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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게 고맙다" 서울 용산 쪽방촌마트 '온기창고' 가보니… [데일리안이 간다15]


입력 2024.01.23 05:02 수정 2024.01.23 05:02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작년 7월 서울시 개소한 '온기창고'…'긴 줄세우기' 통한 일률적 후원물품 배부 사라져

후원받는 생필품 진열해 놓고…쪽방촌 주민들, 필요한 물품 배정받는 적립금 한도서 자율 선택

"춥고 덥고 날씨보다 줄 섰을 때 민망함에 더 힘들었는데…따뜻한 곳에서 직접 골라 참 좋아"

귤·사과 등 과일, 최고 인기품목…"닭국물 사 쪽방촌 주민들 나눠주기도, 정까지 메마르진 않아"

22일 온기창고에서 생필품을 고르는 쪽방촌 주민.ⓒ데일리안 김하나 기자

동장군의 기세가 날로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은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마트 '온기창고(서울시 용산구 후암로 57길 3-14)'가 나눔의 장소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22일 데일리안이 찾은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온기창고'에는 영하 10도의 강추위에도 생필품을 고르려는 쪽방촌 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 이 곳을 찾은 이상덕(61)씨는 귤 1봉지(3000점), 사과 1봉지(5000점), 우유 3개(4500점), 김 1개(1000점), 무말랭이 무침 1개(3000점), 견과류 멸치볶음 1개(3000점), 약과 1개(3000점), 샌드 1개(2000점)를 차곡차곡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씨는 "오늘은 영양식 위주로 담았다"며 "방에서 전기장판 위에서 텔레비(TV) 보면서 귤 까먹으면 참 좋다"며 "후암시장에선 사과 3개에 1만2000원이나 해 비쌌는데 온기창고에선 사과 3개가 든 1봉지가 3000원밖에 안 한다"고 흡족해했다.


22일 온기창고에서 생필품을 고르는 쪽방촌 주민.ⓒ데일리안 김하나 기자
◇ 서울시 온기창고 개소 이후…눈치 안 보고 필요한 물품들 가져가


이 곳은 원래 후원 물품이 들어올 때마다 쪽방촌 주민들은 물품을 받기 위해 1~2시간을 긴 줄을 서며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지난해 7월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동행스토어 '온기창고'를 개소한 이후부터는 '긴 줄세우기'를 통한 일률적인 후원물품 배부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온기창고' 매장이 기업, 기관, 개인으로부터 후원받은 생필품을 진열해놓고 쪽방촌 주민들은 필요한 물품을 배정받은 적립금 한도(일주일 2만5000점) 내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해 가져가는 방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사무실 앞에 쭉 줄을 섰는데 춥고 더운 것보다 줄을 섰을 때 지나가는 시민들 눈치가 보여 더 힘들었다. 온기창고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마트 오는 것처럼 쇼핑을 하고 직접 골라 사니 기분 전환도 된다"며 "어떨 때는 산 먹거리를 주민들과 나눠 먹기도 한다. 닭 국물도 사서 나이드신 분들 더 드시라고 나눠 준다. 정까지 메마르진 않았다"고 말했다.


22일 온기창고에서 생필품을 고른 쪽방촌 주민.ⓒ김하나 데일리안 기자
◇ 최고 인기 품목은 '과일'…주민들 "공짜로 주니 너무 좋다"


이날 온기창고의 최고 인기품목은 과일이었다. 진열돼 있던 귤부터 금방 동이 나자 온기창고 자원봉사자들이 봉지에 신선한 귤을 선별해 10개씩 1봉지에 소분하는 작업을 벌였다. 귤 3봉지, 사과 1봉지, 과자 1개, 햇반으로 장바구니를 가득 채운 김순복(80)씨는 "요즘 물가가 비싸서 밖에선 못 사먹는다"며 "공짜로 주니 너무 좋다"고 말했다.


과일 코너 앞을 서성이던 강동근(70)씨가 "과일값이 비싸고 잘 사먹을 기회가 없었 귤이 들어와 있길래 샀다"며 "사과는 없죠?"라고 되묻는다. 발걸음을 바쁘게 옮기더니 사과 1봉지도 마저 담는다. 강씨는 "예전에는 공원에서 줄서서 물품을 배분받아 행인들이 지나갈 때 너무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며 "지금은 따뜻한 공간에서 일주일 2만5000점씩 한달에 10만점 필요한 물건을 고를 수 있어 민망함이 덜 하다. 밥이 모자라면 햇반도 사먹고, 사리곰탕도 사고 전기코드가 필요하면 2500점에 살 수 있다"고 전했다.


전익형 서울역쪽방상담소 실장은 "그때그때 인기품목은 다른데 오늘은 과일이 잘 나간다"며 "주민 분들에게 어떤 음식이 가장 먹고 싶은지 찾아보면 평소 잘 섭취하지 못하는 섬유질 음식인 과일"이라고 설명했다.


22일 온기창고에서 방한용품 코너를 살펴보는 쪽방촌 주민들.ⓒ데일리안 김하나 기자
◇ 패딩, 모자, 수면양말 방한용품도 '인기'


온기창고에는 추위를 달래줄 방한용품도 넉넉하게 진열돼 있었다. 패딩 3만점, 장갑 5000점, 수면양말 1000점, 모자 5000점이 구비돼 있는데 장갑은 이미 한 차례 동나 다시 들어온 겨울철 '인기품목'이라고 한다. 인근 쪽방촌에 거주하는 문모(72)씨는 경량패딩(1만5000점)과 휴대용랜턴(5000점), 귤 2봉지(6000점)를 구입했다. 문씨는 "목도리, 수면양말, 전기장판, 장갑도 이곳에서 샀다"며 "온기창고 덕분에 이번 겨울 추위를 달랜다. 방에 보일러가 돌긴 하지만 바깥이 너무 추워서 이번에 경량패딩까지 샀다"고 말했다.


1평도 안 되는 후암동 한 쪽방촌에 살고 있는 시모(65)씨는 "발이 뻗으면 발이 닿고, 좁아서 몸을 돌릴 수도 없는 곳에 방세 24만원을 내고 살고 있다"며 "곰탕도 내 돈 주고 사먹을 수 없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시씨는 "이걸 준비해주시는 이름 모를 모든 님들에게 눈물날 정도로 고맙다"며 "오늘 산 반찬으로 한 주를 먹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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