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수정명령에 "이젠 받아들여야" vs "공동대응 할 것"
사회를 뜨겁게 달군 ‘역사교과서 전쟁’이 절정에 다다랐다. 교육부가 29일 한국사 검정 교과서 8종 가운데 7종에 대해 41건의 내용 수정을 명령하면서 최후의 항전만을 남겨두게 됐다.
현재 “좌파역사교과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해 온 보수 진영과 “교학사 교과서가 독재찬양, 친일미화 서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 진보 진영 모두 투항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상대적으로 진보진영의 결사항쟁 의지가 더 뜨겁다.
하지만 수정명령을 받은 출판사들은 다음달 3일까지 수정 내용을 제출해야 하고, 수정 명령을 거부할 경우 해당 교과서는 검정 취소 처분을 받는다. 7종 교과서 출판사 입장에선 빨간펜을 들고 ‘휴전협정’에 사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다음달 6일 심의위원회를 열어 승인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교육부 "올바른 역사인식 형성에 영향 미치는 부분 심도 있게 논의"
교육부는 이날 한국사 검정 교과서 8종 가운데 7종에 대해 41건의 내용 수정을 명령하고, 관련 내용을 출판사에 통보했다.
출판사별 수정 명령 건수는 교학사와 금성출판사가 8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천재교육 7건, 두산동아 5건, 미래엔 5건, 비상교육 4건, 지학사 4건 순이었다. 리베르스쿨은 한 건도 지적 받지 않았다.
각 출판사별 주요 수정명령 내용은 ‘북한의 토지개혁에 대한 정확한 실상 설명(금성출판사)’, ‘천안함 피격 사건 주체 서술(두산동아)’, ‘6.25 전쟁 당시 북한군과 국군의 양민 학살 사례 균형 서술(미래엔)’, ‘남북 대립 및 통일 논의 중단 원인에 대한 올바른 서술(비상교육)’, ‘일본의 독도 침탈 과정에 대한 정확한 서술(지학사)’,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에 대한 구체적 서술(천재교육)’, ‘반민특위 해산 과정에 대한 정확한 서술(교학사)’ 등이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 8월 30일 교과서 8종이 검정을 통과한 후 교학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일자 8종 교과서 전체에 829건을 수정 및 보완하라고 권고했다.
이와 관련, 나승일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수정명령 대상을 선정할 때 수정심의회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객관적인 오류사항과 집필기준, 편수용어 등 일반적인 기준,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인식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들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보수진영 "수정명령 받아들여야…향후 '교학사 채택 운동' 매진"
이와 관련, 보수 진영은 “이번 교육부의 지적이 타당한 면이 있다”며 출판사들이 수정명령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종철 청년지식인포럼 대표는 “지적된 내용이 대체적으로 (수정)해야 할 부분이고, 교학사를 비롯한 다른 교과서들도 기본적으로 수용하는 게 맞다”면서 “집필진 입장이 아니라 바람직한 역사 서술의 방향과 기준에 비추어서 수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장은 “역사적 진실의 끈을 노치면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특정 이념에 붙들린 해석은 반드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사실에 근거한 역사 기술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교육부의 수정명령 조치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다만 교학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교육부의 수정명령 내용 가운데 ‘제주 4.3사건’ 등의 경우 사실대로 기술했는데도 일부 내용을 빼라고 한 것에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집필진들과) 논의 후 입장 정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진영에선 교과서 논란이 매듭지어진 후에도 ‘좌편향 역사 바로잡기 운동’에 가속도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교학사 채택 운동’도 벌일 채비다.
보수단체의 한 관계자는 “교학사 교과서가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교과서로 수정되어 공정한 입장의 한국사 교과서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 교학사 교과서를 널리 홍보하고 채택률을 높이는데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현재 수정명령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교육부의 고심과 고민이 충분히 읽힌다”며 “향후 좌편향 교과서를 바로잡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진영 "'교학사 구하기'는 국론분열과 학교혼란 자초해"
진보진영에선 교육부의 수정명령을 ‘교학사 구하기’라고 규정하며 거칠게 반발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교육부가 교학사 교과서 하나를 구하기 위해 다른 모든 교과서에도 수정명령을 내리는 물타기 꼼수를 부렸다”며 “지금이라도 당장 부당한 수정명령을 철회하고, 교학사 교과서 발행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전교조는 “왜곡된 역사책으로부터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며 “교학사 교과서 발행이 중단될 때까지 학부모단체와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범국민적인 저지운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강경투쟁을 예고했다.
이날 교육부의 수정명령을 받은 교과서 가운데 교학사를 제외한 6종 교과서 집필진도 수정명령 거부 등 결사항쟁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6종 교과서 집필진들은 공동대응을 모색하는 동시에 교과부에 대한 ‘수정명령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2008년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를 둘러싼 ‘좌편향 논란’ 당시 집필자들이 “교육부의 일방적인 수정지시로 출판사가 교과서를 수정발행해 동일성 유지권을 침해당했다”며 출판사를 상대로 낸 저작인격권 침해정지 소송에서 대법원이 출판사 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