운 장면도 있었다. 그럼에도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성을 유지하며 현실감을 높이는 기훈의 감정을 균형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다는 이정재다.
“처음에 보고선 ‘내가 저렇게 연기했나’라며 한참 웃었다. 평소 잘 쓰지 않는 표정도 나왔고, 평소 잘 안 하던 호흡에 의한 동작들도 나왔다. 달고나 뽑기 게임에서 연기를 할 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다. 근데 목숨을 걸고 하는 거니까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시간을 거듭해 나가고, 다른 캐릭터들을 만나면서 겪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보여주려고 하면서도 극한에서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오가며 연기하려 노력했다.”
망가진 모습이 아쉽지 않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이정재는 오히려 ‘망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러 망가져서 웃기려고 하기보다는 기훈을 현실에 살아있는 인물로 그리려 노력했고, 이에 많은 이들의 공감과 몰입을 끌어낼 수 있었다.
“연기자니까 이런 역할도 하고, 저런 역할도 하는 것이다. 성기훈이라는 캐릭터를 잘 해내기 위해 표현한 것뿐이다. (현실과 닿아있는 인물인) 기훈을 연기하기 위해 촬영 전 밤에 많이 걷기도 하고,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캐릭터를 준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