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연 한림대의료원 커맨드센터장 인터뷰
물류·안내 넘어 서비스 전반 확장…“속도보다 안전이 기준”
현대차·블루로빈 협업까지…병원 로봇 ‘현장 모델’ 구축
이미연 한림대의료원 커맨드센터장이 3월 10일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한림대의료원
병원은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공간이 아니다. 입원 환자가 머무는 생활 공간이자, 숙박·요식·세탁·청소·도소매·배송까지 동시에 이뤄지는 하나의 작은 사회다. 특히 고령 환자와 휠체어, 의료장비가 뒤섞여 움직이는 환경에서는 작은 변수 하나만으로도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병원이 서비스 로봇 적용 난도가 높은 현장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 같은 한계 속에서도 한림대학교의료원은 로봇을 ‘구성원’처럼 활용하는데 실질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2022년부터 총 78대의 로봇을 투입해 병원 업무에 적용했고, 누적 사용 횟수는 8만건을 넘어섰다. 그 성과 뒤에는 어떤 시행착오와 전략이 있었을까. 이미연 한림대의료원 커맨드센터장(방사선종양학과 교수)을 통해 그 과정을 들었다.
78대 투입·8만건 운용…현장에서 답을 찾다
지난 10일 경기 안양시 한림대성심병원에서 만난 이 센터장은 “병원은 작은 하나의 사회처럼 이루어지는 특수한 공간”이라며 “로봇을 적용하기 가장 까다로운 현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병원에서 통하는 로봇이라면 다른 어떤 공간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 센터장이 병원 로봇에 주목한 이유는 ‘서비스’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그는 “코로나19를 겪으며 현장을 보니 간호사들이 단순 업무로 뛰어다니는 일이 반복됐다”며 “물리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고, 그 대안으로 로봇을 고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센터장은 2022년 초 정부 주관 ‘대규모 융합 로봇 실증사업’에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서비스로봇 도입을 추진했다. 당시 한림대의료원은 72대 도입을 제안했다. 다른 기관들이 8~12대 규모를 제시한 것과 비교하면 과감한 결정이었다. 그는 “지금 보면 무모했지만, 그 덕분에 어디에 쓰이고 어디서 막히는지 전부 확인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2022년 8월 로봇이 처음 도입된 이후 약 3년 반 동안 12종 78대의 로봇이 병원 업무에 투입됐다. 활용 시나리오는 30개 안팎으로 확대됐고, 현재도 10여 개 이상이 운영 중이다. 의료진 지원과 환자 안내, 물품 이송 등 적용 범위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로봇 사용 건수 역시 2022년 3000건 수준에서 2만여건, 3만여건으로 증가하며 올해 1월 기준 누적 8만건을 넘어섰다. 국내 의료기관 중 압도적인 수치다.
한림대성심병원 지하 1층에 마련된 로봇스테이션. ⓒ한림대의료원
이 센터장은 로봇의 업무 투입 과정에서 현장은 기대만큼 단순하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그는 “실제로 서비스 로봇을 도입했던 병원은 많았지만,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사례는 적었다”며 “왜 병원에 로봇이 잘 안 들어오는지 직접 해보고 깨달았다”고 했다.
대표적인 문제는 공간 인프라다. 병원은 로봇 친화적으로 설계된 환경이 아니기에 자동문, 엘리베이터 등과의 연동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은 표준화가 돼 있지 않아 현장마다 별도 구축해야 한다. 엘리베이터 역시 사람처럼 유연하게 탑승하기 어려워 주행 과정에서의 배려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외부 기업과의 협업도 병행하고 있다. 한림대의료원은 현대자동차, 블루로빈 등과 병원 환경에 최적화된 로봇 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다. 실증 공간에서 활용되던 로봇을 병원에 적용해 기술을 검증하고, 정부 과제를 통해 의료기관에 적합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병원 로봇 운영에 있어 ‘에티켓’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병원에서는 속도보다 안전이 우선이다. 휠체어 이용자나 환자가 먼저 이동하고, 로봇은 뒤따르는 방식이 돼야 한다”며 “사람과 로봇이 함께 움직이는 실내 교통질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건비 절감’ 아닌 ‘업무 재편’…로봇의 진짜 역할
간호사가 이송 로봇을 통해 배달된 약제를 꺼내고 있다. ⓒ한림대의료원
한림대의료원은 기술 개발과 함께 구성원 인식 개선에도 나서고 있다. 병원 내 로봇 역할을 알리는 안내 콘텐츠를 제작해 엘리베이터 화면 등에 송출하고, “로봇이 먼저 내릴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는 메시지도 지속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그는 “이런 과정이 쌓이면서 현장에서 협조 문화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효과를 단순히 인건비 절감으로 계산하기는 어렵다. 로봇이 특정 직원 1명을 대체했다기보다, 여러 직원이 나눠하던 반복적이고 비효율적인 업무를 대신하면서 전체 업무 질을 높였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은 “오히려 관리 인력이 더 필요해진 측면도 있다”면서도 “로봇을 빼면 현장에서 불편이 클 정도로 효용은 분명히 확인됐다”고 말했다.
실제 한림대의료원은 로봇 운영을 전담할 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산하 경기남부직업능력개발원과 함께 ‘병원 로봇 통합 관제사’ 교육과정을 만들었다. 병원 맞춤형 교육을 거친 인력을 채용해 로봇 에러 대응과 현장 운영을 맡기면서, 그동안 비어 있던 중간 운영 고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그는 로봇 운영이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새로운 직무와 거버넌스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병원 로봇의 목표가 결국 화려한 자동화가 아닌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고 봤다. 환자가 덜 기다리고, 덜 헤매고, 의료진은 반복 업무에서 벗어나 본연의 돌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병원은 고령자, 어린이, 물류, 안내, 서비스, 안전 문제가 한꺼번에 존재하는 공간”이라며 “병원에서 안전성과 효과성이 입증된 로봇이라면 다른 산업 현장이나 생활 공간에서도 충분히 확장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기술만이 아니라 문화와 공간, 제도까지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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