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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히든캐스트(80)] 박규연 “서툰 감정 표현? 무대에선 날아다니죠”


입력 2022.03.26 13:46 수정 2022.03.28 14:51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지킬앤하이드'서 앙상블로 열연

5월 8일까지 샤롯데씨어터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오디컴퍼니

뮤지컬 배우 박규연은 평소 감정 표현에 서툴고, 낯을 심하게 가리는 성격이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감정을 터트리는 것이 바로 무대다. 그는 무대 위에 선 자신을 ‘날아다닌다’고 표현한다. 무대에서 온전히 감정을 드러내면 낼수록 배우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높아진다.


현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서 박규연은 런던의 하류시민, 레드렛의 쇼걸, 결혼식 하객 등 배역 이름은 없지만 다양한 모습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어떤 역할을 맡아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면서 오늘도 그는 무대에서 ‘날아다니’고 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춤을 추거나 노래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냥 혼자 방에서요.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발표회를 하면 합창이나 율동을 할 때 항상 솔로 파트나 중앙에 세워주시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굉장히 부끄럼이 많은 성격이라 먼저 나서서 장기자랑에 나간다거나 오디션을 보게 해달라고 하진 않았어요. 그냥 취미로만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16살부터 갑자기 노래가 하고 싶더라고요. 그 후에 예고에 진학해 실용음악보컬을 전공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먼저 나서거나 남들에게 어필하는 성격이 아닌데 제 주위 친구들은 다 가수나 아이돌을 향해가는 걸 보고 ‘카메라 앞 말고 그냥 노래만 하고싶다’라고 생각하던 차에 카메라가 아닌 곳에서도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곳이 무대이고, 그게 뮤지컬이라는 걸 알고 꿈을 키웠어요. 그러면서 사람들 앞에서 왠지 노래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도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된 것 같아요.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확신이 생긴 이후부터, 실제 뮤지컬 무대에 올랐을 때까지의 준비 과정은 어땠나요?


뮤지컬 전공으로 전과를 하고 바로 그전과는 달리 엄청 난 연습량으로 매일 막차시간까지 수업을 받고 연습했습니다. 전공을 바꾼 그 해 운이 좋게도 외부 작품에 출연할 기회가 왔습니다. 상당히 빨리 왔었죠. 당시 어린 나이에 활동을 시작해서인지 제 자신이 굉장히 잘하는 줄 착각했는데 오히려 대학생이 되고 난 후에 작품을 하지 못해서 좀 힘들어 했던 것 같아요.


오디션을 계속 떨어지고 다시 한 번 방황하면서 학교생활도 힘들어서 자퇴를 결심하기도 했고요. ‘아 학교생활도 오디션도 되면 하고, 아님 말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자. 당연히 많이 떨어져야 실력도 늘고 여유가 생기겠지’라고 마음을 편하게 먹으니까 오히려 오디션에 붙더라고요? 물론 지치고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나이의 꿈이 있는 청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힘든 과정인 것 같아요. 되돌아간다면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성인이 된 이후 ‘드라큘라’(2016)가 첫 무대였죠.


네, 그 전엔 연극배우협회에서 다양한 무대에 올랐었고, 대학에 집중하고 성인 되고 나서의 첫 라이센스 작품이 ‘드라큘라’였습니다. 제가 한창 대학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고 ‘난 무대를 해야 하는데 왜 이 콘크리트 건물에 갇혀 있는거지’하고 빨리 나오고 싶었을 시점이었어요.


‘드라큘라’ 오디션이 원래 3차까지 있다는 오디션 공고가 있었는데 2차 오디션을 본 날 바로 합격 연락이 왔었습니다. 전화를 받고는 굉장히 담담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콩닥콩닥 신이 났었던 기억이 있네요. 하하. ‘그래 내가 하지 누가 하나 당연히 뽑힐 사람이 뽑힌 거다’라는 생각이었어요. 티는 안냈지만 자존감이 한참 높았던 것 같아요. 대극장엔 많이 올라봤지만 세종문화회관처럼 객석이 많은 곳은 처음이기도 했고요. 그렇게 넓은 객석이 가득차고 그렇게 큰 박수와 함성소리는 처음 들어봐서 조금 신기했던 것 같아요.


-뮤지컬 배우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있다면?


저는 사실 감정을 많이 드러내고 실력을 뽐내고 싶어 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INFP의 완전체입니다. 꽁꽁 숨기고 낯을 가리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는 날아다닙니다. 떨지도 않아요! 그렇게 무대에서 온전히 제 감정과 몸과 마음이 즐겁고 제가 평소에 할 수 없던 직업, 캐릭터 등을 표현할 때 정말 하길 잘했다고 느낍니다.


-데뷔 당시와 지금, 가장 달라진 점은?


아무래도 어릴 때에 비해서 몸에 힘 빼는 법도 알게 되고 여유가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힘을 팍팍 주고 세게 파워풀하게 하면 잘하는 줄 알고 무리를 해서라도 무대에 임했는데 오히려 과한 텐션이 정말 몸에 텐션을 잡아버리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또 어릴 때는 저의 것만 열심히 했다면 나이가 들수록 내 것만이 아닌 전체적인 그림을 보며 돌발 상황에 있어서 여유롭게 대처하는 넓은 눈도 생겼죠.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면서 슬럼프는 없었나요?


사실 시작하는 순간부터가 슬럼프였죠. 자존감도 낮아지고 나이가 들고 경력이 많아지는데도 슬럼프는 계속 심해지더라고요. 저는 항상 겸손해야 하고 자기 객관화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럴수록 힘들었어요. 제 자신의 위치를 알고 스스로를 깎아 내리는 게 너무 힘든 일이더라고요. 사실 저의 특별한 슬럼프 극복 방법은 없고 그냥 다르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난 잘하고 있다. 축복받았다’라고 스스로 다독이는 거죠. 매일매일 매시간 매분 달라집니다. 슬럼프 없는 배우가 있을까요? 슬럼프가 와서 고민을 해보고 이겨내는 게 배우를 더 강하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디컴퍼니

-현재는 ‘지킬앤하이드’에 출연 중인데요.


오디션 공고가 올라오고 나서부터 오디션 일정 내내 제가 부산에서 ‘위키드’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한 달 넘게 부산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죠. 부산에서 연습실을 알아보고 연습하고 영상을 찍어서 보냈어요. 쉬는 날 서울에 올라가서 2차, 3차 대면 오디션을 봐야 했는데 코로나 상황이 심해지면서 영상 오디션으로 대체 했죠. 부산숙소와 극장에서 오디션 기간 내내 연습하고 준비해서 영상을 찍어서 올리는 게 상당히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부산 광안리에서 브런치를 먹고 있었는데 전화를 받았습니다. 피디님과 즐겁게 통화를 하고 주변에 또 합격한 사람들의 소식도 들려왔는데 이미 친분이 있는 배우들이 너무 많아서 연습이 너무 기대되고 신났어요.


-박규연 배우가 생각하는 ‘지킬앤하이드’는 어떤 작품인가요?


길게 만할 필요 없이 ‘웰메이드 작품’입니다. 작품성이 높아요. 관객의 입장에서 제가 봤을 때 또 제주변의 관객분들 모두 극찬을 하는 작품이에요.


-작품에서 어떤 역할들을 맡고 계시나요.


런던의 하류시민, 레드렛의 쇼걸, 결혼식 하객 등을 맡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하류층시민 연기할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파워풀하고 에너지가 넘쳐야 하며 그만큼 야성적이며 드센 모습의 세상이 불만이 많은 시민을 연기합니다. 제 성격상 실제로는 그렇게 에너지 넘치게 온갖 불만을 토해내는 일이 없잖아요?


-앙상블 배우로서 작품에 참여하면서 고충이 있나요?


아무래도 모든 배우들이 컨디션 관리라고 하지 않을까 싶어요. 체력 관리가 정말 힘들어요. 관리를 잘하는 편인데도 피로가 누적되고 부상이 생기기도 하고 떨어지는 컨디션을 끌어올리기가 버거울 때가 있어요. 장기간의 공연인 만큼 컨디션 관리 겸 부상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다리에 테이핑과 보호대를 하고 공연을 합니다.


또한 저 같은 경우 하이소프라노 담당인데 하이소프라노가 저 혼자여서 늘 마음을 졸이며 더욱 관리에 힘쓰고 있습니다. 다 같이 ‘으쌰으쌰’하고 건강식품도 나눠먹으며 서로 마사지해주고 테이핑 해주면서 힘을 낼 때 저희 팀원들 너무 귀여운 것 같아요. 하하.


-이번 ‘지킬앤하이드’ 아홉 번째 시즌은 1차와 2차 라인업으로 나뉘어 장기공연으로 선보이고 있는데요. 1차 공연과 지금 2차 공연의 차이점이라면?


1차 공연을 보고 2차 공연도 본 지인이 ‘원캐스트들이 정말 날아다니더라’라고 말해주셨어요. 저희도 모르게 장기적으로 하면서 개개인의 디테일이 생기고 극에 대한 집중도와 해석이 더 생겼고 팀워크도 더 끈끈해지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연습, 혹은 공연 중에 기억에 남는 일화도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혼자서 걷지도 못하고 누워서 숨만 쉬어도 몸이 안 움직이고 아팠던 때가 있었어요. 연습을 일주일정도 쉬고 2주 동안은 복대를 차고 뛰거나 굽히지도 못한 상태로 연습을 했어요. 리허설부터 공연초반까지는 보호대를 차고 공연했습니다. 지금도 꾸준히 재활치료를 하며 많이 나아졌지만 척추 신경이 다리를 눌러서 발에 힘이 안 들어갈 때도 종종 있어요.


-작품에서 가장 애정하는 장면(혹은 넘버)이 있다면?


전 루시의 ‘Someone like you’를 가장 좋아해요. 학생 때도 많이 불렀던 노래고 루시의 그 희망찬 모습이 너무 당차 보여요. 다가올 미래를 알고 있어서 너무 슬프고 안쓰러운 넘버이기도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루시가 너무 행복해보여요.


-다음 10번째 시즌에 또 함께 하게 된다면, 어떤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으신가요?


저는 ‘지킬/하이드’를 해보고 싶어요! 남자배우들에게만 허락된 배역이지만 한번쯤은 누구나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아닐까요? 이중인격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정말 힘들고 고민이 많이 되겠지만 꼭 해내고 싶은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죠.


-뮤지컬 배우로 참여하신 작품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1개를 꼽자면?


‘브로드웨이 42번가’가 기억이 많이 남아요. 애니라는 배역이었는데, 첫 배역이었고 비중이 많은 캐릭터여서 연습량은 물론이고 안무, 노래, 연기 다 소화해야 했어요. 사실 애니는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캐릭터인데 당시 24살인 제가 하기에는 많이 어리게 느껴지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사실 ‘지금 나이에 했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스스로 자책도 많이 해서 첫 리허설이 끝나고 엄마를 만났는데 눈물이 터져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나요.


-6년차 배우가 됐는데요, 뮤지컬 배우로서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라는 게 있나요?


관리를 소홀히 하지 말자입니다. 일단 저는 성대 결절도 왔었고 이번에 척추도 크게 다쳐보니 이제 앞으로 평생 관리를 해야 하는 몸이 되었어요. 전에 운동하고 관리를 해서 이정도로 다친 거지 사실 더 크게 다칠 위험도 있었어요. 살도 찌면 안 되고요. 예쁜 몸매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의미 보단, 살이 찌는 순간 허리에 무리가 가고 무릎에도 무리가 가니 건강상의 이유로 라도 꼭 운동을 하고 식사량도 관리해야 한다는 거예요. 식사와 식단도 관리를 해야 목에 무리가 안 가고 건강한 컨디션의 성대와 신체가 되니 배우를 계속 하고 싶다면, 또 관객들에게 좋은 퀄리티의 공연을 선보이려면 관리를 포기할 수 없는 듯해요.


-롤모델도 있나요?


애석하게도 특정 롤모델은 없지만 저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에게 본받을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선생님, 선배님, 동료들에게도 아니면 TV, 잡지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다 저와 다르다고 생각하고 다른 삶을 살았으니 분명히 저보다 좋은 점이 많을 거예요. 그걸 하나하나 본받다 보면 제가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박규연 배우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도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브로드웨이 42번가’ 공연할 때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고 지쳤다고 했잖아요. 조금 쉬어야겠다 싶어서 캐나다에 있는 언니들 집으로 가서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놀았어요.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자연스럽게 다시 무대가 그리워지더라고요. 휴가를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 학교 복학을 하고 졸업까지 해치워버리고 ‘스위니토드’로 다시 복귀했습니다.


-앞으로 배우로서의 방향성도 궁금해요. 작품을 선택함에 있어서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저는 사실 방향성이나 작품을 선택하는 일에 대해 생각이 없습니다. 어릴 때는 차기작이 없으면 불안할 정도로 닥치는 대로 오디션을 다 봤었어요. 정말 감사하게도 데뷔 이후 제가 쉬고 싶었을 때 외에는 차기작이 없던 적이 없습니다. 쉬면 뒤쳐질 거 같고 기회를 놓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컸던 것 같아요.


이제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는 편입니다. 생각이 많으면 그 생각과 틀 안에 갇혀 버리더라고요. ‘좋아? 그럼 해! 이 방향이 싫어? 그럼 하지 마!’ 이렇게 생각해야 오히려 더 자유롭게 배우 생활을 하고 작품 구상을 하게 되더라고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앞으로 참여하고 싶은 작품이나, 맡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뮤지컬 ‘Memphis’라는 작품이 꼭 하고 싶어요.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고 모르는 분들이 훨씬 많을 거예요. 브로드웨이에서만 공연 중이에요. 제가 대학 입시작품으로 선택했던 작품이에요. 노래가 너무 좋고 소울풀 하고 재즈틱 합니다. 저의 장기와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작품이라서 너무 하고 싶지만 사실 한국에 라이센스가 들어올 확률은 아주 희박해요. 흑인 백인이 뚜렷하게 나뉘어져 있는 작품이니까요. 분장을 통해서만 연기할 수 있고 아무래도 그 나라의 인종 차별적인 느낌은 한국에서 크게 공감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행사 무대에서라도 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박규연 배우의 최종 목표는요?


저의 최종목표는 행복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어디에 있던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늘 말하고 다니고 난 행복할거야 이 일을 하든, 안하든 내가 직업이 있든 없든, 나 행복하게 살 거야 라고…. 전 행복할 겁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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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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