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직접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검토 지시…정치권 움직임 활발
헌재, 지난 2021년 합헌 결정…다만 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 의견'
"형벌, 책임 묻는 최후의 수단…사실적시 인한 처벌은 무리가 있어"
"사실 공개 악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헌법상 기본권 침해 소지도"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2026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대통령 시정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한 이후 법조계에서도 폐지 찬반 양론이 격렬하게 맞서고 있는 모양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공익 고발을 강화해 공공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며 폐지에 찬성하는 여론이 있지만 과도한 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폐지에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18일 법조계 및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이 대통령은 직접 당국자들에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검토를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국무회의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도 이번 기회에 폐지하는 것을 검토하라"며 "있는 사실을 이야기한 것이 무슨 명예훼손인가. 그건 민사로 해결해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국회에서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대신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법정 벌금형을 상향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신정훈·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형법 제307조 1항에 규정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법성을 조각하거나 사생활에 관한 중대한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만 처벌하고 대신 명예에 관한 죄는 모두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친고죄로 개정하는 형법 개정안을 대표로 발의했다.
이와 함께 최기상·이주희 민주당 의원 등은 정보통신망에서 사실을 적시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 하는 현행 명예훼손 규정을 삭제하거나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에 한정해 처벌하도록 개정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헌법 307조 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지난 2021년 헌법재판소(헌재)는 당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 제307조는 위헌이라며 한 시민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 위헌이라고 판단한 재판관은 전체 9명 중 5명으로 합헌 의견을 밝힌 재판관(4명)보다 많았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위헌 결정은 재판관 6인 이상이 찬성 의견을 내야 한다.
반면 UN 인권 이사회 등 국제기관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약한다'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폐지 또는 형사 처벌 완화를 지속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적용된 대표적인 형사사건으로는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배드파더스' 대표 구모씨의 사례가 꼽힌다. 지난해 1월 대법원은 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 공개가 '공공의 이익'이 아닌 '사적 제재'를 위한 행위였다며 구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유예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거세지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공익적 폭로를 위축시킬 수 있고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형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차 커졌다.
신민영 변호사(법무법인 호암)는 "형벌이라는 건 책임을 묻는 최후의 수단인데 사실을 적시해 명예훼손을 했다는 이유로 형법에 따른 처벌이 가능하도록 관여한다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며 "폐지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은 민사소송 배상액을 현실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단영 변호사는 "피해자를 보호하려고 만든 제도였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잘못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수단으로서 악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의 당위성이 충분히 있다고 밝혔다.
반면 사실 폭로가 자칫 개인의 민감한 사생활까지 침해할 수 있고 이럴 경우 회복 불가능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법원에 있었을 때 표현의 자유를 중시해 공적 관심사에 해당할 경우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많이 선고한 편"이라면서도 "공인이 아닌 경우 사실 공개를 악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데 그런 경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을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서정현 변호사(법무법인 의담)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실익은 사회적으로 이미 효용을 다 했다고 본다"면서도 "사회적 신용이나 영리를 훼손하는 경우 이를 보전해야 하는데 이미 폐지된 간통죄의 경우에도 민사소송에서 법원에서 인정하는 위자료의 금액이 1500만원~2000만원 정도로 가정을 파괴한 것에 비해서는 적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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