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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디그라운드(103)] 키라라 “불친절한 음악가라 미안해요”


입력 2022.06.16 11:33 수정 2022.06.16 13:32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2014년 첫 EP ‘cts1’로 데뷔한 이래 4장의 정규앨범과 6장의 EP, 2장의 리믹스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하며 활발하게 활동해온 전자음악가 키라라(KIRARA)는 공연에 특화된 아티스트다.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대구 등 지방은 물론 Primavera Pro, SXSW 등 해외 각국의 축제에도 초대되는 등 화려한 공연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2017년엔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정규 2집 앨범 ‘moves’로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음반상을 수상했고, 다양한 협업과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발매하는 앨범마다 호평을 받고 있다. 키라라는 그만큼 한국 전자음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음악가다. 특히 그의 브랜드 공연이 된 ‘그냥하는 단독공연’은 그의 음악적 다양성, 자유롭게 변주되는 음악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프리즘홀

-지난 3일부터 ‘그냥하는 단독공연’을 시작했어요. 코로나19 영향으로 대면 공연은 오랜만이죠?


네, 관객분들이 충분히 많이 왔고, 충분히 좋은 시간이었어요. 이 단독공연은 2017년도에 처음 시작해서 2020년 5월 20회를 끝으로 시즌1을 종료했어요. 그 당시가 코로나가 터져서 2021년엔 유튜브 스트리밍으로 세 차례 공연을 진행했어요. 이번 시즌2는 프리즘홀과 계약하면서 고정적인 공연장 사용, 예매 관리 등에 있어서 시즌1에 비해 조금 더 정돈된 형태의 공연을 기획할 여건이 갖춰졌고요.


-‘그냥하는 단독공연’을 설명하자면?


사실 ‘그냥하는 단독공연’은 제 월세벌이 프로젝트에요. 이번에도 월세 잘 벌어갔습니다. 하하. 물론 이 프로젝트에 대한 자부심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믿고 와주는 것만으로도요. 이런 기획을 했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이랄까요? 하하.


-공연 회차 때마다 라이브셋이 매번 다르다고요.


1시간30분씩 제 음악을 들려드리는데 기승전결이 달랐으면 했어요. 매번 다른 공연을 만들기 위해 레퍼토리 만드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A’라는 곡이 나오면 이 곡으로 어떻게 다른 라이브셋을 만들 수 있는지 경우의 수에 대해 생각을 하는 거죠. 이런 작업이 제겐 즐거움이에요. 관객들을 속여보기도 하고, 흥분시켜보기도 하고요. 듣는 사람이 질리지 않도록 곡들을 섞어내는 저만의 실험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곡을 만들 때도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는 편인가요?


맞아요. 제 곡들의 대부분은 공연에서 연주하는 생각을 하고 만드는 것들이 많아요. 작곡을 할 때 어떤 곡과 섞이기 위한 용도로 만드는 곡도 있고요. 대부분의 곡들이 BPM이 거의 동일하게 만들어지는 것도 그 이유죠. 공연에서 자유롭게 섞이기 위해서요.


-시즌1에서 김사월, 김뜻돌, 시와 등 내로라하는 게스트를 매회 섭외했어요. 섭외 자체도 힘들 것 같은데요.


정말, 정말 힘들어요. 다행히 일정만 맞으면 대부분 해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죠. 대부분의 게스트가 제 친구들이거나, 존경하는 선배·동료들이에요. 그들과 함께 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죠. 사실 사심을 채우는 섭외이기도 하고요(웃음).


-에이전시 대표님이 ‘그냥하는 단독공연’을 통해 세우고 있는 목표가 대단하더라고요. 전자음악 페스티벌을 만들겠다고 하던데요.


저도 그 대단한 목표에 동의는 하지만, 목전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사실 실감이 안 난다고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물론 재미는 있겠죠? ‘키라라 페스티벌’이라니,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죠. 하지만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지진 않아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고민을 더 많이 해봐야할 것 같아요(웃음).


-벌써 데뷔 9년차인데요. 데뷔 때와 지금,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난 5월 말, 만 8년이 됐어요. 달라진 점은 일단 제가 흔들리지 않게 됐다는 거예요. 데뷔 때부터 ‘키라라 음악은 틀렸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저 역시 힘들었죠. 그런데 지금은 제 음악이 맞는지, 틀린지는 중요하지 않게 됐어요. 아무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적어도 저의 세계에서는 제 음악이 옳은 걸 알게 됐다고 할까요?


-내 음악이 옳다고 생각하기까지의 기간이 외롭기도 했겠네요.


맞아요. 그 부분 역시 달라진 점이죠. 실제로 저 역시 어느 쪽, 어느 장르에, 어떻게 섞여야 할지에 대해 박탈감을 느꼈을 때가 있었고요. 비슷한 음악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외로운 음악가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런 외로움 역시 이젠 크게 느끼지 않아요. ‘온앤온리’인 거잖아요. 비슷한 음악을 하는 사람이 한국엔 없다는 사실이 이제 장점으로 와 닿고 있는 것 같아요. 음악을 하면 할수록 자존감이 조금씩 커지고 있달까요?


-그 시간들이 슬럼프로 오진 않았나요?


슬럼프, 물론 있었죠. 그런데 음악을 제작하는 과정에서의 슬럼프는 없었어요. 다만 제가 저의 팬들을 미워하는 계기가 됐던 사건이 있었는데, 그 때가 저의 슬럼프였던 것 같아요. 그들이 저를 소비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성정체성에 대한 문제일까요?


맞아요. 3집을 낸 이후 전 인권투사가 됐어요. 제가 성정체성을 드러내고 활동하고,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죽지말아요’라는 주제로 곡을 내기도 하니까 저는 거의 고통 받는 성소수자들의 상징, 또는 그들의 대변인처럼 되어버렸죠. 일부 행사에선 ‘키라라가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에 섭외한다’는 말도 있었고요. 그런 시선들 때문에 저 역시 마음이 꼬여버린 거죠. 사람들을 미워하게 됐어요. 저는 그저 제 음악을 하는 ‘음악인’일 뿐이었으니까요.


-지금은 괜찮나요?


솔직히는 ‘아니오’라고 말하고 싶네요. 사실 그 당시에도 음악 말고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어요.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음악을 만드는 거잖아요. 음악으로 제가 용서하고 싶은 대상들에 대해 쓰는 게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곡을 만든다고 그들이 100% 용서가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웃음). 전 여전히 꼬여있는 것 같아요. 다만 지금까지 적당히 도망을 쳐봤으니, 이젠 부딪혀 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어요.


-키라라의 음악들이 주로 슬픔과 분노를 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까요?


아무래도요. 바꾸고 싶은데 바뀌지가 않는 점 중에 하나에요. 음악을 만드는 행위 자체는 즐거운데, 주제는 늘 좋지 않은 감정으로 흐르더라고요. 음악으로 만든다고 해서 그 감정들이 모두 해소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지난해 발매한 4집 마지막에는 더 직접적으로 ‘너의 죄를 사하노라’라고까지 했는데, 음악은 음악일 뿐이더라고요. 고통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짠’하고 내놓았을 때 드라마틱하게 감정이 풀릴 거라고 믿었던 건 저의 착각이었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됐어요. 다만 그 음악을 가지고 지지고 볶고, 사람들과 그 감정에 대해 나누고 피드백을 나누는 과정에선 감정들이 조금 해소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키라라 씨가 공연을 하고, 피드백을 받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여러 장르 중에서도 ‘전자음악’이어야 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싱어송라이터와 이야기하면 항상 이런 생각들을 갖게 돼요. 제가 찍은 소리가 있잖아요. 전자기기로 눌러서 녹음을 하는 건데, 그런 소리들은 배신을 하지 않아요. 가수들은 환경이나 컨디션에 따라 노래에도 기복이 있잖아요. 그런데 전자음악은 그런 법이 없죠. 그게 제가 전자음악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이유인 것 같아요.


-11월엔 라이브 앨범도 준비하고 있다고요. 어떤 음악들이 담길까요?


그동안 공연을 하면서 모든 곡들이 하나의 시퀀스로 들리도록 연결을 하기도 하고, 섞는 과정을 거쳐왔어요. 그러면서 편곡도 많이 바뀌고요. 문득 어딘가에 그 변화를 남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라이브 앨범을 기획하게 됐죠. 9월에 하는 ‘그냥하는 단독공연’ 4회분을 녹음할 예정이에요.


-키라라에게 라이브 앨범이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해요.


한 평론가에게 여쭤봤어요. 한국에서 전자음악 라이브 앨범이 나온 전례가 있냐고요.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평론가 분께서 이디오테잎을 비롯한 전자음악을 하시는 분들에게도 물어봤는데 그분들도 기억나는 것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하셨고요. 사실 저희가 모르는 라이브 앨범이 있을 순 있겠죠. 이런 상황에서 라이브 앨범을 낸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어요. 사실 고무적인 상태에 취해있기도 하고요. 하하. 행위 자체에 자부심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정말 자신 있어요. 제일 잘하는 게 공연이니까, 그 경험과 노하우를 집약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최고의 앨범이 될 거라고 감히 예상해봅니다(웃음).


-‘그냥하는 단독공연’에는 매회 다른 게스트가 서고 있잖아요. 특별히 라이브 앨범을 녹음하는 회차의 게스트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사실 아직은 미정이지만 바라는 아티스트는 있어요. 앞서 언급하기도 했던 ‘이디오테잎’이죠. 제가 정말 좋아하는 분들이거든요. 저의 유일한 선배님 같은 느낌이에요. 너무 모시고 싶고, 성사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라이브 앨범을 통해 듣고 싶은 말이 있다면?


‘키라라가 9년 동안 애썼구나’라는 말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분출하는 앨범이 될 테니까요. 이 레퍼토리가 쌓일 때까지 겪어왔던 것들 모두 다요.


-7월부터 네덜란드, 독일 페스티벌에도 참가한다고요. 국내와 해외에서 공연할 때 스스로 공연 만듦새나 자세에 있어서 다른 점이 있나요?


다르진 않아요. 한국에서 시도했던 것들을 들고 가서 하는 셈이죠. 워낙 무대가 크고, 의미 있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연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재미있을 뿐이에요. 또 한 가지 의미가 있다면 제 프로필에 아주 좋은 한 줄이 추가된다는 점? 하하.


-가장 키라라다운 음악이란?


모든 음악이 각자 ‘키라라다웠다’고 생각해요. 3집 때는 3집스러운 사람이었고, 4집 때는 또 4집 같았던 사람이었어요. 음악들은 저의 일기장과도 같아요. 일기장을 열면 그 당시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앨범들을 남기고 싶어요.


-최근 새롭게 흥미를 느끼는 것들이 있다면?


요즘은 5집을 어떻게 만들지 구상을 하는 것에 빠져 있어요. 3집과 4집에서 감정을 너무 많이 쓴 것 같아서 감정이 없는 곡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개연성 없는 것이 개연성이 되는 앨범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아마 당장은 아니고, 적어도 3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요(웃음).


-음악가로서의 목표도 궁금해요.


옛날엔 많았는데 지금은 없어요. 다 이룬 것 같아요. 제가 더 이상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사실 좋지 않은 생각이긴 한데, 이제 그냥 즐기려고요. 이젠 후배들이 제가 걸어온 길을 과거보단 조금은 편하게 걷길 바랄 뿐이에요. 지금 레슨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들에게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주진 못하겠지만, 각자의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싶어요. 저는 조력자로서 그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서의 목표는?


제 인생의 목표가 있어요. 시스젠더에게 가지는 박탈감과 피해의식을 극복하고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거죠. 그 방법이 트랜지션이라고 생각하고요.


-마지막으로 ‘미워했다’던 관객들에게 한 마디.


여전히 관객들에게는 미안해요. 늘 제가 비뚤어져 있거든요. 조금은 관대하고, 참고, 마음을 넓게 쓰는 음악가일 수도 있을 텐데, 저는 여전히 사람들이 어색해요. 사랑을 받는 일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불친절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그게 나에요’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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