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제50화 퇴원
하지만 면벽좌선의 기본자세는 전혀 흩트리지 않았다. 103호의 환자들이 독백연기에 몰입해있는 주만수를 소 닭 보듯 멍 때리는 시선으로 쳐다보는 동안 김석규는 ‘유위유망’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유위유망’으로 인해 김석규는 정말로 주만수가 본인의 주장처럼 국어교사였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유위유망’은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 나오는 단어다. 주인공은 일제치하의 부조리한 사회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유위유망’한 머리를 알코올로 마비 아니 시킬 수 없다며 술에 취해 절규한다. 김석규는 소설에서 당연히 일제치하 식민지 조선에서 살아가는 젊은 지식인의 고뇌를 사무치게 느꼈어야 마땅했지만 그건 뒷전이고 엉뚱하게도 그럴듯한 ‘술 핑계’ 하나를 건지게 되었다며 내심 좋아했다. 그리고는 사회가 술 권한다는 핑계와 잠수함의 토끼론을 접목시켜 많이도 마시게 되었다.
그런데 주만수의 입에서 오리지널 ‘유위유망’이 흘러나오는 걸 듣고 보니 김석규는 자못 감회가 새로워졌다. 뿐만 아니라 술꾼들의 방어기제는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대동소이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며 씁쓸한 웃음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주만수의 옆 침상, 그러니까 김석규와 대각선 방향에 주상사, 아니 양상사가 멍한 시선으로 벽을 보고 앉아있었다. 양상사는 버스터미널과 지하상가를 무대로 활동하던 시절의 그 지저분한 양아치가 아니었다. 깡마른 얼굴과 몸은 예전 그대로였으나 오랜 병원생활과 금주 덕분에 전반적으로 깔끔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눈빛이었는데 예전 주상사 시절의 눈동자는 술에 절여있긴 했으나 먹잇감을 노리는 야생동물처럼 광기가 엿보이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 양상사의 눈빛은 의욕이라곤 조금도 찾을 수 없이 초점 잃어 멍 때리는 상태였다.
김석규는 103호실에 양상사가 이미 입원해 있었지만 먼저 알아차리지 못했다. 양상사가 워낙 조용한 탓도 있었지만 알코올성 편집증으로 인해 김석규의 인지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얼마 전 금단현상이 사라지고 나서야 김석규는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었지만 온종일 멍 때리는 그에게 말 한 마디 건넬 수 없었다. 다만 의사와 간호사의 대화에서 얻어온 정보의 조각들을 끼워 맞춰보니 양상사는 끊임없는 음주 양아치 짓을 하다가 결국 제대로 사고 쳐서 구속되었고 현재 치료감호를 받는 중이었다. 양상사는 이미 교도소에서 심각한 금단현상을 넘겼기 때문에 가끔씩 발생하는 섬망이나 발작을 제외하곤 지극히 무던한 상태였다.
학창시절 양상사는 온순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이른바 숫기가 없고 남들 앞에 나서면 사시나무처럼 떠는 성격이었다. 이를 부끄럽게 여긴 양상사는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술을 마셨다. 술은 양상사에게 자신감과 유쾌함을 안겨주었고 이에 고무된 양상사는 종교에 귀의하듯 계속해서 술에 의지하게 되었다. 특히 이라크 파병을 갔을 때 술은 적과의 교전에서 나약해지려는 정신을 용감하고 잔인하게 돌려세워 주었다. 양상사는 제대 후 불현듯 찾아든 전쟁 트라우마를 이기려고 더욱 맹렬하게 술을 찾았다. 그게 쌓이고 쌓이다 보니 어느덧 음주는 견고한 습관이 되었고 양상사는 폭력성과 공격성을 겸비한 반사회적인 양아치의 반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다시 보름이 지나 퇴원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과거 형사2계에 함께 근무했던 차석 오경문, 삼석 조정수, 말석 정재길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이제껏 한 명 내지 두 명이 면회 온 적은 있었지만 세 명이 한꺼번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벌써 왔어야 했는데 요즘은 근무 부서가 서로 달라 일정을 맞추기 어려웠고, 또한 퇴원일에 맞춰서 오면 좋았겠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오늘 오게 되었노라고 오경문이 말했다. 김석규는 계원들을 보자 한때 동고동락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고, 특히 형사2계에서의 대미를 장식했던 변동원 사건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CCTV와 탐문, 그리고 대대적인 수색을 통해 변동원의 행방을 좇아간 2계 형사들은 이튿날 오후 해질녘에야 사건현장 주택가 뒷산의 제법 큰 소나무 가지에 목을 맨 채 숨져있는 시신 한 구를 찾아냈다. 등산화도 벗지 않은 시신의 축 처진 다리 아래 하이킹 배낭이 널브러져 있었는데 그 안에서 유서로 보이는 메모지가 발견되었고 맨 밑에 변동원의 자필 서명이 있었다. 간단하게 적힌 유서는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어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었으며 정작 희생자들에게 사과한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변동원에 의해 부모와 오빠를 창졸간에 잃은 신예지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시골의 고모 집으로 갔고, 살인사건은 유력한 용의자 변동원의 자살로 종결 처리되었다. 2계 형사들은 평소에도 술을 많이 마셨지만 그날은 특히 질펀할 정도로 마시고 대취해 버렸다. 이튿날 에프킬라 벼락을 맞은 파리들처럼 기진맥진하는 2계 형사들을 보고 3계장 민완구가 술 때문에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술이 그렇게 넘어가더냐고 힐난했지만 그들은 귓등으로 흘려 넘기고 점심 때 복국을 먹으며 다시 해장술을 걸칠 정도였다.
여담이지만 외국의 경찰은 참혹한 사건을 접하거나 해결하고 난 뒤 휴가나 심리치료를 통해 트라우마를 해소할 수 있도록 배려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딴 건 꿈같은 이야기다. 오로지 개인이 알아서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제 아무리 끔찍한 사건현장에 노출되더라도 정신과적 의료지원은 거의 없다. 아니 의료지원을 받는 행위 자체가 트라우마에 굴복한 심약한 모습으로 간주되어 조직에서 도태되기 때문에 그런 내색조차 함부로 내지 못한다. 따라서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길은 현재까지는 오직 술 밖에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김석규가 정신병원을 나온 건 9월 중순이었다. 이제는 누가 꼬드기지만 않는다면 영원히 술과 작별을 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꼬드긴다 해도 냉정하게 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꽉 차오른 느낌이었다. 더욱이 굳건한 음주의 토대가 되었던 잠수함의 토끼론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아내 박미옥의 배려로 산골마을 미천(美川)에서 자연과 함께 요양하고 있으니 뉴스나 신문을 접할 일이 거의 없고, 그래서 그런지 예전처럼 사회 부조리에 대한 격정적인 반응이 일어날 일도 없다시피 했다.
김석규는 빈집 담장 위로 늘어진 감나무 가지를 잡아당겨 감 하나를 따서 손에 쥐고는 비탈길을 쉬엄쉬엄 올라갔다. 마을과는 조금 떨어진, 깊은 산의 품에 포근히 안긴 모습으로 김석규의 텃밭 딸린 집이 있었다. 김석규는 마당가 펌프 물을 끌어올려 땀으로 번질거리는 얼굴이며 목덜미를 시원하게 씻고 간단하게 아침밥을 차렸다. 아침식사 후에는 독서와 명상, 점심식사 후 낮잠, 오후엔 소설구상과 집필, 다시 저녁식사 후엔 독서와 명상이 이어질 계획이었다.
김석규는 느긋하게 소찬을 들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내에겐 미안한 노릇이지만 오매불망 그리던 일이 뜻하지 않게 이루어져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김석규가 형사생활 할 때엔 본전도 찾지 못할 소리였지만,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시골에 들어가 소설이나 쓰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종종 했었다. 그러면 박미옥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퇴직 후에 그것도 처자식이 먹고 살만한 액수의 현찰을 마련해 주고 시골로 들어가라고 응수하곤 했었다. 그래서 김석규는 퇴직도 하기 전에 이게 웬 떡인가 싶었고, 술을 영원히 끊는다는 맹세를 해서라도 이 생활을 계속 영위해 나가고 싶었다.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