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연극인들의 업적 기리기 위해 기획
하반기 7회 올릴 예정
연극계 원로들이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네 편의 작품으로 얼어붙은 연극계에 다시 훈풍을 불어넣으려 한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한 공공그라운드에서는 '제6회 늘푸른 연극제-그래도 봄' 기자간담회가 진행돼 주관사 이강선 대표, 송훈상, 주호성, 방태수 연출, 배우 정욱, 유진규, 장경민 제작 감독이 참석했다. 손숙은 스케줄 상 불참했다.
'늘푸른 연극제'는 매년 원로 연극인들의 뜨거운 열연을 무대 위에 오롯이 담아낸 대한민국 대표 연극제다. 올해 여섯 번째 시즌을 맞이해 '그래도, 봄'이라는 부제로 돌아왔다. 이번 연극제는 '물리학자들', '몽땅 털어놉시다', '건널목 삽화', '메리 크리스마스, 엄마!'로 구성됐다.
'늘푸른 연극제' 주관사 이강선 대표는 "6회까지 오면서 많은 작품을 올렸고, 지속되길 바라고 있다. 이번에도 원로 선생님들이 모여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성공적으로 축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많은 부탁드리겠다"라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몽땅 털어놉시다’는 50여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니며 충북 연극계를 이끌어온 극단 시민극장이 얼마 전 별세한 장남수 연출을 기리기 위한 추모 공연으로, 배우이자 연출가로 활약 중인 주호성이 연출을, 故장남수 연출의 아들 장경남이 제작감독을 맡았다.
아들 봉구와 아버지 영팔이 떠난 여행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인해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과 진실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은 윤문식, 양재성, 안병경, 정종준, 최일훈 등 12명의 원로 연극인들이 무대에 오른다.
주호성 연출은 "극단 시민극장은 청주를 중심으로 52년이 됐다. 이 극단을 창단하고 운영해온 친구가 지난해 작고했다. 그래서 이 친구를 위해 연극을 만들게 됐다. 친구의 추모공연을 마련하다보니, 그 친구가 생전에 좋아했던 노래와 배우들을 모아서 열심이 연출했다"라고 밝혔다.
장경민 제작 감독은 "극단 50주년 때 기념 공연을 준비했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 극단에서 가장 의미있는 작품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몽땅 털어놉시다'가 청주에서 1만명에 관객을 동원하는 등 좋은 결과와 의미를 가져다줬다"고 말했다.
장경민 제작감독은 "아들인 제가 연출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가장 사이가 좋았던 친구분에게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 당초 출연해주기로 한 배우보다 더 많은 분들이 참여를 해주셨다. 많은 관심 가져달라"고 전했다.
'건널목 삽화'는 마임과 사이코드라마를 한국에 소개하고 최초로 극단 전용 소극장을 만들어 큰 화제를 불러모은 연극이다. 방태수 연출과 마임계 대가 유진규, 기주봉 배우가 출연한다. 기차 건널목에서 두 사내가 털어놓는 그늘진 과거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작품은 1972년 단막을 2021년 장막으로 각색했다.
방태수 연출은 "'건널목 삽화'는 우리 극단과 함께 한 작품이다. 당시 기성세대 연극 외 다른 연극들은 소개가 되지 않았고 우리가 소극장 전용 연극을 만들어, 파격적인 시도를 해보려한 연극이다"라고 소개했다.
방 연출은 "현재는 소극장, 대극장이 연극을 구별하지 않고 색깔이 확고하게 잘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장르가 나위어져 있던 것이 포괄적인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져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이번에 공연을 하게 된 건 50년 전 소극장 연극은 어땠는지, 이후의 소극장에서 시도된 실험적인 연출은 무엇이었는지, 옛날의 흔적을 보고, 이 작품에 새로운 형태로 보여드리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유진규는 데뷔작이었던 '건널목 삽화'에 50년 만에 다시 출연한다. 방 연출은 "유진규는 대사가 있는 연극을 하다 이후에 마임으로 방향을 바꾼 분이다. 오랜 만에 말 없는 연극만 하신 분인데 오랜만에 대사가 있는 연극에 참여하게 됐다는 의미도 있다"라고 말했다.
유진규는 "50년전 스무살 때 했던 역할을 일흔이 된 현재 다시 하게 됐다. 저와 연출 선생님은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나가야하나 고심을 많이 했다. 다행히 작품이 사실주의가 아니라 인물의 나이가 환경이 크게 중요하게 작용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연기와 연출을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변화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연습하고 있다"라고 남다른 소회를 전했다.
'물리학자들'은 스위스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희곡 '물리학자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냉전시대 속 천재 물리학자와 그에게 정보를 캐내기 위해 잠입한 두 명의 물리학자의 신경전을 그려내, 과학이 발달한 사회 속에서 가치 중립과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극 속 인물 간의 대립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극단 춘추의 송훈상 연출은 "극단의 45년의 역사를 가지고 새롭게 출발하고자 하는 의도로 '물리학자'를 선택했다"라고 극을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정욱은 '늘푸른 연극제'를 통해 기대하는 바와 함께 우려되는 지점도 털어놨다. 그는 "평생 연극을 한 사람으로 좋은 기회를 주셨는데 체력이 쇠해 기량이 떨어져 연극의 기준을 낮추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무거운 마음으로, 대단히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독일의 해롤드 뮐러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메리 크리스마스, 엄마!'(원제: 고요한밤)는 배우 손숙이 출연한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기대에 부푼 어머니와, 다른 목적을 지닌 채로 방문한 아들의 만남을 통해 인간의 연민과 무관심, 자비와 잔인함, 이기심과 사랑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현대 사회 속 소외되는 계층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제6회 늘푸른 연극제'는 코로나19 장기화와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 확산으로 연극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 선보이게 됐다. 주호성 연출은 "어느 분야든 걱정도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어둡고 침침한 시절에 관객에게 충분한 웃음을 드릴 수 있는 마음 밝은 연극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의 문화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오히려 더 환하게 웃고는 하지 않나. 그런걸 잘 살려내 재미있는 연극을 보여드리겠다"라고 강조했다.
당초 지난해 막을 올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때문에 미뤄진 바 있다. 하반기에는 계획대로 '제7회 늘푸른 연극제'가 개최된다. 이강산 대표는 "또 다른 선생님들과 또 다른 작품으로 올해 한 번 더 찾아뵐 것 같다. 연극제 자체가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면서 관심을 당부했다.
한편 '물리학자들'은 17일부터 20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몽딸 털어놉시다'는 18일부터 20일 JTN 아트홀 1관, '건널목 삽화'는 23일부터 27일까지 씨어터 쿰, '메리 크리스마스, 엄마!'는 24일부터 27일까지 JTN 아트홀 1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