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2025] '핵잠수함' 공식화에 외교마찰 우려도…中 '반감' 숙제

데일리안 경주(경북) = 맹찬호 기자 (maengho@dailian.co.kr)

입력 2025.11.01 06:00  수정 2025.11.01 12:02

핵잠수함 길 열렸지만…한반도 안보 새 시험대

'중국 견제' 이익 고려했나, 외교적 파장 비판도

균형외교 내세워온 李대통령 '실언' 지적 제기

與野 환영 입장 내놨지만 찬반 논쟁 본격화할듯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영접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을 받아내면서 동북아 안보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이 이를 '핵 군사력 확장'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이 자칫 한반도 비핵화 기조를 뒤흔드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핵무기를 탑재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우리나라가 사실상 '핵연료의 군사적 사용'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한미 동맹의 현대화라는 명분 아래 자주국방을 강화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지가 외교·안보의 새 변수로 부상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과의 회담 이튿날인 지난달 3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미국은 '핵 확산'을 우려해 동맹국이라 해도 핵연료 이전에는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이번 결정은 미국의 불문율이 사실상 깨진 셈이다.


외교가에선 이재명 대통령의 설득 논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북한과 중국 잠수함에 대한 추적 능력이 제한돼 있다"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보유하면 미군의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는 발언에 대한 논리가 적용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의 경찰' 역할에서 벗어나겠다는 기조를 유지하는 한편 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이익을 고려해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다만 중국과 북한의 반응은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APEC 정상회의 참석차 한국에 도착하기 직전이었다는 점에서, 외교적 파장을 고려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한미 양국이 핵확산 방지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나타냈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한미 양국이 핵 비확산 의무를 실질적으로 이행하고, 지역 평화·안정을 촉진하는 일을 하지 그 반대를 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지리적으로 훨씬 가까운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갖게 될 경우, 중국이 이를 경계심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이 잠수함 도입 필요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중국 쪽' 활동을 거론한 것도 파장을 키웠다.


대통령실은 특정 국가의 잠수함을 지칭한 것은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중국 입장에선 결코 반가울 리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은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하루 앞두고 나온 발언이라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중국 입장에선 한미가 사실상 대(對)중국 견제 공조에 나서는 흐름이 달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균형 외교'를 내세워온 이 대통령이 핵추진 잠수함 필요성을 설명하며 중국을 직접 언급한 것은 외교적 실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발언이 향후 한중 관계의 새로운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제1세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신에서도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지난달 30일 "핵추진 잠수함 개발·보유는 (한국) 보수·진보 진영을 불문하고 역대 정권에서 검토됐지만, 좌절이 거듭됐다"며 "이재명 정권은 미군 부담 경감을 호소해 '비원 성취'를 도모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핵추진 잠수함 개발 계획은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주변국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당시 김영삼 정권 이후 수면 아래에서 계획이 추진됐으나 실현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최일 잠수함연구소장은 "국내 찬반 논쟁이 본격화될 것이다. 군사 전략적 평가 외에도 핵연료 안전, 방사능 관리, 환경영향평가 등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는 과정이 필수적"이라며 "한국은 핵연료 공급 허용을, 미국은 필리조선소 건조를 희망한다는 두 입장은 상충하는 면이 있으나, 상호 이익이 명확하기 때문에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도 크다"고 분석했다.


한편 여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데 대해 모두 환영 입장을 내놨지만, 평가의 결은 달랐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정부의 외교적 쾌거'라며 힘을 실은 반면 국민의힘은 '핵잠수함 건조는 긍정적이지만 관세 협상과 연계된 건 부적절하다'고 선을 그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30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방·안보 측면에서 상당한 쾌거"라며 "한미 원자력 협정 등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같은당 김병기 원내대표도 "핵추진 잠수함은 그야말로 게임 체인저"라며 "차질이 빚어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국민의힘 소속 성일종 국방위원장은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이나 대한민국의 핵잠수함을 전략적으로 승인할 가능성이 높았고 타이밍을 본 것"이라면서도 "관세(협상)하고 (핵잠수함을) 연결는 것은 옳지 않다. 관세는 대한민국 부를 키우는 데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당 군사전문기자 출신 유용원 의원은 "개인 소견을 전제로, 이 대통령의 핵추진잠수함에 대한 요청과 트럼프 대통령의 즉각 승인 또는 허용은 아주 잘했고 환영한다"면서도 "그런데 필리 조선소에는 잠수함 건조 시설이 없다. 새로운 건조 시설을 만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겠느냐"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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