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 반년 새 롯데정밀화학 지분 6.65%p 사들여
전통 석유화학 사업서 정밀화학·무기화학 추가…안정적 실적 구조
수소, 암모니아 등에서도 시너지 효과…탄소에서 그린 '무게추' 탄력
롯데케미칼이 관계회사인 롯데케미칼 지분을 계속 사들이면서 시장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양사 모두 '합병설'을 부인하는 가운데, 업계는 롯데케미칼이 롯데정밀화학을 최소한 종속회사로 편입시킬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롯데정밀화학은 석유화학 범용 제품을 주로 만드는 롯데케미칼과는 달리 고부가 제품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상호 실적을 보완해줄 수 있는 관계여서, 이 같은 지배관계를 택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롯데정밀화학 주식 8만6400주를 사들였다고 전날 공시했다. 주당 평균 매입 가격은 8만4071원으로, 총 72억원 규모다. 이에 따라 롯데정밀화학에 대한 롯데케미칼 지분율은 37.44%에서 37.78%로 0.34%p 늘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부터 롯데정밀화학 지분을 꾸준히 매입하면서 주목을 받아왔다. 작년 11월 말 31.13%였던 지분율은 이달 8일 현재 37.78%로 올라서며 6개월 새 6.65%p 늘었다. 이 기간 주식 매입에 들인 자금만 약 1300억원에 달한다.
일각에선 흡수합병을 위한 목적이라고 주장했지만 롯데케미칼과 롯데정밀화학 모두 "검토한 바 없다"며 부인하는 상황이다.
지난달 열린 '롯데케미칼 2030 비전·성장전략' 간담회에서 김교현 롯데그룹 화학군 총괄부회장은 "롯데정밀화학 지분투자는 최대주주로서 책임경영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합병 등 특정 목적은 현재 단계에서는 없다"고 일축했다.
이후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롯데케미칼이 롯데정밀화학 지분 추가 매입에 나서면서 또 다시 합병설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변화가 시급한 롯데케미칼의 체질 개선을 위해서라도 롯데정밀화학에 대한 지배관계를 바꿀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둔다.
롯데케미칼은 PE(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등 범용제품 생산 비중이 높아 시황에 따라 실적 변동성이 높은 편이다. 수요가 튼튼하면 이익 개선 효과가 두드러지지만 반대로 악화되면 크게 고꾸라지는 구조다.
지난해부터 롯데케미칼은 글로벌 공급과잉 및 판매 부진으로 제대로 된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올해 1분기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원자재 가격 급등 영향이 더해지면서 영업이익이 더 쪼그라들었다.
2분기에도 고유가 및 중국 도시 봉쇄 등에 따른 수요 부진, 금리 인상 기조로 1분기(826억원) 보다도 못한 영업이익을 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에틸렌 원료인 나프타 가격 급등에 에틸렌 스프레드(원료 가격과 제품 가격 차이)는 6월 t당 175달러로 떨어지며 손익분기점(BEP)인 350달러를 크게 밑돌고 있다.
하반기에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데 기대를 걸고 있지만, 중국 등을 중심으로 석유화학 설비증설이 예정돼있어 저시황 구조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높은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용을 제 때 제품 가격에 반영해야 하지만 수요가 낮은 것이 문제다.
반면 롯데정밀화학은 매 분기 최대 실적 경신에 성공하며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ECH(에폭시 도료의 원료)와 가성소다 등 주요 제품 가격이 오른데다, 고부가 제품군으로 분류되는 셀룰로스 계열 메셀로스(시멘트 첨가제), 애니코트(의약용 캡슐 원료) 공장 증설로 판매량이 늘어난 것이 주효했다.
2분기에도 비슷한 시황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1분기(1103억원) 수준의 영업이익 달성이 예상된다.
실제 가성소다 국제가격은 5월 평균 731.3달러로 전년 동월과 비교해 2배 이상 뛰었고 ECH 가격도 1000달러 오른 3250달러를 나타내며 강세를 보이고 있다.
롯데정밀화학은 기존 사업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 뿐 아니라 청정 수소·암모니아 등 신사업 기회 발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앞서 지난해 11월엔 삼성엔지니어링 등과 함께 청정수소 생산 기술 국책과제 컨소시엄으로 선정됐고, 같은 해 8월 세계 1위 암모니아 유통사 트라모와 그린 암모니아 구매 협약을 체결하는 등 다양한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이 같은 탄탄한 수익 구조를 갖춘 롯데정밀화학을 종속회사로 거느리게 되면 롯데케미칼은 실적 방어는 물론 탄소 중심에서 고부가 스페셜티·그린으로 무게추를 옮기는 전략에도 한층 속도를 낼 수 있게 된다.
롯데정밀화학은 현재 지분율 50% 미만의 관계회사로, 롯데케미칼의 지분법 이익에만 영향을 끼친다. 지분율 만큼 모기업 이익으로 계산되는 구조다. 지분율이 50%를 넘어가면 종속기업으로 전환되며 매출, 영업이익 등이 모기업과 합산돼 연결 실적으로 계산된다.
지배관계가 바뀌면 롯데케미칼이 부진하더라도 탄탄한 롯데정밀화학이 어느 정도 실적을 보완해줄 수 있다. 유가에 따라 크게 휘청이지 않고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매출 구조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양사가 추진하는 그린 사업도 시너지가 예상된다. 롯데케미칼은 지난달 수소·배터리 소재·리사이클 부문에서만 2030년까지 12조원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중장기 목표를 공개했다. 롯데정밀화학도 수소·암모니아 등에서 방법을 찾고 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놓고 더욱 긴밀하게 머리를 맞댈 수 있다.
키움증권은 "롯데정밀화학을 연결 편입하면 유가와 비교적 상관관계가 적은 정밀화학·무기화학사업이 실적에 추가될 수 있다"면서 "투자 가성비를 고려 시 최대주주의 지분 매입은 동사 흡수합병보다는 연결 편입이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