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정전협정일 아닌 전쟁발발일을 기념하나
6.25는 기념일 7.28은 깜깜 북한과 미국은 국가적 기념
한반도에서 3년1개월간 지속된 6.25전쟁을 그친 7월27일을 북한은 ‘전승절’이라 부르며 대대적으로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남한 국민들 사이에서 이 날은 거의 잊혀진 날이었다가 작년에서야 ‘유엔군 참전의 날’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올해 제2회 유엔군 참전의 날을 맞아 27일 코엑스에서 ‘6.25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행사를 열고 국내 6.25참전유공자와 유엔 참전용사에 대한 무공훈장을 수여하며 참전용사의 공헌을 기렸다.
전쟁을 끝낸 지 60년만에 국내 참전용사는 물론 UN 참전국과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와 감사를 표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당초 정전협정일을 기념하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도 표한다. 전쟁은 일어나기 어렵지만 한번 일어나면 멈추기도 어렵기 때문에 그 교훈을 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정전협정일에 자신들이 ‘조국해방전쟁 참전열사묘’라고 부르는 곳 등을 참배하며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형식으로 전승을 강조해왔다. 올해에도 이 행사와 관련해 북한 노동신문은 “우리 군대와 인민은 희세의 선군령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높이 모신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최후승리에 대한 신심과 락관에 넘쳐 전승 61돌을 뜻깊게 경축하였다”라고 보도했다.
이에 반해 남한에서는 전쟁 발발일인 ‘6.25사변일’이 대표적인 기념일이었으며, 작년부터 ‘유엔군 참전의 날’을 법률로 지정한 것 외에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공식 기념일은 6월6일 현충일이다.
처음 6월6일을 현충일로 지정한 것은 1956년으로 6.25전쟁 때 희생된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그 날은 ‘망종’이라고 불리는 농경문화에서 유래된 대표적인 제사일이다. 벼·보리처럼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로 알려져 있는 망종은 음력 5월경, 양력으로 6월6일경에 해당된다. 이 날을 민간에서는 ‘손 없는 날’로도 부르며 제사를 지내는 날로 삼았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현충일이 지정되기까지 과정을 보면 민간 차원에서 대표 제사일인 ‘망종’에 합동추모제를 열던 것을 국가기념일로 정착시킨 경우로 국가기록에도 날짜를 6월6일로 지정한 정확한 이유가 기재되어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날을 기해서 민간에서 전사자들에 대한 추모제가 산발적으로 열리자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전사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처음 4월19일을 현충기념일로 정했다. 하지만 이는 국가기념일 차원이 아니라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 차원이었다.
그러다가 1965년부터 국가기념사업으로 제1회 현충식이 거행됐고, 이후 1975년에서야 현충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처음 현충일도 관공서 공휴일 차원이었다가 국가기념일을 규정한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으로 정착된 것은 1982년부터였다.
사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전쟁이 발발한 날이 아니라 전쟁을 끝낸 날을 기념해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령 1차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11월11일, 나치 독일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5월8일 등을 기념하는 식이다.
이에 반해 그동안 우리가 정전협정일을 기념하지 않은 데에는 7월27일이 완벽한 ‘종전’이 아니라는 점, 이승만 정부가 1953년 정전협정에 반대하면서 협정체결에 직접 서명을 하지 않은 점 등이 배경이 된다.
게다가 북한 정권이 끊임없이 정전을 내세워 평화협정 체결을 주문하며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는 것도 정전협정일 기념을 꺼리는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전쟁 발발일 못지않게 정전협정일을 제대로 기념하는 것이 6.25전쟁사를 똑바로 알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정전협정은 60년 분단의 아픔을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평화의 시대를 열어 외국의 투자자본 유입과 한국경제의 발전을 이끄는 초석이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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